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의 두물머리. 오랜 시간 제게 많은 추억을 남겨 준 곳입니다. 요즘도 계절마다 한 번씩은 찾게 되고요. 요즘은 연잎 핫도그와 드라마 배경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예전처럼 한적한 매력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답답한 날 고민 없이 곧장 다녀올 수 있는 곳 중에 이만한 곳도 드물죠.
양수리 한복판에 작은 섬처럼 떠 있는 긴 지형의 끝이 두물머리로 알려진 곳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맞닿는 절묘한 지점. 마치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한강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가슴 탁 트인 경관을 보여 줍니다. 주차장에서 제법 먼 길을 걸어 들어가야하는데, 곁으로 보이는 잔잔한 파도와 주변 경관도 예뻐서 지루하지 않아요.
오랜만에 보는 풍경. 커다란 그늘 드리운 저 나무가 두물머리를 대표하는 주인공이죠. 연꽃이 피는 여름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인데, 제가 찾은 6월 중순은 아직 연꽃 개화 시기 전이라 푸릇푸릇한 초여름 풍경으로 가득했습니다. 지금이 7월 중순이니 곧 연꽃이 만발하겠네요. 두물머리 근처에 있는 세미원이 연꽃 명소로 유명합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두물머리 주변으로 포토존과 카페가 즐비해져서 이제는 예전같은 여유로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여전히 답답함을 떨치려 두물머리로 출발하는데 도착하는 순간 '아, 예전의 그곳이 아니지.'라며 작게나마 맘 한구석에 후회가 생기긴 합니다.
다만 포토존을 지나 더 안쪽으로 지나가면 닿는 두물머리의 끝자락 '두물경'이 아직까지 그 여유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어서 걷기가 무척 즐겁다죠.
양쪽에 북한강, 남한강을 끼고 벤치 위에 앉아 있으면 첨벙이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 가끔 울리는 새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여유가 정말 좋습니다. 산책로는 잘 닦아 놓았지만 그 사이와 곁은 특별히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나무와 풀이 제멋대로 자라 있어 정겹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이날은 산책로 사이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해질때를 기다렸습니다. 한쪽 귀로는 좋아하는 음악을, 반대쪽 귀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두 시간쯤 흘려 보냈는데 길게 늘어선 햇살 앞으로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신나는 아이의 실루엣, 반짝이는 강아지의 털이 기억에 남습니다. 덕분에 여름해 질 때까지 걸린 제법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다시 두물머리로 돌아가는 길, 이 날 노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후 내내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산등성이 따라 붉은 노을이 위로 번져가는 모습. 기다리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풍경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담은 해질녘 두물머리 풍경. 물이 얕고 잔잔한 이곳은 셔터 속도를 길게 설정해 장노출로 담으면 특히 아름답습니다. 도시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이곳만의 매력을 표현하기에도 좋고요.
어느새 유명 관광지가 되어 버린 두물머리는 예전의 여백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제 아쉬움 앞서는 장소가 됐습니다. 저도 갈 때마다 실망이 커지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 여유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당분간은 계절마다 찾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