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에 가볍게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에 2400만 화소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를 탑재한 컴팩트 미러리스 카메라 시그마 FP.
사진가의 서브 카메라로도 충분하면서 시네마 DNG 등 고사양 비디오 사양이 전문 영상 작업에도 투입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제품입니다.
크기 대비 놀라운 능력을 가진 카메라라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하며 사용했어요.
최근까지 사진과 영상 작업을 병행하면서 라이카-시그마-파나소닉의 L마운트 시스템을 구성했고 파나소닉 S1의 서브캠으로 시그마 FP를 영입했습니다. 다양한 활용 중 개인적으로는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풀프레임 이미지가 일상/여행용 카메라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특히 제짝으로 발매된 45mm F2.8 DG DN 렌즈와의 조합은 한동안 서브 카메라 욕심을 없앨 정도로 매력적이었죠.
시그마 FP에 대한 소개와 기타 정보는 지난 포스팅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이 시그마 FP와 45mm 렌즈를 사용하며 느낀 장단점과 이미지 품질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당초 동영상 촬영 성능 리뷰와 시네마 촬영 환경 구성 등 테스트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제 손에 없어서 지난 촬영 데이터와 그간 사용하며 느낀 것들을 정리하는 수준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참 좋지만 선뜻 추천하긴 어려운 그런 카메라였습니다.
가벼운 카메라, 묵직한 이미지
이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작은 크기였습니다. 단순히 작은 것이 아니라 커다란 DSLR/미러리스 카메라와 같은 크기의 대형 이미지센서를 품고도 말이죠. 크기는 두께를 제외하면 제가 사용하는 5.8인치 아이폰과 비슷하고 무게는 생수 한 병보다 가볍습니다.
비교할만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소니 A7C과 비교하면 근소한 차이지만 시그마 FP가 크기와 무게 모두 우세합니다. 물론 기계식 셔터 탑재, 손떨림 보정 장치, 인터페이스, 내장 뷰파인더 등 세부 사항을 비교하면 소니 A7C쪽이 더 대단해 보이지만 '가장 작은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타이틀을 무시할 순 없죠.
이미지 품질에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2400만 화소의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는데 시그마의 전통적인 포베온 방식 센서는 아니고 일반적인 베이어 방식의 CMOS 이미지 센서입니다. 하지만 이미지 품질에선 충분히 경쟁 제품과 비교할만큼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카메라의 크기가 작다고 화질에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니 휴대성만으로도 이 카메라에 대한 호감도와 평가가 높아졌어요.
이 작은 카메라의 이미지에 대한 만족도는 마이크로포서드나 APS-C 포맷보다 큰 35mm 풀프레임 포맷에서 기인합니다.
요즘 카메라 다들 좋다지만 포맷과 판형의 차이에서 오는 깊이는 앞으로도 극복하기 어렵고, 큰 화면에서 보면 그 차이가 제법 납니다.
물론 이 카메라에서 1kg 남짓 되는 DSLR/미러리스 카메라와 완전히 같은 이미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나름의 단점이 있습니다만, 그건 아래에서 얘기하기로 하고요.
45mm F2.8 렌즈
물론 대형 이미지 센서만으로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빛을 효과적으로 센서에 전달하는 좋은 렌즈가 필요하죠.
그 중요성은 때로는 카메라보다 더 높기도 합니다.
시그마가 FP와 함께 발매한 C 45mm F2.8 DG DN 렌즈는 당시 컴팩트 렌즈군이 없던 L 마운트 연합에서 유일하게 FP와 어울리는 렌즈였습니다. 고성능에 집중한 L 마운트 시스템의 특성상 렌즈 크기가 경쟁 시스템보다 커서 FP에 마운트하면 렌즈에 카메라 매달려있는 형태가 되기 마련이었거든요. 현재는 24,35,60mm 렌즈가 추가됐지만 제가 사용할 때는 FP에 대부분 45mm 렌즈만 사용했습니다.
45mm 초점거리라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35mm와 50mm의 중간 어디쯤, 거기서도 50mm에 조금 더 치우친 렌즈인데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흔히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50mm 렌즈보다 프레임이 조금 더 넓어서 50mm 렌즈의 표현은 좋아하지만 조금 답답하게 느꼈던 제게는 적당하게 느껴지더군요. 보기에 편한 것은 물론이고요.
풍경에 최적화 된 광각 렌즈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주제를 잘 담아내는 표준 렌즈의 특성에는 충실한 편이고, 최단 촬영 거리가 24cm로 짧은 편이라 정물 촬영에도 만족하며 사용했습니다. 이런 전천후 활용이 FP와 함께 가장 먼저 C라인 렌즈로 45mm 렌즈를 출시한 이유였겠죠.
대형 이미지 센서와 F2.8 렌즈
대형 이미지 센서와 낮은 조리개 값은 얕은 심도 표현으로 주제를 부각시키고 이미지를 풍부하게 보이도록 합니다.
FP와 45mm 렌즈 조합 역시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와 F2.8 최대 개방 촬영을 통해 이런 장점을 누릴 수 있죠.
사용자에 따라 F2.8의 조리개 값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만, 렌즈의 크기를 생각하면 납득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F1.4 혹은 그 미만의 조리개로 얕은 심도의 아찔함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풀프레임 카메라에 F2.8 개방 촬영은 주제를 부각시키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대구경 줌렌즈가 F2.8 고정 조리개값을 갖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은 크기와 성능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질 저하 때문에 개방 촬영을 꺼리는 수준의 저화질 렌즈도 아니라서요.
2400만 화소 이미지
이미지 품질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FP + 45mm 렌즈 조합으로 조리개 별 이미지를 중심부/주변부로 나눠 비교해 보았습니다.
이 렌즈의 조리개 값은 F2.8부터 F22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품질은 F2.8 최대 개방에서도 충분히 좋지만 F4.0 촬영부터 샤프니스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F8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이후 조금씩 해상력이 하락해 f22에서는 회절 현상으로 인한 화질 저하가 다소 눈에 띕니다. 그래도 모든 조리개 값을 걱정 없이 사용해도 될 만큼 우수한 수준입니다. 저도 화질 걱정 때문에 최대 개방 촬영을 주저한 적은 없었고요.
주변부는 그 편차가 조금 더 심한 편입니다. F2.8 최대 개방에서 해상력 저하와 함께 광량 저하가 눈에 띕니다. 작은 크기의 렌즈 구성을 위해 피할 수 없는 한계로 보입니다. 하지만 F4로 조리개 값을 한 스톱만 높이면 광량 저하는 쉽게 해소됩니다. 주변부까지 고려한 풍경 또는 팬 포커스 촬영이라면 F4 이상의 조리개 값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물이나 정물 촬영에선 주변부 비네팅이 때때로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 선택적으로 활용하면 되겠고요.
contemporary 렌즈 45mm F2.8 DG DN
이 렌즈의 단점은 근접 촬영에서 눈에 띕니다. 최대 24cm까지 접근 촬영이 가능한데, 이 때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소프트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에서 테스트 한 결과는 원거리 촬영이라 느낄 수 없었지만 가까운 피사체를 촬영할 때 종종 거슬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F4로 조리개 값을 높여 해결하곤 했습니다.
이는 이 렌즈만의 특징이자 단점일 수도, 시그마 C 라인 렌즈의 소형/경량 구조에 따른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시그마는 촬영 용도와 제품 개발 컨셉별로 Contemporart, Art, Sports 라인을 구분해 놓았죠. 셋 중 상대적으로 휴대성은 뛰어나지만 이미지 품질은 다소 떨어지는 C 라인 렌즈의 특성을 구매 전에 감안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르고 당하면(?) 서운하잖아요.
왜곡 억제 능력은 우수합니다. 사실 주변부 왜곡을 잡는 것이 광각 렌즈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지만 표준 렌즈에 가까운 45mm 렌즈에서는 이 렌즈뿐 아니라 타사 저렴한 렌즈군에서도 왜곡 걱정을 하지는 않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도 앞서 본 주변부 광량 저하의 아쉬움이 왜곡까지 이어지지는 않으니 다행입니다. 전반적인 광학 성능은 Art 시리즈만큼 뛰어나진 않아도 크기와 무게 대비 준부합니다.
손떨림 보정 장치의 부재
다음은 카메라와 렌즈 공통의 아쉬움인데, 크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현세대 카메라에서 기본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제법 결여돼 있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손 떨림 보정 장치가 없어서 실내 촬영은 물론이고 야외 촬영에서도 셔터 속도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종종 이미지가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카메라에 손떨림 보정 장치가 있는 파나소닉 S1의 경우 실내에서 1/15 정도의 셔터 속도만 확보해도 촬영 성공률이 꽤 높은 반면, 시그마 FP와 45mm 렌즈 조합은 1/60초에서도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종종 실패가 발생했습니다. 나중에는 안심이 되지 않아서 셔터 속도를 1/120초까지 강제한 후 촬영했어요. 그만큼 ISO 감도가 높아져 이미지 품질에 손실에 있었겠죠. 순간 포착에는 이 카메라/렌즈 조합이 부적절합니다. 특히 아이들 촬영하실 계획이라면 더더욱.
전자식 셔터
전자식 셔터의 문제 역시 있습니다. 기계식 셔터 유닛이 없어 FP는 모든 촬영을 전자식 셔터로 해야 하는데, 실내 조명 아래서 셔터 속도가 조명의 주사율보다 빠르지 않을 때 위 사진처럼 사진에 커튼이 쳐 진 것 같은 플리커 현상이 발생합니다. 저는 일상 스냅 촬영용으로 FP를 애용했는데 실내 촬영의 비중이 많다보니 이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개성 강한 카메라 FP
그 능력을 뒷받침하는 45mm F2.8 렌즈
짧은 기간이지만 이 카메라로 마음에 드는 순간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아마 동일한 장면을 만났을 때 이전에 사용했던 후지필름이나 라이카, 리코의 APS-C 포맷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면 이만큼 깊이있지 못했을 것 같은, 풀프레임만의 능력 덕을 본 사진도 있습니다.
이미지 품질만으로보면 몇몇 한계와 유의사항이 있지만 대형 DSLR/미러리스 카메라에 못지 않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조합이었습니다. 이런 결과물을 점퍼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제가 서브 카메라로 FP를 좋아했고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영상 작업을 병행하신다면 사진과 영상을 넘나들며 가격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후속 제품격인 FP L이 출시됐는데, 기회가 된다면 C 35mm F2 렌즈와 함께 사용해보고 싶습니다.
L 마운트 참 좋은데, 성과가 좋지 못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