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떠나고 싶을 때 하지만 너무 멀리 가기가 망설여질 때 늘 허난설헌 기념관에 있는 숲을 떠올립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를 눈 감고 듣고 있으면 뭐든 다 괜찮아지거든요.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단 생각도 들고. 여유가 없어 1박 2일밖에 못 있다 왔지만 봄이 한창이었고 날씨가 완벽했습니다. 새로운 곳을 찾기보단 이미 좋아하는 곳들을 다니니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고요.

오랜만에 라이카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배낭 여행과 뉴욕 겨울나기를 함께 했더니 이 카메라가 있어야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요. 한 것이라곤 걷고 찍는 것뿐이었던 짧은 여행.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정리했습니다.

강릉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허난설헌 기념관에 붙어 있는 작은 숲입니다. 관광지보단 산책 나온 동네 주민들이 많은 한적한 공간이에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보다 숲의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거든요. 여기에 처음 갔을 때 제가 많이 지쳐 있었나 봅니다. 여기에 있는 벤치에 앉아 느낀 편안함, 뭉클함을 여전히 기억하고 때마다 찾아 가니까요. 이번에도 아침 일찍 찾아 온 저를 화창한 빛으로 맞아 줬습니다.



원래는 한 주 전에 가려고 했습니다만 비 예보로 일정을 연기했어요. 비를 피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아쉽게도 경포호의 벚꽃이 다 떨어져 버렸죠. 그래도 호숫가 한켠 공원에 아직 꽃송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잔잔한 물은 꽃잎을 품고 있었고요. 아마도 올 봄 벚꽃 축제의 마지막 날이 아니었을지. 그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최대한 저렴한 숙소를 찾았겠지만 이번엔 스스로에게 좀 후해지고 싶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자고 싶다고. 다행히 평일 비수기라 그리 무리하지 않고도 오션뷰 호텔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은 컵라면에 우유로 때웠지만 뭐 어때요, 파도 소리 들리면 어디든 해안가 레스토랑이죠. 알람을 대여섯 개 맞춰 놓은 덕에 해 뜨기 전 눈을 떴습니다. 던져 놓은 재킷을 걸치고 발코니에 나가 아침을 맞았어요. 붉은 빛으로 시작해 선명한 빛줄기로 끝난 여명에 돈이 아깝지 않더군요.

안목해변 끝자락에 있는 강릉항은 어떤 산책길보다 걷기 좋습니다. 이삼십 분 걸어가면 끝에 빨간 등대가 있는데 종착지가 분명하니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아요. 곁눈으로 보는 물 색깔도 어쩜 그리 아름다운지. 여길 걸을 때마다 다 정리하고 강릉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1박 2일 그것도 여행이라고 둘째날 노을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원래는 아르떼 뮤지엄의 미디어 아트를 감상할 계획이었습니다만 노을의 색과 떼지어 흐르는 구름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어요. 이것보다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가 있을 리 있나, 하고. 재회를 다짐하게 만든 멋진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