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봄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향일암이었습니다. 몇몇 장소를 놓고 고민하던 중 향일암에 대한 정보를 보고 들은 직후 여수행을 결정했을 정도였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 몇 곳 중 하나라는 것에 마음이 갔고, 먼저 다녀온 이의 추천에 끌렸습니다. 일출 시간대와 거리를 계산해 보니 1박 2일 여행이 무박 2일 여행이 될 것 같았지만 쉽지 않은 기회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여행에선 늘 이 말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여수시내 남쪽의 돌산도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과 바다가 만나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다와 바로 맞닿아있기 때문에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커다란 돌을 자연 상태 그대로 바닥과 기둥, 통로로 두어 그 자체로도 가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수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50분이 걸리기 때문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잠을 자거나 아예 그 근처 숙소에서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향일암의 일출을 찾아 여수를 찾는 분들을 위해 새벽에만 운행하는 버스 노선도 있습니다. 새로운 노선은 아니고 향일암과 여수 시내를 오가는 노선 중 일부가 새벽 시간에만 여수 엑스포역에 들러 관광객을 픽업하는 방식인데요, 제가 방문한 4월에는 오전 4:30, 5:30 두 번 버스가 정차합니다. 밤기차를 타고 여수에 닿으신 분들이나 저처럼 일출을 위해 새벽잠을 포기하신 분들이 이용하기 좋은 교통수단입니다.
텅 빈 새벽 도로를 버스가 빠르게 달려 약 50분 뒤 종점인 향일암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다 가로등도 없어서 향일암으로 가는 길이 꽤 어둡습니다. 그래도 스마트폰 플래시와 지도 앱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 오를 수 있습니다.
다만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은 절답게 오르는 길이 상당히 길고 가파릅니다. 매표소까지 가는 오르막에서 이미 길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매표소를 지난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계단은 그보다 훨씬 더 고되게 느껴지더군요. 잠도 거의 못 잔 채 가방을 짊어지고 높은 계단을 오르려니 금세 진이 빠져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시간에 내려가봐야 할 것이 없어서 이를 악물고 올랐습니다.
체감상 매표소까지의 오르막 길보다 두,세 배 긴 여정을 거슬러 오른 후에야 절 입구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데도 온몸이 땀에 젖을만큼 힘든 길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운인지 그날 일출을 보러 찾은 이는 저뿐이었고, 종각 근처에서 서성이다 지나가는 스님께 일출은 좀 더 올라 관음사에 가야 제대로 보인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낑낑대며 올랐습니다. 관음사까지 오르는 길은 자연 그대로가 만든 좁고 험한 바위 사이의 길을 지나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그 틈새가 절이 자리잡기에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일암을 다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사에 도착하니 말씀 그대로 탁 트인 시야로 풍경이 보이더군요. 전망대라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았지만 풍경은 그간의 고생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전망대 아래에는 원효스님 좌선대로 이름 붙은 널찍한 바위가 있었는데, 때마침 스님 한 분이 앉아 아침을 맞고 계시더군요. 좌선대 바닥에 가득 쌓인 동전들 때문에 이제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실제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운 좋게도 아무도 없는 관음사 앞 전망대에서 저는 삼각대를 세우고 떠오르는 하루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예보상의 날씨는 ‘맑음’이었지만 바닷가 날씨라는 게 변수가 많아서 수평선 뒤로 떠오르는 해는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지만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 새 울음과 파도 소리만 들리는 고요가 시각의 즐거움을 뛰어 넘는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니 가족 단위로 일출을 감상하러 오신 분들이 관음사에 올라 오시더군요.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때쯤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 어디에라도 앉아있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뿌뜻하고 새삼스레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왕 여수에 왔다면 하루는 밤바다를 포기하고 부지런을 떨 가치가 있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