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올 초 다녀온 도쿄 여행 사진들을 여전히 넘겨보고 있어요. 시간이 없단 핑계도 있지만 요즘 부쩍 다시 가고 싶어서. 보름간 찍은 만 장이 넘는 사진들 중 베스트 컷과 거기 얽힌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여행했던 도시를 그립게 만든 장면과 그 이유들입니다.

사진 촬영에 사용한 카메라는 니콘 Zf, 렌즈는 탐론 28-75mm F/2.8 DI III VXD G2입니다. 그간 작은 라이카 M 카메라에 단렌즈 하나 물려서 달랑달랑 다녔던 터라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 줌렌즈 조합이 어떨까 반신반의했는데 장점도, 단점도 있었습니다. 후회는 없어요. 라이카 카메라였다면 못 찍었을 장면도 있었으니까.

어떤 여행은 단 한 장의 사진을 위해서 시작된다.

해 뜨기 직전의 후지산 풍경입니다. 네 시 반에 호텔에서 나와 후지산 맞은편 스팟까지 한 시간을 걸었어요. 가와구치호에 비친 후지산 반영을 보고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출국 전 몇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그 중 첫 번째는 후지산 감상이었습니다. 일정상 후지산 등반은 어렵고 산이 잘 보이는 근처 도시에 머물며 사진, 영상으로만 봤던 풍경을 직접 보기로 했어요. 떠날 날이 가까워 날씨가 흐려지고 예보도 좋지 않아 맘 졸였지만 운 좋게도 낮과 밤 모두 화창했습니다.


1박 2일 내내, 어딜 가든지 후지산이 보였습니다.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 즈음 차창 밖으로 보인 커다란 후지산의 모습, 노을과 백조가 인상적이었던 야마나카호 풍경 등. 큰 맘 먹고 챙겨 간 400mm 망원 렌즈로 정상도 확대해서 찍어봤고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잔잔한 호수와 옅은 여명에 둘러싸인 후지산의 모습입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정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지금 제 컴퓨터 배경 화면이에요.


여행은 모든 거리 풍경들의 집합

정확히 어디인지, 무엇에 이끌려 셔터를 눌렀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 사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됐습니다. 제가 가진 도쿄의 이미지, 일본 거리 풍경의 특징이 잘 드러났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두리번거리는 듯한 남자의 실루엣 뒤로 화려한 조명과 과장된 화장의 여성들 표정이 대비되는 것이 좋습니다.



대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관광 인프라와 치안 문제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도시 구조물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거리사진의 대표적인 무대인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도쿄 역시 거리 사진 촬영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골목을 따라, 걸음이 이끄는 대로 다닌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멋진 건축물을 발견하기도, 공사장 풍경이 만든 묘한 변형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도쿄를 가도 카메라 목에 걸고 정처없이 다닐 거예요.
누구의 눈으로 여행을 마주할 것인가

도쿄타워를 찍은 사진들 중 제 원픽은 이것입니다. 도쿄타워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수 있어요. 타워를 마주 보고 있는 건물 외벽에 비친 것을 찍은 것입니다. 근데 이것이 도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홉 시가 넘은 밤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다분히 일상적인 모습과 도쿄의 낭만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겹쳐 있잖아요. 제가 제대로 담지 못해서 그렇지 눈으로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스팟이에요.



도쿄의 대표 랜드마크인 도쿄타워. 인스타그램에는 도쿄타워가 가장 멋있게 보이는 스팟들에 대한 소개가 넘쳐납니다. 그 중 한 곳을 가 보니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어서-버스 정류장인 줄 알았어요- 두 시간은 기다려야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다더군요. 그 외에도 추천하는 스팟들을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역시 첫 번째 사진만큼 마음에 드는 건 없습니다. 어쩌면 제게만 근사한 사진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직접 여행해 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
다분히 그곳스러운 것들이 마음에 든다면

어느 도시든 특유의 색채가 있습니다. 심지어 삭막한 무채색 도시들도 회색으로나마 기억됩니다. 일본을 즐겨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동네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위 사진은 이름 모를 골목에서 본 모습인데 벽의 색, 자전거의 모양, 포스터의 디자인까지 정말 이동네스러웠습니다. 낡은 것까지도요. 찍고 나서도 한참 서서 눈으로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쿄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색채들을 담으며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면 서울을 여행하며 무엇을 찍을지, 어떤 색으로 기억할지. 아, 이 때 쓴 카메라와 렌즈 모두 일본 제품이라서 그럴까요, 크게 손을 보지 않아도 이 동네 빛과 색을 잘 담는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도시는 정말 한시도 쉬지 않지

빛과 그림자, 사람, 자동차 그 외의 모든 것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맞물려 돌아가는 것들을 보며 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우스울 수도 있지만 저는 요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행으로 해소합니다. 이 사진은 그 자체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날의 이야기 그리고 표면에 비친 제 취향이 마음에 듭니다.

도쿄 국립신미술관(国立新美術館)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사진가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저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요. 가장 윗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파도를 형상화 한 건축물과 빛, 그림자가 교차하는 것이 꽤나 멋집니다. 제가 이런 풍경을 좋아해요. 온갖 것들이 혼재된 혼란스러운 장면. 갖가지 요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프레임. 시부야 스크램블이 그렇고, 대형 쇼핑몰이 그랬습니다.





다만 제 실력이 부족한 탓에 수백 장의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없더라고요. 탐론 28-75mm 렌즈의 부족한 광각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마 발길 돌리던 차에 찍은 꼭대기층 풍경이 제일 나았습니다. 슬픈 일이죠. 다른 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뒷모습에서 진짜 표정을 본다

사람들의 뒷모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직접 드러난 표정보다 뒷모습에서 그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어느 한쪽으로 규정되지 않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다이칸야마에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 츠타야 서점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은 하나로 설명할 수 없지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좋아해요. 조명이 부드러워 보고 있으면 편안하기도 하고요.

전망대에 늘어 선 이들의 뒷모습에선 그들의 환희를 함께 느끼고

한 사람뿐인 운전실에서 성실하게 수신호를 하는 기관사에게는 삶의 방식을 배웁니다.




앞으로도 제 여행 사진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장르일 겁니다. 제 뒷모습도 한장 끼워 넣어 간직하고 싶어요.
돌아오는 것까지가 여행

1박 2일간 발등, 발바닥이 아프도록 후지산 탐방을 다녔지만 가장 아름다운 뷰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봤어요. 이렇게 편한 방법이 있는데 뭐하러 고생했나 싶으면서도 근처나마 직접 가 봤기에 그 감동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이 때 이 카메라와 렌즈를 챙기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렌즈가 줌렌즈라 75mm 망원으로 후지산의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거든요. 출국 직전까지 물음표였던 줌렌즈는 적어도 이 여행에선 합격점을 줍니다. 확실히 표현의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그만큼 크고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고됐지만 사진이 목적이라면 감내해야죠.


이 외에도 다양한 환경에서 28mm 광각, 75mm 망원을 오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주로 28mm, 35mm 단렌즈를 사용하는 저는 늘 망원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이번에 원없이 해소했습니다.




라이카 M 카메라로는 번거로운 장노출 촬영도 맘껏 즐겼고요. 역시 디지털은 최신이 좋습니다.

열심히 다닌 것치고 베스트샷이라 할만한 사진이 적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즐겼던 것으로 만족합니다. 근 십 년만에 라이카 카메라를 두고 니콘 카메라를, 탐론 렌즈를 선택한 것도 성공이었습니다. 다음 도쿄 여행도 이변이 없는 한 같은 조합으로 다녀올 것 같아요. 그 때가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