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국제거리 끝자락에 있는 이 식당은 고요한 안쪽 골목에 있고 크기도 크지 않지만 오키나와에서 가본 식당 중 가장 인상적인 곳 중 하나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급스러운 와인 파티가 열린 분위기에 음식들도 모양새며 그 깔끔함이 여느 일본 식당들과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편한 옷차림으로 테이블과 바에 앉아 방금 구운 조개 구이에 와인을 곁들이며 오키나와의 무더위를 달랩니다. 무척 이색적인 메뉴들이지만 오키나와 그리고 일본의 색채가 묻어난 곳이었습니다.
무척 긴 이름입니다. '조개와 와인이 있는 사자에상(貝とワインのお店 サザエさん)' 이름 그대로 신선한 조개로 만든 요리들과 와인을 곁들이는, 흔히 말해 오키나와 스타일의 비스트로쯤 되는데요 처음엔 찾아가기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있다보면 이 가게는 이렇게 번화가와 조금 거리를 둔 한적한 골목에 있는 편이 역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개와 와인이 있는 사자에상은 국제 거리 끝자락의 겐초마에(県庁前駅) 모노레일 역 근방에 있습니다. 이 부근은 오키나와 현청과 대형 백화점 류보, 각종 숙박 시설이 몰려있는 번화가죠. 늦은 밤까지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겐초마에 역 뒷골목으로 오 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어둑어둑한 거리에 홀로 불을 밝힌 조.와.사(조개와 와인이 있는 사자에상)가 있습니다.
나른한 느낌의 조명, 편한 분위기의 실내는 여느 일본 이자카야들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아마도 조개와 와인이라는 메뉴의 특징 때문이겠죠. 혼자 혹은 둘이 찾았을 때 안기 좋은 바에는 온갖 술병들이 빈틈없이 놓여있고 회식과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분들을 위한 일반 테이블은 정갈하게 접시와 젓가락이 놓여 있습니다. 조개 모양의 접시 모양까지 섬세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출입구 옆 수조에는 신선한 조개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표 메뉴는 역시 조개 구이, 그리고 오키나와 스타일의 페퍼론치노 스파게티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조개와 와인이 주메뉴인 식당이라고 해서 가격이 비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한국인들도 제법 찾는지 메뉴판에는 한글 설명이 있더군요.
맛보다 모양에 더 신경을 쓴 것 같은 예쁜 토마토 샐러드로 식사를 시작합니다. 일본에서는 돈코츠 라멘이나 모츠나베 등 무겁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인데 이탈리안 느낌 나는 흰,빨,녹 색깔의 샐러드를 보니 잠시 이곳이 오키나와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조개 구이. 조금 전까지 수조에 있던 조개들을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먹는 요리입니다. 별 특별할 것 없는 자연 그대로의 조개 구이 요리라 재료의 신선함이 가장 큰 관건이죠. 사실 조개 요리를 싫어하는 편이라 걱정이 컸습니다. 조금만 비려도 먹질 못하거든요. 하지만 역시 석쇠에서 구워지는 조개구이의 비주얼은 고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당장 보여주고 싶을만큼 매력적입니다.
부끄럽지만(?) 조개 요리를 싫어하는 제게 이것은 난생 첫 조개구이였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신선한 조개 구이는 비리지 않고 의외로 부위마다 색다른 맛과 식감이 있어 재미있게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곁눈질로 보던 조개구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손바닥 크기의 커다란 조개는 제법 많더군요. 특히나 저는 폭신한 식감의 관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오키나와에서 드디어 조개구이 첫경험에 성공했습니다.
조개 구이에는 와인이 잘 어울린다죠. 물론 저는 와인보다는 맥주 취향입니다만, 이런 메뉴에는 홀짝홀짝 조금씩 와인을 음미하면서 고상을 떨어볼만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니혼슈를 술잔에 넘쳐 받침까지 차도록 담아주는 풍습이 와인을 따라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습니다. 술을 가리지 않는 이 넉넉한 인심이 이곳 사람들의 마음인가 싶습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저는 이곳만의 자이언트 맥주를 시켰는데 뒤에 있는 일반 잔과 비교하니 그 크기가 확실히 체감됩니다. 한 잔만 마셔도 배가 부를 정도로 넉넉한 양이었습니다.
두 번째 메뉴는 흡사 멸치 무덤(?)을 연상케 합니다. 언뜻 보아선 그냥 멸치를 접시 가득 수북하게 담은 것 같은데, 이것이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멸치 파스타라고 합니다. 면이 보이지 않을만큼 잔멸치를 가득 올린 것이 이곳 오키나와 스타일이라고 하네요.
담백한 페퍼론치노 파스타를 소금에 절인 멸치와 함께 먹는 것이 시각적으로도 재미있고, 맛도 지금껏 먹던 것과 달라서 신선했습니다. 다만 소금에 절인 멸치가 짠맛이 강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먹으면 혀가 얼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염도를 맞추기 위해 스파게티는 면에는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오키나와 스타일의 파스타는 모양새나 맛 모두가 이색적이었습니다. 물론 와인과도 잘 어울리고요.
조개구이와 멸치 스파게티는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양도 역시 많지 않습니다. 자리가 길어지면 당연히 메뉴를 추가하게 되는데, 이색적인 메뉴가 많더군요. 그 중 하나는 즉석에서 토치로 불을 붙여 익히는 소고기 초밥. 초밥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적은 양의 밥이 접시를 가득 덮을 정도로 큰 고기에 싸여 있습니다. 즉석에서 익힌 고기는 은은한 향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육즙이 터져 일반적인 소고기 초밥과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밥은 거들뿐, 입 안 가득 고기를 채우는 매력 말이죠.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마무리는 국물 요리를 고르게 됩니다. 이곳은 돼지고기 샤부샤부가 유명하다고 해서 주문해 보았습니다. 살코기보다 지방이 많은 돼지고기는 끓는 육수에 익혀 먹을 때 녹는 듯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이 납니다. 거기에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향신료인 유즈코쇼(유자 후추)를 곁들이면 깔끔하고 담백한 식사의 마무리가 됩니다.
조개와 와인이 있는 사자에상의 요리들은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선한 해산물로 정직한 구이 요리를 내고 오키나와와 타지 요리를 접목해 와인과 잘 어울리는 메뉴들을 선보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척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아 후에 연인이 생기면 함께 오키나와 여행을 와서 찾고 싶은 곳으로 점찍어 뒀습니다. 본토와 닮은 듯 다른 오키나와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비스트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