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오키나와 여행 마지막 날, 아침부터 내내 해변에 앉아 오키나와의 낭만을 즐길 생각에 들뜬 마음을 외면하듯 도시에는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아쉬움에 끌려가듯 공항으로 향하는 늦은 오후까지 정말 종일 그치지 않고, 종종 우산과 몸을 가눌 수 없이 세차게 쏟아졌습니다. 짧은 여행을 향한 조바심에도 어쩔 수 없이 지난 이틀간의 꿈같은 시간을 되새김질 하듯 정리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것이 없었죠.
- 아아, 야속한 섬날씨여 -
그렇게 오전 시간을 지난 사진들과 기억들로 보내고, 점심때가 되니 어김없이 배가 고파 오더군요. 허전한 마음까지 채워줄 푸짐한 식사가 필요하던 그 날, 추천받은 스테이크 음식점을 찾아갔습니다. 단돈 1000엔, 한화 약 만원으로 두툼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더군요. 상호명은 얏빠리 스테키, 우리말로 풀면 '역시 스테이크!' 정도가 되려나요.
오키나와 사람들은 스테이크를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후쿠오카 사람들이 술자리의 마무리로 라멘을 먹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스테이크로 하루를 마무리 할 정도로 말이죠. 대표적인 번화가인 오키나와 국제 거리 내에도 수많은 스테이크 음식점이 있는데, 얏빠리 스테키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2호점, 국제 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도보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크지 않은 점포 내에 빈자리를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벽과 테이블 등 전체적으로 실내가 주황색으로 칠해지고 채워져 있는데, 색 때문인지 들어서는 순간 식욕이 돌더군요. 벽에는 아마도 이곳을 방문한 유명인들의 것인 듯 사인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일본 식당들은 보통 실내가 매우 좁거나, 주문과 테이블 세팅, 반찬 등을 셀프 서비스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는 이런 자판기 방식의 주문이 일반적이지만요. 입구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하는 방식입니다. 대표 메뉴인 1000엔짜리 스테이크는 하단 작은 버튼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기 무게에 따라 300g은 1480엔, 400g은 1980엔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200g이 적을 것 같아 1480엔, 300g 무게의 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주문서를 제출하고 나면 매장 한쪽에 마련된 셀프 바에서 샐러드와 밥을 가져다 먹을 수 있습니다. 양배추와 마카로니 샐러드, 흰 쌀밥을 보니 역시 동양 문화권이다 싶습니다. 얼마든지 먹어도 되니 각각 한 접시씩 수북하게 담아갑니다. 고기는 역시 밥과 함께 먹어야 제 맛 아니겠어요?
잠시 후, 돌판에 놓인 스테이크 한 접시가 테이블로 배달됩니다. 종이는 기름이 튀지 않게 고기를 덮었겠지만, 왠지 '짠'하고 300g 스테이크에 놀라 보라는 익살처럼 느껴지더군요. 냄새와 소리 때문에 이 때부터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 혹시 눈이 부신건가? -
- 300g 얏빠리 스테키 -
얏빠리 스테키 300g입니다. 그야말로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돌판 위에 놓여있으니 구석기 시대 사람이 이렇게 식사를 했을까, 라고 잠시 딴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기는 무척 크고, 두툼했습니다. 살코기 위주 부분이라 담백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좋겠고, 기름진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기본 얏빠리 스테이크보단 다른 메뉴를 선택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얏빠리 스테키의 스테이크는 따로 굽기 정도를 선택하지 않고 달군 돌판에 원하는 만큼 구워 먹는 방식입니다. 미디움 레어 정도로 테이블에 놓인 고기는 시간이 갈수록 속까지 익어가는데, 살코기 위주라 많이 굽지 않고 가급적 일찍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렴한 가격에도 스테이크를 무척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비결은 테이블에 놓인 다양한 양념 덕분입니다. 기본적인 소금, 후추 외에도 와사비와 바비큐 소스, 마늘/양파 소스 등 다양한 소스와 하나씩 곁들이면 300g이 금방 사라집니다. 소금만 살짝 찍어서 고기의 풍미 그대로를 즐겨도 좋고, 소스를 듬뿍 묻혀 밥반찬으로 먹어도 그만입니다.
아, 400g을 시켰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없어진 고기에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잠시 국제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요.
오키나와는 물가기 만만치 않은 곳이지만, 잘 찾아보면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더군요. 지난 후쿠오카 여행과
같이, 이번에도 곧 다시 오키나와를 찾게될 것 같습니다. 그 땐 꼭 400g을 먹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