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모임을 겸해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한,두 번씩은 기회가 생기다 보니 이제 제법 친근하기까지 합니다. 일박 이일의 짧은 일정이라 배낭 하나에 얇은 여름 옷가지와 수첩을 넣으니 준비가 끝나더군요. 거기에 해운대와 광안리의 여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걸었습니다. 역시나 올림푸스 PEN-F와 17mm F1.8 조합, 거기에 ‘바다니까’라면서 9-18mm F4-5.6 광각 렌즈를 추가로 챙겼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고 가벼워서 일단 챙겨놓고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이제막 6월 말, 한여름을 향해 가는 날씨에 해운대는 피서와 해수욕 시즌이 시작되고 있었고 날씨는 여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뜨겁고 눈부시고 또 화려했습니다. 서울보다 미세 먼지가 덜해서인지 해변의 색채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선명해서 짬 날 때마다 해운대와 태종대, 광안리를 산책하며 사진 찍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올림푸스 PEN-F와 17mm F1.8, 9-18mm F4-5.6 렌즈로 촬영한 부산의 여름 풍경을 늘어 놓으며 부산과 사진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합니다. 제게는 아직도 낯설고 신기하기만 한 도시에 대한 느낌, 그리고 종일 매고 산책을 해도 부담 없는 이 카메라에 대한 소감으로 이어지겠죠.
1. 해운대의 휴가
첫 날 오후, 그것도 가장 뜨거운 시간에 해운대 해변을 걸으며 산책을 했습니다. 휴가철 TV 뉴스에서 본 것만큼은 아니지만 벌써 많은 분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외국 관광객의 모습이 많이 보이더군요. 해안선을 따라 파라솔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모습, 튜브와 보드 등 다양하게 준비 된 즐길거리, 벌써 까맣게 그을린 안전 요원의 피부까지 아침까지 제가 있던 서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게 바다는 역시 다른 세상입니다.
벌써 몇 번째 찾았지만 해운대는 여전히 제게 특별한 곳입니다. 비단 부산을 대표하는 해변이자 동시에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여서가 아니라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이질적인 풍경이 늘 제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물장구를 치는 해변 풍경은 제가 익히 알고 있는 휴가철의 여유 그대로인데, 그 뒤로 펼쳐진 빌딩숲과 화려한 번화가가 어색한 듯 나름의 조화을 빚어냅니다. 한 시간 가량 해운대를 걸으며 느낀 것 역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아서, 마치 빌딩 숲 사이의 작은 오아시스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는 듯한 사람들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아마 해운대가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겠죠.
이런 날씨에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DSLR 못지 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지만 이 날 해운대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그동안 제가 파악하고 있던 PEN-F와 17mm F1.8 렌즈의 가능성을 좀 더 넓게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워낙에 환하고 선명한 날씨라 조리개를 F8 이상, 때로는 최소값인 F22까지 높여 사용했는데 이 결과물의 발색과 샤프니스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렌즈의 대비와 해상력이 마음에 들어서 제가 의도했던 이질적인 두 피사체의 대비를 잘 표현해 주더군요. 충분히 사용해 보았다고 생각했던 카메라와 렌즈를 다시 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17mm F1.8 렌즈는 제가 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을 사용하는 동안은 아마 계속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2. 태종대의 아침
이번에 처음 가 본 태종대는 영도 남쪽의 지리적 이점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오염되지 않은 푸른 빛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작은 관람 차량을 타고 이동해 전망대와 등대 등을 둘러보는 코스가 부모님, 어르신들의 관광 코스로도 좋아 보이더군요. 저는 둘째 날 아침 숙취를 견디며 태종대를 둘러 보았는데, 흐린 날씨에도 작은 섬과 등대 주위의 경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명한 곳이라 전망대를 찾는 사람들도 무척 많더군요.
등대 주변을 산책할 즈음엔 날이 활짝 개 따가운 햇살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가 본 다른 해안 전망대에 비하면 태종대는 볼거리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당장 얼마 전 다녀온 여수의 오동도가 좀 더 볼거리도 많고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부산에 유명한 태종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습니다. -앞으로는 갈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하지만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수국의 자태는 속쓰림과 땀의 고생을 잊을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간 시기는 태종대의 유명한 수국 축제를 며칠 앞둔 시기라 꽃이 많지는 않았습니다만, 수국을 보러 이 곳을 찾을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기대를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과 함께 부산에 오게 된다면 그 땐 축제 시기를 맞춰 꽃놀이를 하고 싶군요.
도심보다 길이 편치 않은 태종대 산책에선 목에 가볍게 걸 수 있는 PEN-F + 17mm F1.8 렌즈 조합의 장점이 도드라졌습니다. 거기에 9-18mm F4-5.6 렌즈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태종대 관람을 했는데, 바지가 좀 보기 좋지 않게 불룩 튀어나왔어도 더운 날씨에 따로 가방을 챙기지 않아도 됐다는 것에서 만족합니다. 덕분에 전망대에서의 광활한 오션 뷰를 담을 수 있었으니까요. 최근에는 플래그십 카메라, F1.2로 대표되는 고급 렌즈군에 주력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올림푸스 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을 경박단소로 꼽고 있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장비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지만, 그래도 카메라가 가벼울 수록 여행이 즐거운 것은 분명하거든요.
3. 광안리의 낭만
만 24시간의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할 시간, 예정된 기차 시간은 이른 오후였지만, 역시나 바다가, 풍경이 눈에 밟혀서 기차 시간을 저녁으로 미루고 광안리로 향했습니다.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잔뜩 구름이 껴 바다와 하늘의 경계마저 불분명해 보였지만 신발 벗고 바닷물에 발 담그며 해안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새파랗게 개고, 햇살은 어제와 같이 따갑게 내리쬈습니다.
화려한 번화가와 북적대는 해수욕장 때문에 늘 시끌벅적한 해운대와는 달리 광안리는 한적하고 소박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해운대보다 광안리 바다를 좋아하시기도 하죠. -광안 대교의 매력도 있겠지만- 이 날 오후도 광안리 바다는 함께 여행 혹은 나들이를 온 듯한 일상 복 차림의 친구, 연인 무리들이 소수 있었을 뿐 역시 조용하고 여유로웠습니다. 대부분이 빈 파라솔 역시 해운대에 있는 것과는 그 형태와 색 때문에 좀 더 고즈넉한 느낌이 있었고요.
광안리에서는 PEN-F와 17mm F1.8 렌즈를 사용해 스트릿 포토그래피처럼 자연스러운 사진을 주로 남겨보려고 했습니다. 맨발로 해변을 걷는 여인이 든 화려한 꽃무늬 양산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라던지, 역시나 빌딩 숲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아이들의 바캉스, 광안 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적한 휴가 풍경 등이 마음에 들었는데, 평소에도 느끼는 점이지만 이 작은 카메라와 렌즈 조합은 성인 남성인 제가 들고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아서 피사체가 저를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습니다. 이래서 제가 이 조합을 좋아합니다.
싱가포르 센토사에서 화려한 실로소 해변보다 한적한 팔라완 해변에 더 마음이 빼앗겼듯, 역시 저는 해운대보다는 광안리가 더 좋습니다. 바닷물이 해운대보다 조금 탁하고, 모래사장도 좀 더 끈적이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요. 그렇게 길지 않은 광안리 해안선을 찰랑이며 한,두 시간 걷다가 즐비한 카페들 중 바다가 가장 잘 보일 것 같은 곳에 들어가 기차 시간까지 남은 여유를 즐겼습니다. 만 하루동안 바쁘게 보낸 뒤 얻은 두어 시간의 여유가 무척이나 달콤해서, 떠나오길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이틀간 부산의 2018년 여름을 느끼고, 담아 왔습니다. 좋아하는 더 베이 101의 야경을 담거나 고은사진미술관 전시를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술이 문제- 그래도 해운대와 광안리, 태종대에서 마음에 남을 장면들을 담아 왔으니 넉넉한 여행이라고 하겠습니다.
부산은 워낙에 대도시라 일박 이일 가지고는 제대로 둘러보기 턱없이 부족합니다만, 구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만족도가 대단히 큰 도시입니다. 저는 늘 해운대의 화려함과 광안리의 여유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둘 모두 즐길 수 있어서 짧은 시간이나마 만족스러웠습니다. 바닷물에 발 좀 담가 보았다고 올 피서는 따로 필요없겠다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여름을 이대로 보내기는 너무 아쉽죠. 여행이 필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