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일을 맞아 보고 싶었던 폴 스미스의 전시에 다녀 왔습니다. 모처럼의 휴일 외출이기도 해서 카메라와 렌즈도 챙겼죠. 매일처럼 업무용으로 무거운 장비들을 사용하는 터라 이날은 가볍게 나서고 싶었고, 하나의 렌즈만 챙긴다면 역시 17mm F1.2 PRO 렌즈다 싶어 E-M1 Mark II와 17mm F1.2 PRO 조합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E-M1X도 좋지만 더 작고 가벼우면서 동등한 성능을 갖춘 E-M1 Mark II에 요즘은 손이 가장 많이 갑니다. 짐벌을 사용해 영상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그 비율이 절대적으로 늘어났어요.
PEN-F에는 17mm F1.8을 주력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E-M1 Mark II와 E-M1X에서는 17mm F1.2 PRO 렌즈가 바디캡마냥 늘 마운트 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35mm 환산 약 35mm 초점거리에 F1.2의 밝은 조리개 값, 준수한 개방 촬영 화질까지. 제가 원하는 것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영상 촬영에서도 17mm 프레임이 주는 적당히 넓고 개방 촬영을 통해 적절히 몰입감을 더할 수도 있어서 그야말로 전천후 렌즈로서의 가치를 더 굳건히 다지게 됐죠. 사진에서는 환경과 피사체에 따라 25mm F1.2 PRO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지만, 사진보다 프레임이 좁아지는 4K 동영상 촬영에서는 확실히 17mm 프레임이 더 유용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시를 보고 점심을 먹은 짧은 휴일 오후 스케치를 통해 E-M1 Mark II와 17mm F1.2 PRO 렌즈 조합이 갖는 장점, 제가 받은 인상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F1.2의 저조도 대응 능력
이날은 실내 전시를 관람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고, 친구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외출한 날이라 구석구석 촘촘히 찍어뒀고, 좋은 기록들이 됐습니다.
17mm 렌즈 중 더 작은 17mm F1.8 렌즈 대신 17mm F1.2 PRO를 선택한 것은 실내 전시장의 조명을 감안한 것이었습니다. 전시마다 다르지만 대다수의 전시장은 주인공인 작품을 비추는 조명 외에는 전시장 내부의 조도를 낮게 유지하기 때문에 깨끗한 사진을 찍기 위해선 밝은 조리개 값을 가진 렌즈를 챙기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런 면에서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은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이날 전시장도 구석구석 어두운 구역들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셔터 속도나 ISO 감도를 변경할 필요 없이 F1.2의 조리개 값을 믿고 편안하게 촬영했습니다. 마치 자동 카메라처럼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동작만 할 수 있었죠. 덕분에 전시에 집중할 수 있었고요.
17mm 프레임의 편안함 그리고 유용함
17mm 프레임은 시선보다 적당히 넓은 광각이면서, 광각 특유의 왜곡이 없어서 좋아합니다. 특히 이런 전시 공간을 촬영하기에 가장 좋은 프레임이 아닌가 싶어요. 25mm 렌즈를 함께 챙길까 끝까지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 결국 17mm 렌즈 하나만 챙긴 이유 그리고 '믿음'입니다. 그리고 17mm는 역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전시 공간을 잘 담아줬습니다.
프레임이 조금 좁게 느껴질 때는 두어 걸음 물러서고, 거리가 아쉬우면 몇 발짝 다가가면 되니 그 중간에 있는 17mm가 제게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 됩니다. 이 날 실내 전시장 촬영 역시 다른 렌즈가 아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 다만 가까이 소품을 촬영할 때 머리 위 조명 때문에 그림자가 프레임 안에 생겨서 원하는만큼 충분히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V-LOG 촬영에서도]
광적으로 사진을 좋아하는 전시 주인공의 취향을 반영해, 이 날 전시 역시 자유로운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사진과 함께 틈틈히 영상도 촬영했고, 그것들을 묶어 짧게 편집했습니다. 영상에선 광각이 좋다지만 사실 저는 17mm만으로도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진보다 조금 좁아진 4K 동영상 촬영에서의 17mm 프레임이 제 시선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요.
위 영상은 E-M1 Mark II의 C4K 설정으로 촬영한 4K 24p 동영상이며, OM-LOG 촬영 후 컬러 그레이딩 작업을 거쳤습니다. 요즘 모든 사진/영상 작업을 올림푸스 카메라와 렌즈로 하고 있는데, 한동안 의문이었던 동영상 품질 역시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좋은 결과물을 얻고 신뢰감이 쌓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사진과 함께 V-LOG 용 조합으로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F1.2 최대 개방 심도 표현
풀 프레임 카메라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다소 아쉽긴 하지만 F1.2 PRO 렌즈 시리즈를 사용하다 보면 마이크로 포서드로도 충분한 심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절대다수의 촬영을 17/25mm F1.2 PRO 단렌즈 둘로 진행하고 있고요.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다양한 액세서리와 오브제들을 돋보이게 담을 때 F1.2 개방 촬영의 심도가 유용했습니다. 마이크로포서드의 심도 표현에 대해 궁금증 혹은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몇 장의 F1.2 사진들이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영감을 주는 전시장의 소품들뿐 아니라 전시장을 나서서 먹은 음식들도 개방 촬영을 활용하면 근사하고 맛깔나게 담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 단 하나의 렌즈로 추천할 수밖에 없죠.
인상적인 해상력과 발색
기존에 많이 이야기했던 17mm 프레임에 대한 선호도, F1.2 조리개 값 외에 이 날 촬영에서 이 카메라/렌즈 조합에 이전과 다른 인상을 받았던 것은 해상력과 발색이었습니다. 그리 밝지 않은 실내 조명 환경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과 동영상을 F1.2 최대 개방으로 촬영했는데, 최대 개방 조리개 값임에도 결과물의 해상력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패브릭의 표면을 촬영한 이미지에서는 다른 브랜드의 대구경 단렌즈에서 흔히 발견됐던 최대 개방 촬영에서의 해상력 저하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양표에 적기 위한 F1.2가 아닌, 실제 촬영에서 충분한 품질과 만족도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은 이 조합의 신뢰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죠.
더불어 색색깔의 오브제를 생생한 컬러로 잘 표현한다는 느낌 역시 받았습니다. 이날은 WB 설정을 4800K로 고정하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돌아와 결과물을 보니 색이 실제 색상과 가까우면서도 그러데이션 표현이 좋아서 크게 보정이 필요 없었습니다. 제가 이 디자이너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 다양하고 위트있는 컬러들을 보기 좋게 담아주니 사진을 보는 내내 즐겁더라고요.
오랜만의 촬영이라 그런지 제법 오래 사용한 이 렌즈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특히 동영상 촬영에서 제가 원하는 프레임을 찾은 것 같아 이제 사진 못지 않게 동영상 촬영에 손이 가더군요.
앞으로 당분간 제게 일상과 여행, 사진과 영상 모두를 아우르는 최고의 조합은 이 둘이 될 것 같습니다.
각자 사용하는 브랜드도 제품도 다르니, 여러분의 베스트 조합을 찾아보고 그 조합으로 한동안 모든 순간을 함께 해 보는 것도 즐거운 사진 생활을 하는 방법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