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고기만 먹고싶다"
먹을 것 없는 동네 수유, 그래서 동네서 밥 먹을 때가 드뭅니다. 그러던 중 지난 금요일, 동네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라 파밀리아'에 다녀 왔어요. 그야말로 '고기 파티'.
수유역 근처의 강북구청 사거리에 있는 높은 건물 11층에 위치해 뷰가 기대되는 곳입니다. 사실 저는 이 건물 12층 헬스장을 쭉 다녀서 낯이 익었어요. 하지만 이 식당 방문은 처음입니다. 몇년 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해산물 뷔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근 새로 리뉴얼해 다른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죠. 흔히 볼 수 없는 브라질 숯불 바비큐 레스토랑입니다. 워낙 높이 있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역시나 11층의 높은 위치 덕분에 내려다 보는 뷰가 괜찮습니다. 종로나 강남의 고층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먹자골목의 2,3층에 있는 식당과는 앉는 자세부터 달라집니다. 어딘지 모를 여유가 생기죠. 오후 세시부터 다섯시까지가 브레이크 타임이라 여섯시쯤 방문한 저는 아마도 이 날 디너 첫손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뷰가 좋은 창가 자리에 안내 받았어요.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점점 어두워지는 '수유리' 야경을 감상하며 밥을 먹었습니다. 매일 걷는 골목, 자주 가는 스타벅스, 택배 보낼 때 가는 우체국 등 익숙한 곳인데 이렇게 내려다보니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음식은 아직 주문하기 전이지만 창가 자리의 분위기를 보니 연인이나 가족과 여유있는 분위기에서 식사하기에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이 창가쪽 테이블은 칸막이를 통해 실내 대형 홀과 분리되어 있어 으슥한 좌석을 원하시는 분께 좋겠습니다.
멕시칸 레스토랑이라 뭔가 '거친' 것을 기대한 제가 어리석었을까요? 테이블 세팅은 일반적인 '고기 써는' 레스토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검정색 테이블에 흰색 접시, 그리고 적당히 어두운 조명이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여담이라면 여기 조명이 사진 찍기에 좋더군요. 생소하 멕시칸 음식에 코스의 즐거움, 예쁘게 나오는 사진까지. 다음엔 여기서 데이트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주문 전에 실내 인테리어를 감상해 봅니다. 고기에 맞는 와인과 각종 주류를 함께 판매중입니다. 물론 저는 고기에 집중하기 위해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슈하스코' 혹은 '츄라스코'라고 알려진 브라질 요리가 대표 메뉴입니다. 고기나 과일 등을 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굽는 요리를 통칭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라 파밀리아의 저녁 메뉴는 B코스와 S코스로 이름 붙여진 슈하스코 무한리필 코스 두 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조금 더 고가인 S코스의 경우 보섭살,양고기,꽃등심 등 총 12개의 슈하스코 메뉴를 로테이션 형태로 맛볼 수 있는 메뉴입니다.
이 날 주문한 식사는 당연히 고기 두 가지 더 나오는 S 코스. 주문을 하니 고기에 어울리는 세가지 소스가 먼저 제공됩니다. 일반적인 바비큐 소스, 올리브오일과 향신료를 섞은 소스, 그리고 독특한 젤리 형태의 민트 젤리 소스. 각각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에 어울린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민트 젤리 소스가 독특한 식감과 향 등으로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냄새가 다소 있는 양고기를 위한 소스라고 하는데, 소스 향이 너무 강해서 자칫 고기 맛을 느낄 수 없으니 유의 하셔야겠습니다.
외국 주방장 분께서 종류별 슈하스코를 하나씩 들고 나와 직접 서빙하는 방식입니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오셔서 고기를 직접 잘라 주시는데 구워진 고기를 보는 즐거움이며 매번 다른 고기를 씹고 맛보는 재미, 평소 접하지 못한 음식을 맛보는 만족까지, 맛보다 오히려 이런 경험들이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아마 연인의 데이트에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아아- 고기, 고기, 고기]
총 12개의 고기가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조금씩 맛 보면서 맛이 있을 것 같으면 많이 달라고도 하시고, 소스를 바꿔가며 맛도 보고 소스 없이도 먹어보고. 그렇게 무한리필을 즐기면 되겠습니다. 굽기는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미디움' 정도인데요, 고기 식감을 즐기시는 분께는 오히려 더 좋으실 수도 있겠어요. 대부분이 생소한 맛이지만 종종 전형적인 '쇠고기 스테이크'와 '닭고기 구이' 그리고 '소시지' 등 익숙한 맛도 있습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보섭살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처음엔 선명한 선홍빛 때문에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먹고 나니 삼겹살과 함께 가장 만족했던 고기입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주나봐요.
먹다보니 '어 벌써?' 할 정도로 금방 지나갔습니다. 벌써 열두 가지가 말입니다. 코스 요리에는 샐러드바 이용권이 포함돼 있어 파스타나 빵, 샐러드 등 사이드 메뉴를 함께 이용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고기' 그리고 '무한 리필'을 내세운 식당이니 일단 충분히 고기를 즐기고 난 후에 곁다리 메뉴를 이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제로 저도 이 날 살짝 느끼하다 싶을 정도로 원없이 고기를 먹었습니다.
코스의 마지막은 시나몬을 둘러 구운 파인애플입니다. 구운 파인애플 맛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겉이 바삭하고 속이 촉촉 한데다 시나몬 향과 새콤한 과육 맛이 잘 어울렸습니다.
후식격인 파인애플은 먹고 나니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다시'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무한리필 코스라 제가 마음에 들었던 보섭살과 삼겹살, 양고기, 꽃등심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첫번째 순환은 주방장분이 직접 와서 서빙을 하시지만 그 후부터는 이렇게 원하는 고기를 주문하면 접시에 놓여 서빙이 됩니다. 이렇게 1.5바퀴를 돌고 나니 고기 게이지가 충분히 충전됨을 느낍니다. 아쉽지만 이제 고기를 그만...
위에 말씀드렸듯 코스 요리에는 샐러드 바 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고기와 함께 먹기 좋은 샐러드와 밥, 한국 사람에게 제격인 쌈장과 각종 무침까지 있고 아이들은 피자와 파스타, 리조또 메뉴가 거부감 없이 이용하기 좋겠습니다.
재미있던 것은 홀 한쪽에 있는 초대형 치즈, 이렇게 초대형 치즈를 통째로 놓고 안쪽에서 직접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입해 먹는 치즈보다 고유의 '꼬릿꼬릿'한 향이 강한 이 녀석은 고기, 빵과 함께 먹으면 묘하게 입맛을 돋우더군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재미있는 풍경입니다.
이렇게 금요일 저녁의 '맥시멈 고기 파티'가 끝이 났습니다. 매일 지나가면서 보는 식당이지만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주변 경관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11층의 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슈하스코'메뉴, 외국인 주방장이 직접 서빙을 하며 12가지 고기를 조금씩 맛보는 재미까지. 매일 먹는 평범한 메뉴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즐거움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온전히 고기로만' 배를 채울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막 시작하는 어색한 커플에게 괜찮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맛 못지 않은 멋까지 고려하신다면 말이에요.
사진은 캐논 EOS-6D, EF 35mm F/2 IS USM으로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