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특별한 일입니다,
같은 카메라를 다시 선택한다는 게 말이죠.
사실 PEN-F는 더 이상 새롭지는 않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프라하, 대만 여행을 함께하며 대략적으로나마 이 카메라의 장단점과 가치, 가능성을 가늠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한 번 사용한 제품은 다시 구매하지 않는 제가 같은 카메라를 다시 선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PEN-F는 제가 사용해 본 적지 않은 수의 카메라 중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몇 달만에 다시 만난 올림푸스 PEN-F. 예뻐서 좋고 이름이 짧아서 부르기 쉬운 것도 좋습니다. 재회 기념으로 첫 번째는 제가 이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려 합니다. 이 카메라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테니까요.
첫 번째, 디자인
단연 첫 손에 꼽는 이 카메라의 매력은 디자인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이 카메라를 처음 보았을 때, '좋다'는 생각보다 '갖고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PEN-F는 올림푸스에서 만든 카메라 중 단연 가장 멋진 디자인이며 제가 선호하는 레트로 스타일의 카메라 중에서도 '얼짱 순위'로는 꽤나 상위권에 있습니다. 4K 동영상과 쾌적한 속도가 만족스러웠던 E-M1 Mark II 대신 그보다 조금 부족한 이 카메라를 다시 선택한 것은 이 매력적인 외모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멋진 올림푸스 카메라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저는 이 카메라의 외형을 좋아합니다.
PEN-F의 디자인은 과거 올림푸스 영광의 시절인 필름 카메라에 그 시작점이 있습니다. 1963년 발매된 동명의 하프 포맷 필름 카메라 PEN-F의 외형을 현대석으로 재해석한 외형은 원작과 완전히 같지 않지만 실루엣과 디테일에서 50년의 시간차를 상당 부분 줄였습니다. 기존 E-P 시리즈와 다른 PEN-F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기존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볼 수 없는 스타일입니다.
- 어때요, 우리 닮았나요? -
가죽 느낌의 그립과 금속 프레임을 조화시킨 전면과 상판의 에지, 이름에 사용된 폰트는 영락없이 1963년의 것을 따 왔고, 트레이드마크인 전면 다이얼도 부활시켜 새로운 기능을 넣었습니다. 전원 레버를 필름 놉 형태로 디자인한 것도 레트로 스타일을 표현하려 한 올림푸스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컬러는 실버와 블랙이 있는데, 라이카 M 시리즈를 구매할 때 실버/블랙 사이에서 고민하던 것이 떠오를 정도로 각자의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2016년에는 실버가, 2017년에는 블랙이 더 멋져 보입니다.
상판 디자인이 다소 아쉬운데, 아무래도 기존 올림푸스 카메라의 인터페이스를 이으려다보니 왼쪽에는 레트로 스타일, 오른쪽은 기존 E-P 시리즈의 느낌이 반반씩 섞인 형태가 되었습니다. 물론 촬영 모드와 설정 변경, 노출 보정 등 카메라의 기본적인 조작성은 뛰어나지만 전체적인 외형의 완성도에서 유일하게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상판의 제품명 각인도 오리지널 PEN-F 로고를 넣었으면 아직까지도 박수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 PEN-F + M.ZUIKO DIGITAL ED 12mm F2.0 -
- PEN-F + M.ZUIKO DIGITAL 17mm F1.8 -
올림푸스 카메라 중에서도 그 스타일이 독보적이다보니 렌즈도 신경써서 고르게 됩니다. PEN-F와 가장 잘 어울리는 렌즈로 역시 17mm F1.8과 12mm F2.0 두 개의 단렌즈를 꼽습니다. 비슷한 디자인의 25mm F1.8, 대구경 망원 렌즈인 75mm F1.8도 외형의 조화가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제 촬영 특성상 35mm 환산 24mm광각과 35mm 표준 단렌즈를 선호하게 됩니다. -25mm 렌즈는 조금 어렵더군요 -
12-40mm F2.8 같은 렌즈는 OM-D 시리즈를 위한 것이지 PEN-F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PEN-F와 함께 위 두 개의 렌즈를 사용하고 있고, 매일 아침 카메라를 챙기며 어떤 렌즈를 챙길지 고민합니다. 물론 결론은 늘 무겁지 않으니 둘 다 챙기자, 가 되지만요.
PEN-F는 LCD가 180도로 회전하는 최신 기술(?)이 탑재됐는데, 셀프 촬영이나 하이/로우 앵글 촬영이 가능한 본래의 목적도 마음에 들지만 화면 뒷면에 전면 그립부와 같은 패턴을 적용해 위 사진처럼 LCD를 사용하지 않을 때 완벽한 레트로 스타일이 완성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라이카 M 시리즈나 후지필름 X 시리즈같은 레트로 스타일을 내세운 카메라들은 필름 카메라같은 룩을 위해 후면 LCD를 가리는 하프 케이스를 사용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PEN-F의 이런 회전 LCD 방식이 편의성과 완성도 모두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나와의 거리
- OM-D E-M1 Mark II와 PEN-F -
지난해 여행에서 PEN-F를, 그리고 올 2월부터 약 두 달간 플래그쉽 카메라 E-M1 Mark II를 사용했습니다. 운 좋게도 올림푸스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 둘을 모두 사용해 보았는데요, 최근에 사용한 E-M1 Mark II의 경우 사용하며 점점 만족도가 커지는 카메라였습니다. 처음엔 비싼 가격이 신경 쓰였습니다만, 빠른 속도와 인터페이스, 4K 동영상의 화질 등 최신 카메라로서 다방면에 두루 능력있는 모습을 발견하며 높은 점수를 줬는데요, 그럼에도 다시 PEN-F로 돌아오게 된 것은 매일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4K 동영상 하나만큼은 매우 아쉽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PEN-F와 17mm F1.8 렌즈 조합, 그리고 E-M1 Mark II와 25mm F1.2 PRO 렌즈 조합을 비교하면 휴대성에서 꽤 큰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 중 25mm F1.2 PRO 렌즈의 육중한 체구가 차지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E-M1 Mark II의 성능에는 아무래도 일반 렌즈보다 PRO 렌즈를 사용하게 되더군요. 이 두 조합은 그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PEN-F의 경우 휴대성과 스타일을 강조했고, E-M1 Mark II는 최고 수준의 성능을 요구하는 프로 작가들을 위한 세팅이니까요. 저는 매일 휴대하며 일상을 기록할 카메라가 필요했기 때문에 PEN-F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카메라 의식하게 되는 거리 사진 촬영에도 작은 PEN-F가 더 유리했고요.
그렇게 약 일주일간 PEN-F를 사용하며 찍은 사진들은 확실히 E-M1 Mark II를 사용할 때와는 달리. 좀 더 소박하고 친근한 장면들이 많아졌습니다. 외출이 있을 때마다 가방에 넣어 휴대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좋았는데, 때문에 카메라보다는 제가 중심인 기록들이 주를 이루게 되더군요. 이른바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카메라'라고 하겠습니다.
< 올림푸스 PEN-F로 촬영한 이미지 >
- PEN-F | 12mm | F2 | 1/8000 | ISO 100 -
식당을 나와서 거리를 걷다가, 혹은 노천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발견한 재미있는 장면을 간편하게 담을 수 있는 것이 다시 PEN-F를 쥐고 나서 변화된 점입니다. E-M1 Mark II는 아침마다 챙겨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고, 가방까지 맞춰 골라야 했던 카메라였지만, PEN-F는 고민없이 어떤 가방에도 넣어 매일 함께했고 평소 같았으면 놓치거나 스마트폰으로 아쉽게나마 담았던 장면들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E-M1 Mark II를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은 사진들이 남을 것 같습니다.
- PEN-F | 12mm | F2 | 1/2500 | ISO 200 -
- PEN-F | 12mm | F2 | 1/8000 | ISO 160 -
- PEN-F | 12mm | F4 | 1/100 | ISO 200 -
- PEN-F | 12mm | F2 | 1/5000 | ISO 200 -
- PEN-F | 17mm | F3.2 | 1/60 | ISO 200 -
다이얼을 돌려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는 흑백 모드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흑백 모드만의 매력이 있어 JPG 흑백 이미지와 RAW 파일을 동시에 촬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PEN-F만의 기능 역시 마음에 듭니다.
- PEN-F | 12mm | F1.8 | 1/80 | ISO 250 -
하지만 무엇보다 PEN-F가 손에 착 감기는 순간은 식당에서 음식 사진을 찍을 때입니다. 작고 가벼워서 식당에서 꺼내기 좋거든요. 아마 조만간 'PEN-F와 17mm F1.8로 촬영한 맛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음식 사진만 포스팅을 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PEN-F로 찍은 음식 사진을 보니 앞으로의 음식 사진들이 기대됩니다.
- PEN-F | 17mm | F2.2 | 1/60 | ISO 640 -
- PEN-F | 12mm | F2 | 1/80 | ISO 1250 -
- PEN-F | 17mm | F2.2 | 1/60 | ISO 400 -
블로그 포스팅용으로 사용할 사진을 촬영할 때도 이 크기의 작은 크기, 가벼운 무게는 매우 큰 장점입니다. 풀 프레임 DSLR 카메라는 크기와 무게는 차치하더라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꺼내기가 다소 부담스러운데, PEN-F야 한 손에 들고 가볍게 셔터를 누를 수 있으니 이전보다 더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M1 Mark II의 성능은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휴대성에서는 큰 차이가 있는만큼 디자인, 휴대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PEN-F는 제 서브 카메라로서 최적입니다.
멋져서, 가벼워서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카메라보다 예쁘게 생겨서 들고 다닐 때 왠지 뿌듯하고, 종일 어깨나 목에 걸어도 부담이 없어 여행용으로도 무척 좋습니다.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를 하고 잠시 카페에 앉아 블로그에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PEN-F가 커피와 함께 테이블에 놓여 있습니다. 역시 카메라는 예뻐야 하나 봅니다. 그리고 중요할 때 제 손에, 가방에 있어야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