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이번에도 먹으러 왔습니다"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이고, 첫인상이 절대적인가 봅니다. 지난 여름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가장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는 이제 제게 완전히 '진탕 먹으러 떠나는 곳'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첫번째 후쿠오카 여행이라며 야나가와 뱃놀이며, 다자이후 구경, 모모치 해변의 오후 등 일주일간 부지런히 다녔지만 결국 남은 것은 '맛있는 음식'이었고, 그 매력을 잊지못해 삼개월 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한 번 후쿠오카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배고플 틈 없이 실컷 먹고 왔습니다.
맛있는 도시 후쿠오카의 이야기, 그 시작은 라멘덕후 김씨의 가슴을 설레게 한 '치킨멘'입니다. 이름이 재미있죠? 지인이 다녀온 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 기억이 나서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습니다.
chicken-men.com
일본 〒810-0004 Fukuoka Prefecture, Fukuoka, Chuo Ward, Watanabedori, 2 Chome−3−8 渡辺通カステリア
치킨멘은 지하철 나나쿠마선의 와타나베도리역, 야쿠인 역과 가깝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닭칼국수 하나만 파는 곳 같지만 실제로는 말아먹고 비벼먹고 찍어먹는 다양한 종류의 라멘을 즐길 수 있는 식당입니다. 영업 시간은 오전 11:30분부터 자정까지로 비교적 늦은 시각까지 라멘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후쿠오카 사람들처럼 하루 일정의 끝에 라멘으로 시메(〆, 마무리)하면 알찬 후쿠오카 라이프가 되겠죠?
한국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메뉴판
거짓말을 좀 보태 일본인 반, 한국인 반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 관광객이 많은 후쿠오카. 그래서 한국어 메뉴판을 구비하고 있는 식당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텐진, 하카타 등 번화가의 식당에선 한국어 메뉴판이 없는 곳이 오히려 드물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치킨멘 역시 한국어 메뉴판을 제공하고 있는데, 번역 수준이 다른 후쿠오카 식당에서 본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습니다. 번역기를 통한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글로 메뉴 이름과 내용, 주요 메뉴를 먹는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한국 식당에 온 듯 착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 SNS 이벤트까지 -
덕분에 치킨멘은 후쿠오카의 식당 중 난이도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합니다. 한글 메뉴판이 워낙 상세하고 먹는 방법까지 설명돼 있으니까요. 거기에 능숙하게 SNS 이벤트까지 응모하면 면 사리나 차슈 등의 메뉴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의 대표 메뉴라는 텟판야키 츠케멘과 타이완 마제소바를 주문했습니다. 이제 막 오픈한 매장에 피어오르는 연기와 순간 매장 안을 가득 채운 냄새가 더욱 배를 고프게 하더군요.
- 기다리는 시간 두근두근 -
대표메뉴 텟판야키 츠케멘
치킨멘에서 가장 유명한 라멘이자, 친구가 자랑했던 바로 그 메뉴입니다. 말 그대로 철판구이(텟판야키)를 츠케멘과 함께 먹는 라멘인데, 소스에 면을 찍어먹는 츠케멘에 구운 차슈를 곁들이는 것이 매력이죠. 가격은 1100엔으로 다소 비싼 편입니다만, 철판 구이가 곁들여지는 '고급 메뉴'인데다 마무리밥까지 하면 양이 제법 많습니다.
- 게다가 달걀도 두 개! -
라멘 위에 얹어 나온 차슈를 철판에 구워 면과 함께 먹는 것이 텟판야키 츠케멘을 즐기는 방식. 물론 차슈를 굽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됩니다. 덜 구워 먹으면 부드러운 식감으로 즐길 수 있고, 충분히 구우면 고소함이 극대화되는 것이 장점이죠. 은은한 불에 굽기 때문에 탈 염려 없이 원하는 만큼 고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소스를 듬뿍 찍은 면을 감싸서 한 입에 먹으면 텟판야키 츠케멘의 완성. 찍어먹는 라멘인만큼 소스에 간이 강한 편인데, 별다른 양념이 가해지지 않은 담백한 차슈와 함께 먹으니 맛에 균형이 잡히더군요. 개인적으로 고기를 완전히 익혀 따뜻한 상태에서 면과 함께 먹는 것이 좋았습니다. 면은 굵고 찰기가 있어서 고기와 씹는 맛이 있었습니다.
텟판야키 츠케멘의 마무리는 철판에 밥과 소스를 넣어 볶는 볶음밥. 이건 양은 좀 적어도 영락없는 한국식이죠? 고기와 면, 밥까지 즐기는 '라멘 정식'인 셈입니다.
일본에서 먹는 대만식 마제소바
두 번째 메뉴의 이름은 타이완 마제소바. 말 그대로 대만식 면요리입니다. 후쿠오카에서 대만식 라멘을 주문한 것이 재미있는데, 치킨멘의 인기메뉴 중 하나라고 하네요. 국물이 있는 일반 라멘과 달리 소스, 고명과 함께 비벼먹는 비빔면입니다. 형형 색색 고명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들이죠? 들춰냈을 때 흰 쌀밥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사정없이 비벼주면 완성 -
비빔면은 거칠게 비벼야 제 맛이 난다고 어머니께 배웠습니다. 내가 면이고 면이 나인 것처럼 비비면 모양새는 아까보다 못해도 맛있는 마제소바가 완성됩니다. 면은 텟판야키 츠케멘과 같은 굵고 쫄깃한 면이며, 소스에는 고기가 포함돼 있습니다. 죽순과 파, 양파 등 고명의 식감이 다양해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다만 제 입에는 소스의 간이 조금 강하게 느껴졌는데, 비빔면임을 감안해도 조금 짠 편이니 짠 음식을 싫어하시는 분은 소스를 조금 덜어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타이완 마제소바의 마무리 역시 '밥'입니다. 후쿠오카는 거리만큼 문화적으로도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어요. 마무리 밥을 남은 소스에 넣어 비벼 먹는데, 제 입에는 면보다 밥이 소스와 더 잘 맞더군요. 게다가 소스가 짠 편이라 처음부터 밥을 넣어서 볶음면밥(?)으로 다함께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다 먹고 나서요.
치킨멘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돈코츠 라멘 대신 먼저 다녀온 지인들이 추천받은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일반적인 라멘과 다른 스타일의 츠케멘과 마제 소바는 담음새며 먹는 방법, 마무리 밥에서 느끼는 친근함까지 다양한 재미를 줬습니다. 그동안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전통적인 면요리와 다른 것도 매력이었고요. 마치 앉아서 중국-일본-대만-한국 음식을 차례로 즐긴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녀온 후 저 역시 후쿠오카 여행을 앞둔 지인에게 이 치킨멘을 추천했습니다. 가급적 많은 친구들과 함께 가서 다양한 면요리를 즐겨 보라고요. 단, 소스는 조금 덜어내라는 충고도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