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 이름마저 아름다운 이 섬은 비행기로 몇 시간 걸리지 않는 짧다면 짧은 거리지만 언제나 가고 싶다는 마음뿐 수많은 여행이 반복되는 동안 유독 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몇 번이나 다녀왔으니 단순히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첫번째 프라하 여행을 주저했던 것처럼, 간절히 열망하면서도 망설이며 미루고 미뤄왔던 것이겠죠. 체코 프라하 다음으로 동경했던 섬에 얼마 전 짧게나마 머물고 왔습니다.
영화 한 편으로 시작된 동경
- 영화 카후를 기다리며(カフーを待ちわびて) -
섬에 대한 동경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으로 시작됐습니다. 한적한 시골 바닷가 마을의 청년에게 갑자기 찾아온 기적같은 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바닷가에 의자 하나를 놓고 여주인공이 남자의 머리를 손수 잘라주던 장면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영화 속 배경이 오키나와라는 것을 알게된 후 언젠가 꼭 가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낯선 그리움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영화 속 장소나 오키나와의 부속 섬 중 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같은 해변에 가보는 것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식지는 않았죠.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감탄사에
급히 차를 세우고 내린 해변
화창한 오후, 해안 도로를 달리다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우와-, 하고요.
빠르게 달리며 창 너머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러다 이 풍경에서 달아나 버릴까 싶어 해변에 차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마침 오키나와 남부 해안선을 따라 달리던 중이었고, 가까운 해변을 찾아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좁은 길을 따라 해변으로 가던 중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 다시 한 번, 조금 전보다 더 큰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와아-
낡은 건물과 커다란 바위가 가린, 그래서 그 너머 풍경에 더욱 안달나게 한 입구를 따라 걷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습니다. 다행인지 백사장 모래가 발을 붙잡는 바람에 몇 걸음만에 포기하고 곧 다가올 커다란 감격을 기대하며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 내보이는 것보다 조금씩 비치는 속이 더 매혹적이라는 말을 저는 이 짧은 해변 입구를 걸으며 절실하게 공감했습니다.
오키나와 남부, 미바루
해변 꿈이 이뤄지던 순간
백사장은 텅 비어있고, 사람 없는 배 몇 척만이 낮게 떠있는 해변. 그리고 그 뒤로 위로 펼쳐진 맑고 쾌청한 하늘. 입구를 가린 것들이 걷히고 미바루 해변의 전경이 펼쳐졌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을 열어 큰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무언가 커다란 것이 한번에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벅차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영화, 사진 어쩌면 상상 속에서 보고 떠올렸던 섬의 풍경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이었어요. 이 해변이 영화 속 그 해변은 아니었지만, 당장 저 백사장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겠다 싶은 풍경에 그간의 기다림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해변엔 그저 빈 배 몇척이 떠있을 뿐입니다. 왠지 영화 촬영이 끝난 뒤의 세트장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거짓말처럼 바닷물이 투명했고, 하늘이 배경지처럼 선명해서 풍경 전체가 비현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 순간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거란 생각에 당장은 말을 줄이고 눈과 카메라로 마음껏 담아 두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기적같은 풍경에서 머물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고, 몇 번씩이나 뒤를 돌아보며 해변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오키나와에서 제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해변 풍경이 됐습니다.
단 십여 분간 머물렀을 뿐이지만, 이 섬에 그리고 해변에 닿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긴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아마 이 해변의 오후와 여기 닿기까지의 기다림,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감격은 족히 몇 년간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머리 끝까지 행복했지만, 너무나도 짧았기에 기꺼이 다시 그리워할 수 있는 아주 강렬한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