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 렌즈 보이그랜더 녹턴 50mm F1.0 ASPH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F1이라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 다음으론 보이그랜더 VM 렌즈 중 가장 비싼 높은 가격을 봐야겠죠. 비구면 렌즈를 포함한 특수 렌즈 2매가 포함된 구성, 메탈 소재와 조리개/초점 링의 조작감 등 사양과 완성도에서는 가격을 납득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중요한 건 최종 결과물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F1 개방 촬영만의 독특한 이미지 표현, 광학 특성과 성능을 바탕으로 이 렌즈를 평가해 보려고 합니다. 렌즈의 외형과 사양 등의 기본 정보는 지난 포스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이그랜더 녹턴 50mm F1.0 ASPH VM 렌즈 - 1.처음 만나는 F1.0 렌즈 (Voigtlander Nokton 50mm f/1.0 Aspherical VM)
F1만의 심도 표현
F1 또는 F0.95의 개방 조리개 값을 갖는 라이카 녹티룩스 50mm 렌즈의 작례를 찾아보며 F1.2/1.4와 완전히 다른 독특한 표현력에 매료됐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조리개 값을 갖는 녹턴 50mm F1의 출시 소식을 접하고, 제품을 받아 촬영을 준비하면서 동경했던 그 느낌을 이 렌즈로 느낄 수 있을지 혹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가 컸습니다.
F1.4, F2와 비교하면 한 스톱 내외의 차이인데도 F1 촬영 결과물은 확실히 특별합니다. 여러 장의 사진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띕니다. 더 얕아진 심도의 영향이 가장 크겠죠. 자주 사용하는 35mm 또는 50mm F1.4 렌즈의 최대 개방 촬영도 종종 심도 표현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이곤 하는데 F1의 심도가 그 효과를 더 증폭 시키는 것 같아요.
근접 촬영 등에서 종종 회오리 보케같은 독특한 광학 특성이 보이기도 합니다. 현행 렌즈에 가끔 올드 렌즈의 재미가 불쑥 튀어 나와 촬영하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혹자에겐 들쭉날쭉한 것으로 느껴지겠지만요. 저는 해상력 저하 걱정 없이 최대 개방 촬영을 즐길 수 있는 쪽을 더 선호하지만 이 렌즈를 사용하는 동안 절대 다수를 F1 최대 개방으로 촬영할 만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보이그랜더 렌즈들 중 녹턴 시리즈는 다른 렌즈보다 샤프니스가 낮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녹턴 50mm F1 렌즈도 F1-1.4 구간에서 수차와 해상력 저하가 눈에 띄는 '녹턴식 표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구경 렌즈의 광학적 한계로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F2 이상의 조리개 값에서는 울트론 렌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샤프합니다. 물론 물론 아포란타 렌즈의 칼같은 선명함까지는 아닙니다만. 아래는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표현의 차이를 비교한 것입니다.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차이
익숙한 50mm F1.2/1.4 렌즈와 같은 조건에서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변화, 그리고 녹턴 렌즈만의 이미지 특성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캐논의 RF50mm F1.2 L USM 렌즈, 소니의 Planar 50mm F1.4 ZA 렌즈입니다. 두 렌즈 모두 해상력 뛰어난 현행 렌즈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출시 시기는 가장 늦지만 클래식 렌즈의 특성을 가진 녹턴 50mm F1 ASPH 쪽이 조금 더 개성있는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F1 최대 개방의 심도 표현은 F1.4는 물론 F1.2와도 차이가 납니다. 사실 이전에는 50mm F1.4 렌즈보다 크고 무겁고 비싼 F1.2 렌즈를 구매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는데 작지만 분명한 둘의 차이를 확인하니 F1 렌즈를 위해 투자해야 할 이유 역시 납득이 갑니다. 필드에서는 이 차이가 더 증폭돼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를 가를 수 있겠죠. 그 외에도 같은 50mm 초점거리지만 촬영 화각은 녹턴 50mm가 두 렌즈보다 조금 더 넓은 것도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보이그랜더 : 47.8°, 캐논 : 46°, 소니 : 47°)
90cm 최대 근접 촬영
녹턴 50mm 렌즈의 약점 중 하나는 90cm의 최단 촬영 거리입니다. 앞서 비교한 캐논, 소니의 렌즈들이 40,45cm까지 근접 촬영이 가능한 것과 차이가 있죠. 그래서 작은 피사체를 근접 촬영하게 되면 두 렌즈가 더 얕은 심도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피사체와 1m 이상 떨어진 환경에서는 녹턴 50mm의 F1 개방 촬영이 빛을 발하겠죠. 라이카 M 시스템 자체가 근접 촬영에 약점이 있다보니 녹턴의 불편함 역시 어느 정도 감내하게 됩니다. 물론 다른 보이그랜더 렌즈가 50-70cm 까지 촬영 거리를 줄인 것과 비교하면 못내 아쉽지만요.
밤을 밝히는 렌즈
F1의 뛰어난 수광 능력은 빛이 부족한 야간/실내 촬영 경험을 바꿔 놓았습니다. 손떨림 보정도 없고 고감도 이미지 품질도 좋지 못한 라이카 M10-D 지만 F1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을 사용하면 늦은 밤, 어두운 실내에서도 셔터 속도 확보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ISO 감도를 낮춰 결과물이 깨끗해지는 효과도 있고요. 저조도 촬영에서는 개방 해상력이 뛰어난 현행 렌즈의 덕을 톡톡히 봅니다. 걱정 없이 F1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현행 렌즈다운 해상력
비구면 렌즈를 포함한 특수 렌즈 두 매를 채용한 만큼 해상력에도 기대를 하게 됩니다. F1 최대 개방 촬영에서도 해상력 저하가 심하지 않아서 최고 해상력만 만족스러운 수준이라면 아포란타와 또 다른 의미로 전천후 50mm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녹티룩스를 사랑하는 사진가들처럼요. 출시가 200만원히 훌쩍 넘는 고급 렌즈인만큼 바라는 게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는 조리개 값에 따른 해상력 차이를 비교한 것입니다.
조리개 값에 따른 해상력 차이
중심부
주변부
구석부
중심부
주변부
구석부
F1 최대 개방에서의 해상력 저하는 확실히 눈에 띕니다. 다만 F1-2 구간에서는 조리개 값에 따라 해상력은 물론 주변부 비네팅, 색수차까지 단계별로 개선됩니다. F1.6 촬영분부터 소프트한 이미지가 눈에 띄게 향상되고 F2 내외부터는 현행 apsh 렌즈의 결과물처럼 매우 샤프해집니다. 각각의 조리개 별 이미지 차이가 제법 커서 F2 까지는 조리개 값마다 다른 표현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구경 렌즈에서 흔히 발생하는 주변부 비네팅과 색수차 역시 개방 촬영에서 뚜렷하게 보입니다. 의도적으로 비네팅을 활용할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촬영에서 제법 신경 쓰일 정도라 소프트웨어 후보정을 거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F2 이상의 조리개 값에서는 현행 렌즈의 느낌이 강합니다. 해상력 좋은 것으로 알려진 울트론, 아포란타 못지 않게 샤프하고 F8까지 균일하게 유지됩니다. 해상력을 기준으로 하면 이 렌즈는 F2 전후로 두 개의 렌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개방 촬영에서 해상력보다 색수차가 결과물에 방해가 될 때가 많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대구경 렌즈의 최대 약점, 비네팅/색수차
이 렌즈처럼 놀라운 F값을 갖는 렌즈들이 필연적으로 갖는 약점으로 주변부 광량 저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 렌즈를 구매한다는 건 주변부 비네팅을 감수하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와 같다고 할 정도로요. VM 렌즈치고는 크지만 F1의 조리개 값을 생각하면 작은 편에 속하다보니 개방 촬영에서의 주변부 광량 저하는 피할 수 없고 꽤 높은 조리개 값까지 유지됩니다.
F1 최대 개방 촬영에서는 작게 줄인 이미지에서도 꽤나 신경 쓰일만큼 비네팅이 심하고, 조리개 값이 높아지며 점차 나아집니다. 사실 이건 이 렌즈의 단점이라기보단 현행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주변부 광량 보정 기능으로 렌즈의 광학적 약점을 보완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것에 가깝죠. F2.8 이상의 조리개 값에서는 비네팅이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물론 소프트웨어 보정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죠.
아래는 캐논 RF50mm F1.2 L USM, FE50mm F1.4 ZA 렌즈의 최대 개방 비네팅을 비교한 것입니다. 캐논, 소니 카메라의 렌즈 보정 설정은 모두 끄고 순수 광학 성능으로 비교했습니다.
캐논, 소니 렌즈들도 주변 조도 보정 옵션을 끄면 비네팅이 제법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죠. 나란히 비교하니 역시 F1/1.2/1.4의 조리개 값 차이만큼 비네팅 역시 진해집니다. 녹턴 50mm F1의 비네팅이 모서리쪽으로 갈수록 조금 더 어둡습니다. 대구경 렌즈를 쓰기 위해선 이 정도 비네팅은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구경 렌즈에선 피할 수 없는 약점이자 한계입니다.
동일한 F1.4 촬영에서는 그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카메라/렌즈따라 색감이 달라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육안상으로도 실제 촬영에서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녹턴 50mm F1 렌즈가 다른 두 렌즈보다 작고 가벼운 것을 고려하면 광학 완성도가 우수하다고 평할 수 있겠죠. 물론 AF/MF 차이가 있습니다만.
F1 최대 개방 색수차 테스트
개방 촬영의 색수차 역시 눈에 띄지만 강한 조명 주변, F1에서 도드라질 뿐 조리개 값을 F2 이상으로 설정하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입니다. 조명이 잘 제어된 환경에서는 F1 최대 개방 촬영에서도 수차 없이 깨끗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빛망울(보케) 연출
F1 개방 촬영에서의 크고 아름다운 보케를 기대하며 이 렌즈에 관심을 갖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 렌즈의 광학 특성을 평가할 때 보케의 비중이 다른 어떤 렌즈보다 높겠죠. 절대적인 조리개 값이 낮으니 보케의 크기는 당연히 클 테고, 얼마나 깔끔하고 선명하게 표현할 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중심부>
<주변부>
F1 최대 개방에선 역시 크고 선명한 원형 보케가 만들어집니다. 주변부로 갈수록 타원형으로 변하지만 중앙부에서만큼은 기대만큼 화려한 보케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조리개의 형태가 완전한 원형이 아닌 터라 F1.2부터 12각형으로 모양이 바뀌고 다시 원형으로 변하는 구간 없이 계속 유지됩니다. 주변부 보케 역시 절반 가량 잘린 타원형에서 다각형의 형태가 드러납니다. 원형 보케를 원한다면 이 렌즈는 가급적 F1 최대 개방 조리개 값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긴, 그러려고 이 크고 무겁고 비싼 렌즈를 쓰는 거겠죠.
선명한 빛갈라짐 표현
높은 조리개 값에서의 빛갈라짐 표현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습니다. 아무래도 개방 촬영에 주목하는 렌즈인만큼 장노출 촬영에서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본 어떤 렌즈보다도 빛갈라짐의 형태가 아름다웠습니다. 아래는 조리개 값에 따른 빛갈라짐의 형태를 비교한 것입니다.
F2의 비교적 낮은 조리개 값부터 선명한 빛갈라짐 형태가 드러납니다. 이후 조리개 값이 높아짐에 따라 크기가 커지고 모양 역시 선명해집니다. 열 두 갈래로 날카롭게 갈라지는 형태는 일반적인 빛갈라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 줄기가 마치 스트라이프 패턴 처럼 여러 선으로 표현되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F8-11 구간에서 가장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고 가장 높은 값인 F16에선 회절 현상으로 인해 형태를 잃습니다.
F1 그리고 50mm 프레임
F1부터 F16까지. 과장을 좀 보태 각 조리개 값마다 마치 다른 렌즈처럼 변화무쌍한 결과물을 뱉어 내는 이 렌즈에는 역시 50mm 초점거리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장면에도 대응할 수 있는 50mm 프레임이 탄탄한 바탕이 되고 그 위에서 F1의 몽환적인 심도 표현과 보케, 곧이어 현행 렌즈다운 섬세한 묘사, 아름다운 빛갈라짐까지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렌즈입니다. 앞선 설명대로 개방 촬영에선 올드 렌즈처럼, 높은 조리개 값에선 현행 렌즈처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비싸다고 생각했던 렌즈 가격에 어느정도 수긍하게 됩니다. 이 렌즈엔 라이카 녹티룩스와는 또 다른 녹턴만의 빛을 경험하는 맛이 있습니다.
[ 라이카 M10-D + 녹턴 50mm F1으로 촬영한 이미지 ]
* 썬포토(주)의 도움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