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 부산 -
지난 사진을 들춰보니 2년만이었습니다. 약 5개월간 연재한 여행기를 마무리하던 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나 여행이었습니다. 매주 하나씩 글을 쓰며 늘 여행을 생각했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떠났고,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다니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지난 5개월의 글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
역시나 여행이라기엔 너무 짧은 시간. 그래도 돌아와 커피 마시며 사진들을 보니 여행의 연장선 위에 있는 듯 즐겁습니다.
이번 포스팅의 사진들은 1박 2일의 짧은 부산 여행에서 남은 기록들입니다. 그래도 나름 보기 좋은 것들을 추려낸 것이지만, 통 여행을 하지 않은 눈과 손이 역시나 무뎌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신라스테이 해운대, 부산 -
- 보수동, 부산 -
보수동 헌책방길은 너무 짧습니다. 그 특유의 정취가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뜨뜻하게 타고 올라오는데, 길은 이미 끝나 버립니다. 2년 전, 그때도 1박 2일이었던 부산 여행에서도 가장 먼저 보수동 책방 골목을 걸었었죠. 부산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 그리고 깡통 시장과 국제 시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역시나 좋습니다.
그 사이 보수동은 적잖이 변했습니다. 헌책방 골목에는 이제 제법 유명해진 이 거리를 찾는 젊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부를 카페로 개조한 '헌책방 카페'가 생겼습니다. 이 카페에서 헌책들은 더 이상 보물이 아니라 그저 책방 골목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 소품일 뿐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근사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보수동에 올 땐 이런 북카페가 더 많이 들어서고, 전통적인 헌책방들은 사라져있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 흰여울길, 부산 -
흰여울길, 흰여울문화마을은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보수동에서 영도로 가는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40년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셨다는 기사님은 영도에 가겠다는 제게 태종대 자살바위에서 시작된 '두 번째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여행의 '아버지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흰여울길은 아직 감천문화마을처럼 유명하지 않지만, 이미 알음알음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그들을 맞이하는 해변 카페들이 늘어선 곳이 됐습니다. 저는 늦은 오후에서야 흰여울길에 도착했는데, 덕분에 이 날의 멋진 노을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볼 수 있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생각합니다. 서울보다 따뜻한 날씨, 홀짝홀짝 차를 마시며 보는 바다와 들리는 파도 소리.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있게 보고 싶은 곳입니다.
- 흰여울길, 부산 -
- 더 베이 101, 부산 -
해운대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이제 막 열 시.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바닷가를 따라 걷고, 부산의 야경을 대표하는 장소 중 하나인 더 베이 101에 들렀습니다. 이 곳은 여전히 멋지지만 어째 올 때마다 조금씩 빛이 바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던 해변가 전망대는 테이블과 의자가 없고, 인파도 적어 지난 여행만큼 근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서인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멋을 부렸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부산 핫플레이스에서 퇴출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동백섬, 부산 -
더 베이 101의 아쉬움을 달래는 걸음이 동백섬을 한 바퀴 둘렀습니다. 일요일 밤의 동백섬은 무척 한산했고, 나무로 둘러싸인 산책로는 바깥보다 포근해서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더 베이 101과 동백섬으로 이어진 이날 밤의 산책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여행을 떠나며 간절했던 여유를 되찾는 데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입김을 후 불며 산책을 하다 생각했습니다. 서울보다 포근한 날씨, 그리고 떠나왔음으로 생기는 여유가 겨울에 부산을 찾게 한 것을 아닐까,라고요.
- 깡통시장, 부산 -
여행을 떠나면 하루에 세 끼밖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지난 여행에서 그리웠던 시장 음식과 낙곱새, 그리고 못 본 사이에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소고기국밥집을 찾았는데 48년 됐다는 소고기국밥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처음 찾는 전포 카페 거리에서의 티타임까지. 다른 때보다 다양한 종류의 여유를 즐기고 온 것 같습니다. 물론 부산 음식들을 좀 더 먹지 못하고 온 것은 아쉽습니다.
- 해운대, 부산 -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번 여행은 '바다가 보고 싶어서'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숙소를 해운대에 잡았고 첫날엔 흰여울길에서, 둘째 날엔 해운대에서 바다를 보고 파도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그동안 받았던 원고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문제들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돌아가면 시작될 또 다른 일, 어쩌면 도전을 앞두고 꼭 필요했던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해보다 게으르고 답답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조금 일찍 새해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내년은 올해보다 확연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말이죠.
종종 어떤 준비 없이도, 그저 떠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여행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바다, 사진, 음식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했던 이번 1박 2일 여행이 그랬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것은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 한 번 힘 내봐야죠!
여러분도 즐겁게 한 해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