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꿈꾸는 시원한 광각의 매력
라이카 M 시스템엔 28mm 엘마릿이 그 출발점이다
오늘 소개할 렌즈는, 좀 오래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라이카 M 시스템의 대표적인 광각 렌즈 28mm Elmarit, 그 중에서도 90년대에 생산된 4세대 제품입니다.
부담스럽게 넓지 않아, 그리고 광각 특유의 왜곡 현상이 심하지 않아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28mm 광각 렌즈, 게다가 M 시스템의 뷰파인더에서 가장 쾌적한 광각 렌즈이기도 하죠. F2.8의 엘마릿 시리즈는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서 광각 렌즈 입문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이 28mm 엘마릿 시리즈는 5세대까지 출시되었죠. 저는 이 4세대 렌즈는 존재감 뽐내는 육중한 덩치와 멋진 후드가 마음에 들었고, 소형화 때문에 화질에선 오히려 다소간 손실이 있었다는 현행 렌즈보다 이 렌즈가 뛰어난 것이 있다는 평가를 보며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네요.
사실 광각 촬영을 즐기지 않아서 사용한 기간에 비해 이 렌즈로 촬영한 사진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의 렌즈만 챙겨야 할 때 35mm 혹은 50mm를 주로 챙기게 되는 제 성향 때문이었죠. 하지만 종종 풍경이나 야경 사진을 찍을 때 이 렌즈의 시원한 시선은 촬영의 즐거움을 줬고, 다녀와서 사진을 확인할 때도 특유의 강한 대비와 화려한 색 표현 때문에 그 만족감은 결코 다른 렌즈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M 카메라에 물려 놓았을 때 제 눈엔 가장 멋진 렌즈 중 하나이기도 했구요.
LEICA Elmarit-M 28mm pre-asph(4th)
생산년도 : 1992~
구성 : 7군 8매
초점거리 : 28mm
화각 : 76도
조리개 : 2.8 - F22
최소 초점거리 : 70cm
필터 규격 : 46mm
'경박단소'가 장점인 -아 가볍지는 않군요- 라이카 렌즈 치고 이 렌즈는 그 크기가 꽤나 큰 편입니다. 광각 렌즈가 구조상 크기가 표준 렌즈보다 큰 편이 많은데, 이 렌즈가 딱 그렇습니다. 28mm의 보기 좋은 광각, 그리고 F2.8의 최대 개방 조리개가 대표적인 특징이며 46mm를 필터를 사용합니다. 최단 촬영 거리가 70cm로 조금 멀지만, 원경 촬영이 주가 되는 광각 렌즈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 것이 큰 불편함으로 다가온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광각 그리고 망원 렌즈는 그 용도가 뚜렷한 편입니다. 그만큼 범용으로 사용하기엔 어렵지만 원하던, 그리고 예상했던 장면을 만났을 때 머릿 속 상상을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짜릿함을 안겨주는 것이 이런 렌즈들의 장점이죠. 저는 이 28mm 렌즈를, 종종 35mm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풍경과 한국의 좁은 거리 풍경을 찍을 스냅 촬영 용도로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이 28mm 렌즈의 '광활함'을 보완해 줄 50mm 렌즈를 함께 챙기면 부족함 없는 구성이 되었죠.
제가 가지고 있는 현행 렌즈들이 asph (비구면) 렌즈가 탑재 되면서 해상력 면에서는 M Typ240의 2400만 화소도 무리 없이 표현할 만큼 뛰어나지만 어째 후보정 없이는 '밋밋' 혹은 '심심'한 성향을 보이는 반면에, 비교적 오래 된 렌즈인 28mm 엘마릿 렌즈는 썸네일 중에서도 '이 사진'이라고 찝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그 개성이 확실했습니다.
그럼 이 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몇 장 볼까요?
샘플 이미지는 라이카 M9과 M Typ240으로 촬영했습니다.
대부분 DNG-JPG 무보정이지만, 경우에 따라 채도와 화이트 밸런스 보정 등이 가해진 사진입니다.
다른 렌즈로 촬영한 사진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대비 보정을 하게 되는데, 이 렌즈로 촬영한 사진에는 거의 그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만큼 '강한 대비'가 특징인 렌즈입니다.
이 렌즈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역시나 많은 분들이 말씀 하시는 '강한 대비와 진한 발색'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렌즈들의 평가에 있어서는 사용자, 그리고 카메라에 따라 그 평가가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렌즈만큼은 이구동성으로 이 두 가지를 꼽습니다. 그만큼 확실한 개성을 갖고 있고, 그 개성이 강하다는 거겠죠?
풍경 사진 빈도가 높은 광곽 촬영의 특성에 부합하는 이러한 장점으로 현행 asph보다 이 렌즈에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라이카의 현행 렌즈들이 비구면 렌즈 채용으로 해상력과 샤프니스면에선 크게 발전했지만, 렌즈별 개성 없이 비교적 뉴트럴한 성향을 보인다는 평가가 많은데, -저는 종종 이 것을 '재미 없는 일본 카메라 같아졌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렌즈 자체의 광학적 성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옛 렌즈들을 찾는 분들이 꾸준히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 M8을 통해 라이카 M 시리즈에 입문할 때부터 변함 없이 제 주력 렌즈 중 하나였던 이 렌즈는 M9과 M Typ240 두 카메라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그 특성을 파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카메라는 그 발매 시기만큼이나 색감이나 표현력 등에서 전혀 다른 결과물을 보이는 제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8mm 엘마릿 렌즈를 사용했을 때 공통적으로 묻어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역시나 다른 렌즈보다 강한 대비, 그리고 강렬한 색 표현입니다.
강한 대비와 색 표현 때문에 풍경 사진은 평소보다 더욱 인상적으로 기록되고, 다른 렌즈에서 느끼기 힘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특성 때문에 암부 표현에 대한 불만을 자주 느꼈고, 그것은 인물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대비가 종종 장점이 되는 흑백 사진에서 이 렌즈는 풍경과 인물 모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렌즈이지만, 맑은 인물 사진을 워하시는 분께는 마냥 탁하고 부담스러운 렌즈일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이 렌즈로 사람을 촬영한 적은 없습니다.
더불어 올드 렌즈 특유의 치우친 색감도 빼 놓을 수 없는 성향입니다. 28mm 엘마릿 4세대 렌즈는 다소 낮은 색온도의 따뜻한 색감을 보이며 이 때문에 청명한 느낌을 원하는 풍경 사진에선 종종 화이트 밸런스 보정이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특징이 올드 렌즈만의 '감성'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저에겐 이런 치우친 색감은 다른 개성과 달리 이 렌즈의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야경에서는 오히려 더 화려한 느낌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올드 렌즈들은 현행 렌즈들과 달리 이 고유의 색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이 차이가 크고 현대 디지털 카메라의 결과물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도 합니다. 후보정을 즐기는 사용자들은 자연스레 화질 좋고 보정이 용이한 현행 렌즈에 대한 선호도가 높겠지만, 렌즈만의 특성을 즐기시는 분, 그리고 색감에 따라 톤이 미세하게 변하는 흑백 사진에서는 이런 특성을 반기시는 분이 많겠습니다.
강한 대비 때문에 확실히 이 렌즈로 찍은 사진들은 '재미'가 있습니다. 별 다른 후보정 없이도 눈을 끌어당길만큼 힘이 있고, 능선이나 안개 속 건물들의 실루엣 등 세밀한 명암 표현이 필요한 원경 사진에서 그 장점이 도드라지죠. 그래서 컬러보다 흑백 사진에서 더욱 만족했던 기억입니다.
야경 사진에서 이 렌즈의 장점을 두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넓은 장면을 담아내는 특유의 시원함은 물론, 강한 대비 때문에 검은 하늘은 한결 더 아득하게, 진한 발색으로 조명은 더 화려하게 '꾸며'줍니다. 이 날 같이 촬영한 50mm 렌즈의 야경이 좁고 답답한 화각은 물론이고, 심심한 색감 때문에도 참 재미 없었는데, 이 날을 계기로 며칠간 부담감을 감수하고 28mm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광각 렌즈가 풍경에서만 사용하는 렌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죠, 게다가 28mm는 사용자에 따라서는 가장 편한 화각이라고도 느껴질 정도로 초광각 렌즈에 비해 그 가능성과 활용도가 넓으니까요. 게다가 골목이 좁고 이목이 집중되는 한국에서의 촬영은 종종 이 28mm가 스냅 사진용으로도 제격입니다. 좁은 골목에서 이 렌즈의 넓은 시선을 이용해 좀 더 다양한 구도를 시도할 수 있게 되고, 담아내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집니다. 물론 많은 피사체를 한 이미지에 답는 것이 능숙하지 않은 저는 이 28mm를 사용할 때 자꾸 피사체 쪽으로 다가가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35mm와 큰 구도의 차이가 없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원한 느낌은 그러한 거리 조절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주제의 표현을 우선시하는 저는 피사체와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렌즈 화각이 넓어질수록 어려움을 느끼곤 했는데 제 이런 한정적이고 획일적인 촬영 방법과 표현들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이 렌즈는 꼭 필요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파인더 안에 쏟아지듯 평소보다 많이 들어온 피사체와 주변 구조물들까지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습관을 얻게 됐고, 무엇보다 주 피사체에만 집중했던 그 동안의 미흡한 표현이, '배경과의 조화'라는 의미에서 조금은 변화하고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풍경 사진 못지 않게 거리 풍경을 이 렌즈로 찍게 되었던 것 같네요.
물론 기본적인 렌즈의 평가 요소인 '해상력' 그리고 '샤프니스'의 면으로 보자면 이 렌즈는 확실히 단점이 많습니다. F2.8의 비교적 높은 조리개에서 출발하는 렌즈임에도 불구하고 개방 화질이 좋지 않은 편이고 F4-5.6에서 가장 좋은 해상력을 보이지만 풍경 촬영에서 극도로 섬세한 묘사를 위해 F11의 높은 조리개도 종종 활용하게 되는 이 렌즈의 용도를 고려하면 확실히 이 렌즈는 약점이 있습니다. 92년부터 출시되었으니 벌써 20년이 넘은 이 렌즈에게서 최신 기술이 적용된 현행 렌즈같은 칼같은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그 아쉬움을 상쇄시켜줄 매력이 분명 존재하지만 높은 화소의 M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시는 분은 이러한 성향을 미리 숙지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렌즈를 이용한 스냅 사진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강한 대비였습니다. 넓은 화각 때문에 많아지는 사진 속의 피사체와 주제들, 그렇게 이미지가 다소 산만해지는 느낌들을 이 강한 대비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원하는 주제만 부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런 관점에서 이 렌즈의 스냅 사진은 그 동안 제가 다른 렌즈를 사용하면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선사하고,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특히나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를 활용하기 용이한 이 렌즈는 흑백 사진에서 그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각 렌즈로서, 그리고 풍경 촬영 용도로 이 렌즈가 마음에 들었던 것을 꼽자면 거의 0에 가까웠던 주변부 왜곡입니다. 물론 28mm를 초광각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우리가 넓은 시선을 얻기 위해 당연히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주변부 왜곡에서 이 렌즈는 확실히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이미지가 넓음에도 결코 부담스럽지 않았고, 정직하고 단정한 풍경 및 스냅 결과물을 안겨줬던 것이죠.
나의 사진에서 '렌즈'는 그 동안 얼마나 중요했는가
이 렌즈를 통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이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에서 렌즈가 차지하는 비중을 미미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28mm 렌즈는 이 렌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개성이 뚜렷하고, 그 결과물 역시 다른 렌즈의 그것과 차별화됩니다. 운 좋게도 이 렌즈의 강한 대비와 진한 발색은 28mm 광각 촬영이라는 용도에 부합해서 저의 풍경 촬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촬영 용도와 표현 방식에 따라 이 렌즈의 특성은 반드시 장점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맑은 느낌의 풍경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이 렌즈가 적합하지 않고, 현행 렌즈에 비해 크고 무거운 외형, 그리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해상력은 분명히 눈에 띄는 단점이죠. 게다가 F8 이상의 조리개에서 회절 현상으로 화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유저들의 많은 평가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 이 렌즈를 '화질'만으로 평가하자면 쟁쟁한 현행 asph 렌즈들 사이에서 분명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감안하고 앞서 열거한 두 가지의 뚜렷한 이 렌즈의 개성을 이용하기에 따라, 여느 렌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느리고 불편한 라이카 M 시리즈로 사진을 다시 시작하게 된 후부터 잊고 있던 '광각 촬영의 즐거움'을 저에게 다시 일깨워 준 28mm 엘마릿 pre-asph. 렌즈, 그 강렬한 매력과 이 렌즈와 함께 보았던 수 많은 결정적 장면들 때문에라도 다른 M 시리즈 광각 렌즈는 욕심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 분에겐 어떤 렌즈가 가장 특별한가요? 저에겐 바로 이 '잘 사용하지도 않는 광각 렌즈'가 가장 특별한 렌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