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강릉. 얼마 전에도 바다가 보고싶어 주말 1박 2일 일정으로 훌쩍 다녀왔습니다.
더없이 푸른 바다가 있고, 막힌 숨 탁 트이는 솔숲이 있고, 마침 날씨는 화창하고. 더없이 좋은 나들이었어요.
요즘 강릉가면 꼭 먹어야 할 핫한 음식들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나는 것들만 해도 짬뽕 순두부, 순두부 젤라또, 막국수, 짬뽕, 감자 옹심이 등등 수없이 많은데 요즘은 특히 '커피 도시'로 강릉이 유명해졌죠. 그 시작은 안목 해변의 커피 자판기라지만 지금은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테라로사 등 유명 카페들과 숨은 커피 고수들이 모여 카페 투어로도 가볼만한 곳이 됐어요. 실제로 저도 강릉 갈 때마다 주변 추천을 통해 맛있는 커피 한 잔씩은 꼭 마시고 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한 카페 그리고 커피는 조금 더 기억에 남습니다. 시그니처 메뉴 '후추 커피'가 워낙 강한 인상을 줬어요.
상호는 이진리, 영어 Easily를 붙이니 그럴싸합니다. 함께 간 이에게 듣기로 카페 사장님 성함이라고 하는데, 카페명 잘 지으셨네요.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로 겉에서 보기엔 소박하지만 내부는 제법 꾸밈이 있습니다. 밖에서 볼 때보다 넓기도 하고요.
https://place.map.kakao.com/1101057204
제가 서울에 살아서 그런지, 이진리 카페 내부를 보고 망원, 성수에 있는 어느 카페들을 떠올렸습니다. 낡은 건축물의 모습을 가급적 보존하면서 하나하나 시간 들여 모아온 듯 각기 다른 의자와 테이블, 소파들이 놓인 내부가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스타일에 꼭 맞더군요.
가정집을 개조한 이 카페의 특징은 공간마다 분위기며 소품들이 다른 데서 오는 '둘러보는 재미'입니다. 그리고 좁은 복도의 끝에는 창 밖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명당이 있고요. 늦은 휴일 오후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상석을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스티커며 흩뿌린 커피빈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지 않은 것 같은 실내 풍경 곳곳에서 주인의 세심함이 엿보였습니다. 군데군데 반가운 것들도 보이는데, 자주 가는 프릳츠와 리브레의 원두 봉투였습니다. 프릳츠 원두를 사용한 메뉴들이 있더군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이진리 커피' 토핑이 시나몬과 후추로 나뉘는데, 물론 후추를 선택했습니다. 시나몬 커피는 생각보다 흔한 메뉴인데 후추 커피는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후추를 몹시 좋아하는 저도 후추와 커피의 조합을 생각해 본 적 없고요. 주문한 메뉴는 후추 커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반가운 체코 꿀케익 말렌카입니다. 사실 이 케이크에 끌려서 온 것도 있어요.
후추 커피가 어떨지 몹시 궁금했는데, 달콤한 크림 커피 위에 통후추를 갈아 올린 차였습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검은 가루들이 후추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어서 마시기 전에 코를 가져가면 후추 향이 제법 납니다. 낯설어서 그런지 커피 향보다 강하게 다가왔어요. 후추 가루의 크기들이나 향에서 이제 막 갈아 넣은 것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가게 벽면에 붙은 종이를 보니 통후추도 선별해서 사용하시는 것 같더군요.
후추 커피의 맛을 평하자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달콤한 크림 커피의 첫맛을 느끼고 나면 끝맛에 후추의 알싸한 맛과 향이 입과 코를 감싸는데 매운 것을 잘 못 드시는 분은 바로 다시 커피를 마시실테고, 저처럼 후추 향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여운을 즐길 수 있겠죠.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이 커피를 공부하며 고안해 낸 메뉴라고 했는데, 우선 그 발상이 놀랍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조화라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후추향이 강하다보니 입가심용 물 한 잔이 함께 제공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후추 향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커피 향을 좀 더 강하게 유지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커알못의 의견-
오랜만에 보는 말렌카. 달콤한 맛이 일품이죠. 의외로 쉽게 맛보기 힘든데 강릉에서 만나 반가웠습니다. 달콤한 케이크라 후추 커피와의 조화가 좋더군요. 물론 아메리카노랑도 잘 어울리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시그니처 후추 커피를 맛봐야 하지 않겠어요?
살짝 기운 컵은 커피를 마실 때 거품과 크림이 입가에 묻는 걸 줄여준다고 하더군요. 후추 커피라는 기발한 메뉴 구성부터 이런 세심한 배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즐거움 또는 안락함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 실내 인테리어까지. 커피 고장 강릉다운 경험이었습니다. 커알못인 제가 지인들과 커피 얘기할 때 말할 거리가 하나 생겼네요.
"그래서, 후추 커피 마셔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