제가 사용해 본 올림푸스 카메라 중 단연 최고의 카메라인 OM-D E-M1 MarkII를 뒤로하고 다시 PEN-F를 잡은 이유는 제가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DSLR 카메라보다 작고 가벼워 매일 휴대할 수 있는, 그러면서 일상의 장면들을 스마트폰이나 컴팩트 카메라보다 멋지게 기록할 수 있는 장점. 물론 카메라를 가장 많이 사용할 때는 길고 짧은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서지만, 그 외의 일상에서도 늘 이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제값 이상을 하는 것이겠죠. 짧은 여행을 마친 후, 저는 다시 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매일 PEN-F와 17mm F1.8 렌즈를 챙겨 외출합니다. 우연히 마주친 멋진 장면, 그리고 멋진 저녁 식사에 대한 기대로 말이죠.
'카메라가 먼저 먹는다'
홍콩이었던가 타이베이였던가. 어느 도시였던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기 전 자연스레 사진부터 찍는 풍경이 만든 말이라고 하는데, 한국이 유별난 줄 알았더니 세계 어디가나 풍경이 다르지 않더군요. 유명한 식당, 맛보다 보기에 더 좋은 음식, SNS 자랑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람들은 음식 사진을 무척 즐겨 찍습니다. 저도 물론 그렇습니다. 어제만 해도 좀 더 그럴듯하게 찍어보고 싶어서 햄버거 세트에 평소 먹지 않은 감자튀김을 추가한 것을 보면 말이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냅니다.
DSLR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그릇보다 큰 카메라로 식당에서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그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소수 블로거들로 인해 식당 안에서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는 일이 되면서 요즘은 주로 스마트폰이나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로 음식을 찍고 있습니다. 크기가 작은데다 셔터 소리가 작아서 눈치 안보고 수십 장을 찍을 수 있거든요. PEN-F에는 전자 셔터를 사용하는 무음모드가 있는데, 이게 식당이나 갤러리 등에서 아주 유용합니다.
먹는 여행 후쿠오카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카메라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후쿠오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PEN-F와 17mm F1.8 렌즈는 '음식 사진'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사흘간 저보다 먼저 음식을 먹는 카메라로 제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 한 입 가득 생선회가 매력적인 초밥 -
- 후쿠오카식 닭한마리 미즈타키 -
- 즉석에서 구워먹는 우설 구이 -
- 대만 스타일의 마제소바 -
PEN-F와 17mm F1.8 렌즈로 후쿠오카에서 먹은 음식들을 담았습니다. 음식용 카메라로 이 조합의 가장 큰 장점은 '시야'. 사람의 시선과 비슷하다는 환산 35mm 초점거리는 눈으로 보며 감탄하는 음식의 자태를 담기에 제격입니다. 실제로는 제 시야보다 살짝 넓은 느낌이라 눈보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게 되지만, 음식을 담기위해 물러나거나 일어날 필요 없는 이 정도 시선에는 호불호가 없을 것입니다. 광각에서 생기는 왜곡도 없고요. 환산 50mm 초점거리를 선호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음식을 클로즈업으로 담기에 좋지만, 그릇과 상차림 등 식당의 분위기를 담는 데는 35mm 쪽이 더 좋게 느껴지더군요.
- 한 상 가득 푸짐하게 담고 싶다면 12mm 광각 렌즈도 좋은 선택입니다. -
17mm의 장점은 환산 28mm로 대표되는 광각, 대표적인 표준 초점거리인 50mm 사이에 위치해 두 렌즈의 장점을 고루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뼘씩 다가가면 음식을 부각시켜 찍을 수 있고, 앉은 자리에서 조금 물러나거나 잠깐 일어나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모두 담을 수도 있습니다. 17mm F1.8 렌즈의 경우 최단 촬영거리가 25cm로 기대 이상의 근접 촬영도 가능합니다.
- 천 엔에 즐기는 대형 스시 3종 세트 -
- 두툼한 소고기를 끼운 야키토리 -
- 진한 육수의 츠케멘 -
피사체와 일정 거리가 확보되기 때문에 같은 다양한 구도로 음식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단일 메뉴인 경우 근접 촬영으로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 좋고, 푸짐한 세트 메뉴는 테이블 위에서 평면으로 담으면 찍고 나서 뿌듯해집니다. 요즘 SNS에서는 이렇게 위에서 내려 찍는 것이 유행이라죠?
음식 사진에서의 F1.8
렌즈의 F1.8 조리개 값은 얕은 심도로 주 피사체인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어두운 실내 조명에서도 깔끔한 결과물을 안겨줍니다. 사진이 '그럴듯해' 보인다는 목적에서 얕은 심도 표현은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미러리스 카메라를 꺼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마이크로 포서드 규격의 PEN-F는 APS-C 타입 혹은 35mm 풀 프레임 규격 카메라보다 심도 표현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음식 사진을 찍는 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얕은 심도가 아니라서 F1.8 최대 개방 촬영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죠. 개방 촬영의 해상력이 뛰어나 질감을 잘 표현하고, 주변부 비네팅 등 광학적인 한계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점 등도 장점으로 꼽습니다.
오히려 F1.8 최대 개방 촬영은 때때로 너무 심도가 얕아 초점을 설정하기 힘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충분한 식당에서는 F2.8 내외의 조리개 값을 설정하고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생선회를 촬영한 곳은 실내 조명이 매우 어두운 곳이었는데, F1.8 최대 개방 촬영으로 1/60초 셔터 속도, ISO 2500의 감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늘 저보다 먼저 음식을 맛본 카메라, 서울과 후쿠오카에서 제 PEN-F와 17mm F1.8 렌즈는 요즘 #먹방카메라 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 거기에 빠질 수 없는 하이볼 한 잔까지 -
오늘도 역시 제 가방에는 PEN-F와 17mm 렌즈가 있습니다. 부모님과 저녁 약속이 있거든요. 작고 가벼워 걱정 없이 챙길 수 있어 좋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근사하게 담을 수 있어 좋습니다.
매력적인 외모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매력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