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종일 먹었지만 해가 졌으니 이제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저와 일행은 이자카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텐진 역 근방, 파르코 백화점 건너편 골목을 지나던 중 반가운 한글이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한국인, 반값'이라는 단어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오늘은 여기로 하죠' 그렇게 이자카야 텐진 잠보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가고싶지 않아도 가야 한다는 후쿠오카 텐진역, 그 중에서도 파르코 백화점과 텐진 코어 등이 몰려있는 번화가에 위치한 텐진 잠보는 접근성이 무척 좋은 이자카야입니다. 백화점 문을 닫기 직전까지 쇼핑을 하고 갈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곳은 한국 그리고 한국인에게 특별히 더 친절을 베풀고 있다니 낯선 땅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 되겠죠.
퇴근 후 하루를 마무리하며 식사 그리고 술자리를 갖기 좋도록 각 테이블은 칸막이로 나뉘어 있거나 방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노랗고 어둑어둑한 실내 조명은 음식을 더 맛깔나게, 맞은편에 앉은 이의 얼굴까지 더 아름다워 보이게 합니다. 제법 큰 소리를 내고 웃으며 떠들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편안한 공간, 그래서 후쿠오카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하는 식당보다는 이런 여유있는 분위기의 이자카야를 찾게 됩니다.
"한국인은 반값"
입구에서 본 문구를 메뉴판에서 한 번 더 발견했습니다. 차근차근 읽어보니 한국에 대한 애정이 묻어납니다. 텐진 잠보를 포함, 후쿠오카에 다양한 음식점을 운영중인 이 다이닝 그룹의 회장이 한국 음식과 인연을 맺고 그를 바탕으로 성공한 이야기 그리고 그 보답으로 한국인에게는 대표 메뉴인 타루모듬을 절반 가격에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후쿠오카의 여느 이자카야와 같이 고기부터 생선, 면과 밥 그리고 안주까지 까지 다양한 요리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눈길을 끄는 것은 반값에 제공되는 타루 모듬과 인기 메뉴 닭튀김 그리고 맛이 없을 수가 없을듯한 참치 대뱃살 멘치카츠 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메뉴가 사진과 한국어로 설명돼 있어 주문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주문 후 식사 전에 나오는 전채 요리가 무척 신기했습니다. 이 지역 스타일의 두부 샐러드라고 하는데, 부드러운 두부에 잔멸치를 수북하게 올린 색다른 조합입니다. 이를 각자 그릇에 덜어 파와 간장을 얹어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입맛이 확 살아납니다. 두부가 있어 속도 편안한데다 맥주 안주로도 그만입니다.
한국인을 위한 타루 모듬
한국인을 위한 특선 메뉴 타루 모듬이 나왔습니다. 제법 큰 테이블을 반으로 가를 정도로 긴 접시에 다양한 종류의 회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기에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 종류의 수를 세기에도 한참이 걸리는 모듬회를 이번 후쿠오카 여행 최고의 비주얼로 꼽습니다. 각 회는 서툰 한국어로 생선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 또한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배려입니다.
새우와 낙지 등 익숙한 생선부터 후쿠오카에서 맛보는 말고기 회 그리고 알듯말듯한 이름의 생선회까지. 하나하나 이름을 따라 읽고 모르는 것은 먹어보고 알아 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회는 종류별로 적게는 두 점 많게는 너댓 점씩 있는데 그 종류가 워낙 많아서 두 사람이 먹어도 충분히 든든합니다. 재료가 신선해보이는 것은 물론이고요. 특히 가장 왼쪽의 새빨간 말고기 회는 후쿠오카에서 꼭 한 번 먹어봐야 하는 메뉴로 많은 분들이 추천합니다.
타루 모듬에 480엔을 추가하면 생선회를 밥과 함께 김에 싸 김초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습니다. 밥도 제법 푸짐하게 나와서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사이드 메뉴입니다. 김초밥 좋아하시는 분들은 타루 모듬을 주문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메뉴가 되겠네요.
이 날 일행에게 새로운 음료를 추천 받았습니다. 샌디 개프라는 이름으로 맥주에 진저 에일을 약 1:1 비율로 섞은 간단한 칵테일입니다. 진저 에일의 알싸한 맛과 맥주의 목넘김이 생각보다 멋진 조화를 보이더군요. 도수도 낮아서 술 잘 못하시는 분들도 음료 즐기듯 술자리에서 함께 마실 수 있는 조합이었습니다.
이 날 제가 꼽은 베스트 메뉴는 이 멘치카츠였습니다. 다진 참치 살을 크로켓처럼 튀겼는데, 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럽고 고소한 참치의 조화가 일품입니다. '이건 맥주를 위해 태어난 음식이야!'
타루 모듬과 함께 이 멘치카츠는 텐진 잠보 최고의 추천 메뉴입니다. 시원한 맥주를 목이 따가울 정도로 들이키고 멘치카츠를 입 한 가득 물면 '멘치카츠 미만 잡'이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또 하나 맛있었던 메뉴는 텐진 잠보의 최고 인기 메뉴라고 하는 닭튀김. 어린 닭을 특제 소스로 밑간해 통째로 튀긴 것이라고 하는데, 영계라 고기가 무척 부드럽고 소스가 골고루 배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납니다. 오픈 이래 부동의 인기 메뉴에 담긴 자존심은 닭고기와 함께 나온 소스의 다양함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닭고기 메뉴 하나에 치즈부터 소금, 카레, 양념 그리고 비밀의 가루라는 특제 소스까지 무척 다양한 양념이 제공돼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일반 치킨 카라아게보다 더 감칠맛이 진하고 통째로 튀겨 씹는 맛이 좋은 메뉴였습니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추가 메뉴도 점점 많아졌는데, 텐진 잠보의 음식들은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확실한 스타일이 있어서 기억에 확실히 남습니다. 소갈매기살을 큼직하게 썰어 꼬치에 꽂아 구운 소갈매기살 꼬치는 무척 이국적인 꼬치 요리로 고기의 진한 풍미가 있어 맥주와 즐기기 좋았습니다. 가장 특이한 메뉴는 후쿠오카 스타일의 만두 요리였는데, 라멘에 들어가는 돈코츠 육수에 만두를 넣고 끓여 만두국같은 음식이 되었더군요. 국물에 절반 넘게 잠긴 만두의 모습이 선뜻 다가서기 힘들어 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돈코츠 만두국(?)이더군요. 물론 이 메뉴는 만두를 다 건져먹고 말아먹는 면이 하이라이트입니다. 먹다보니 차라리 떡만두국처럼 면과 만두를 같이 끓이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한국 스타일이죠?
그렇게 늦은 밤까지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을 정도로 늦은 시각이었지만 이자카야를 나오니 다시 텐진 번화가 골목들이 펼쳐진 것이 즐겁습니다. 가깝고 개성있고 더불어 한국인들을 위한 특별 메뉴까지 있어 마음에 드는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