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왔던 것 같은데.."
지금이야 모임이나 약속이 있으면 주로 홍대로 가지만 예전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학로에 왔습니다. 집에서도 가깝고 그 땐 이 쪽에 먹을 것도 놀 것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 날 익숙한 이 길을 걸으며 새삼 '참 오랜만에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식당을 보며 한 번 더 생각했죠 '분명히 가본 것 같은데' 라고.
제가 한창 대학로를 다닌게 대략 4-5년은 되었을 테니 정말 오래된 곳입니다. 몇달만에 가도 제법 분위기가 다른 서울의 번화가를 생각하면 이쯤되면 오래된 식당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한창 데이트 음식으로 초밥이 인기를 끌기 시작할때쯤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야끼반자이 혜화점에서 주말 점심 식사를 했어요.
식당에 들어서 안쪽 테이블로 걸어가니 확실히 알겠습니다. 분명 몇년 전 온 적이 있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를 보니 그 때 그대로인듯 역시나 꽤 오래된 느낌이 납니다. 이제는 이런 낡음이 이 식당의 역사와 신뢰를 뒷받침하게 되겠죠? 고등학교 혹은 대학생 때 이제 막 나를 설레게 한 이성친구와 어색한 주말 데이트를 할 때 종종 가던, 바로 그런 '한국식 초밥집' 느낌이 살아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벽을 가득 채운 낙서에서도 그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초밥집의 '깔끔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대학로 번화가에서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식당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이른 점심 시각에도 초밥이 만들어지는 주방은 매우 분주합니다. 초밥을 쥐는 주방은 오픈형으로 되어 있어 위생에 대한 걱정을 덜고 있습니다. |
아마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늘어난 듯 메뉴판이 상당히 화려합니다. 주 메뉴는 역시나 초밥이고, 초밥과 우동을 함께 먹는 정식 메뉴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로 등록이 돼 있네요. 저는 특별한 주말 점심식사를 위해 무려 VIP 초밥 세트와 도시락 세트 두개를 시켰습니다. -물론 저 혼자 다 먹은 건 아니고요-
- 도시락 세트의 자태 -
- VIP 초밥의 위용 -
주문한 세트 둘이 나오니 테이블에 빈자리가 없습니다. 두 세트 기준 가격이 35000원인데 서너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양이 푸짐한 편입니다. VIP 초밥은 생선은 물론 장어와 와규, 달걀초밥까지 다양한 종류로 14가지 초밥이 나오고 도시락 세트는 규동과 튀김, 초밥, 회무침, 우동, 데마끼에 후식으로 주스까지 그야말로 '풀세트'입니다. 후식인 오렌지 주스 한 잔에서 왠지 옛 정이 느껴집니다.
갓 튀긴 튀김은 역시나 맛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먹어야 합니다. 도시락 세트의 가격은 15000원인데 하나의 세트에서 초밥, 규동, 튀김 등 다섯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좋더군요. 물론 한 끼 가격으로서는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저같은 대식가에게는 고민할 필요 없이 조금씩 다 먹어보는 즐거움이 있겠네요.
특히나 한국인 입맛에 맞는 '덮밥'이 있어 먹고나면 누구라도 배가 든든한 것이 장점이죠.
VIP 초밥 세트는 그야말로 초밥을 가장 좋아하시는 분께 좋겠습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14개를 다 먹으면 양도 든든합니다. 가격은 2만원으로 자주 즐기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이렇게 주말 데이트때 한 번 먹어보는 정도는 나쁘지 않죠. - 평일 내내 라면을 먹으면 되니까요, 마침 라면을 좋아하니까요 -
역시나 저는 아직 아이 입맛인지 소스맛 풍부한 연여 초밥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 달걀 초밥도요. 두 명이서 두 세트로 아주 배부르게 잘 먹은 주말 점심 식사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길에 그때 그 식당이 아직 있다는 것은 종종 무척 특별한 의미가 됩니다. 혜화 야끼반자이가 이 날 제게 그런 느낌을 줬습니다. 다음에 또 방문할 때도 여전히 이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정통 일본식 초밥집이 어색한 저는 종종 이렇게 '한국식' 초밥집에서 편하게 떠들며 식사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거든요.
사진은 캐논 EOS-6D, EF 35mm F/2 IS USM으로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