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칠십번쯤 고민한 것 같습니다. 저지르고 나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미루고 미뤄뒀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 사용하던 조립 PC가 회생 불가 선고를 받고 한동안 맥북으로 모든 작업을 했는데, 15인치 화면이 랩톱으로서는 무척 크고 광활하지만 집에서 사진/영상 작업을 하기엔 아무래도 터무니 없이 작다는 결론을 내렸고, 십여 년만에 데스크톱 PC를 구매했습니다. 독립 혹은 장가갈 때 내게 선물하리라 다짐했는데, 고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약 4년간 그 값의 몇 배를 벌어준 맥북 프로 15인치를 이제 보낼 때가 됐다고 마음먹은 후, 2015년형 아이맥 5K와 터치바가 달린 맥북 프로 15인치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때마침 반갑게도 2017년 형 아이맥 5K가 출시됐고, 고민은 새로운 아이맥의 사양을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대했던 디자인 체인지는 없었지만, 기존 아이맥보다 화면 품질과 성능 향상이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픽의 향상을 생각하면 2015 모델보다 체감 가격이 인하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15인치 맥북을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현재 사용하는 맥북의 가장 큰 불만이 15인치 화면 크기에 있고, 추가 디스플레이를 구매하는 것보다 27인치 아이맥을 구매하는 것이 제게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12인치 맥북을 사용하면서 15인치 맥북을 이제 거의 휴대하지 않고 데스크톱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새로운 맥북 프로에 SD 카드 슬롯이 빠진 것 등이 근사한 새 맥북 프로를 포기한 이유가 됐습니다.
아이맥 구매를 결정한 후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2015년형 아이맥을 신형과 나란히 놓고 구매했습니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제가 사용하는 2013년형 맥북 프로보다는 성능이 좋을 것이기에. 실제로 두 모델은 가격차가 제법 나고, 2015년 모델을 리퍼 혹은 중고로 구매하면 가격 차이가 제법 나지만, 신형 아이맥의 더 좋아진 화면, 향상된 그래픽 그리고 최신 맥북의 썬더볼트 3 포트가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USB Type C 포트를 아직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현재 사용중인 12인치 맥북과의 조합, 그리고 앞으로의 USB Type C 생태계에 대응하기 위해선 새로운 포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죠.
무엇보다 사진과 영상 등의 작업을 할 때 4개의 썬더볼트 3 포트만 탑재된 맥북 프로 15인치는 확장성에서 큰 제약이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으니까요. SD 카드를 인식하기 위해서도 어댑터 혹은 전용 리더기를 새로 구매해야 하니.
차세대 규격인 썬더볼트 3는 사실 매력이 무척 많습니다. 하나의 포트로 충전부터 각종 외부 기기 연결이 가능하고, 데이터 전송 속도도 무척 빠르니까요. 하지만 이 포트를 싫어하게 된 것은 현재 사용중인 12인치 맥북이 달랑 한 개의 썬더볼트 포트로 충전부터 각종 연결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두 개만 됐어도 차세대 썬더볼트 3 포트에 대한 사용자의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졌을 것 같습니다. 썬더볼트 3 포트를 좌 우에 네 개 배치한 맥북 프로 모델은 포트 규격에 대한 불만이 훤씬 적으니까요.
저 역시 12인치 맥북을 통해 썬더볼트 3를 사용하고 있고, 아이맥을 사용하며 빠르게 차세대 포트에 적응할 것 같습니다. 구형 맥북 프로 레티나는 아무래도 처분하게 될 것 같고, 가정용 아이맥과 휴대용 맥북 두 조합으로 사용하게 될텐데 썬더볼트 3 포트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도 관심 사항입니다.
제가 구매한 사양은 아이맥 5K 27인치 기본 모델에 저장 공간을 512GB SSD로 변경한 CTO 모델입니다. 많은 분들이 중급형 모델을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다고 평가하시지만 무거운 그래픽 작업 비중이 적은 저는 기본형 MNE92KH/A 모델의 3.4GHz i5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가격이었겠죠?
저장공간은 SSD와 HDD의 성능 차이가 무척 심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가장 중점을 뒀습니다. 현재 아이맥은 저용량 SSD와 대용량 HDD를 연동시켜 속도와 용량의 최적화를 이루는 퓨전 드라이브 방식을 운영하고 있지만 역시나 SSD 단독 구성과는 성능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기본형에서 저장 공간을 변경하게 됐죠. 저렴한 256GB SSD와 외장 하드 구성을 생각했지만, 현재 사용중인 맥북 프로의 저장 공간이 768GB인 것을 떠올리니 512GB로 결론이 나더군요. 가격은 기본형에 비해 367,500원이 추가됩니다. 여기에 차후 직접 메모리를 추가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키보드를 이번에 새로 출시한 Numeric 키보드로 변경했습니다. 기존 매직 키보드에 숫자 키패드와 문서 탐색을 위한 기능 버튼이 추가된 형태인데, 숫자 입력도 그렇지만 방향키의 크기와 위치가 마음에 들더군요. 추가금이 2만원 가량 발생하는데, 방향키의 쾌적함만으로도 그 값은 충분히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제 한국 스토어에서도 키보드 언어를 변경할 수 있더군요. 평소 동경하던 깔끔한 영문 키보드로 선택했습니다.
- Magic Keyboard with Numeric Keypad -
"배송 3-4주"
이렇게 주문 완료, 배송까지 3-4주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사양을 변경하다 보니 512GB SSD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지 다른 옵션보다 배송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더군요. 256GB 혹은 1TB를 선택할 경우 일주일 안에 수령이 가능했지만 전자는 사용상의 불편 후자는 가격적인 부담 때문에 느긋하게 한 달을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새로 아이맥을 구매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저와 같은 '그나마 가성비' 옵션을 선택 혹은 고려하고 계실텐데, 앞으로 사용하며 정보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올 해 제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되겠네요.
아이맥 vs 장가가기의 대결은 결국 아이맥의 압승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