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여름, 멋낼 곳이라곤 손목 뿐.
약속에 늦지 않으려면 여름에도 시계는 차야 합니다. 사실 시계를 차고 있어도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게 더 익숙하지만 '심리적 안정'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시계는 여름철 남자가 멋을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액세서리니까요. 다만 가죽 밴드를 착용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땀 때문에 쉽게 오염되는 데다, 보는 이도 후끈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탈 시계의 무게과 촉감을 좋아하지 않는 저같은 사람은 선택권이 많지 않아 나일론 재질의 나토 밴드를 주로 착용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비슷하지만 더 근사한 밴드를 발견했습니다.
- 시계에 반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
페를론(Perlon)은 독일 바이엘사에서 만든 합성섬유라고 합니다. 자동차산업, 인테리어산업 그리고 의료기기 등 전문분야에 쓰이는 섬유로 광택과 탄력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좋아 몇년 전부터 시계 밴드에 활용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수분에 강하고 금방 건조가 돼 여름용 시계 밴드로 적합합니다. 게다가 다양한 색상으로 패셔너블하기까지 하죠. 개인적으로는 독특한 짜임 때문인지 나토 밴드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 처음 구매하려던 것은 이름이 알려진 독일 브랜드 EULIT의 밴드였습니다만 -
하지만 국내에 판매되는 페를론 스트랩은 만원 내외의 저가형으로 실제 구매 후기를 보니 가격을 고려하더라도 소재와 마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이 많아 비교적 좋은 평을 받고 있는 EULIT의 페를론 스트랩을 구매하려고 했으나, 독일 홈페이지를 통한 구매가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배대지를 통해 들어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구매를 망설인 이유였고요.
그러다 좋은 기회로 Clockwork Synergy의 페를론 스트랩에 대해 알게 됐고, 마침 제 시계에 딱 맞는 색상과 규격의 스트랩이 재고가 있다고 하여 구매했습니다.
https://www.clockworksynergy.com
검색해보니 국내에는 정보가 전무한 브랜드입니다. 시계 관련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회사인데, 페를론 스트랩 외에도 가죽, 러버밴드 등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제품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구글에 검색해보니 해외에서는 비교적 인지도가 있더군요.
Clockwork Synergy의 페를론 스트랩은 총 2종으로 일반적인 단일 밴드 형태의 페를론 스트랩과 상,하 밴드가 둘로 분리된 2피스 페를론 스트랩으로 나뉩니다. 아무래도 2피스 스트랩의 가격이 비쌉니다. 일반적인 저가형 페를론 스트랩보다 소재와 마감에서 우위에 있어서 고가 시계에 매치한 사진들도 상당수 보였습니다.
- 1피스 페를론 스트랩 -
- 2피스 페를론 스트랩 -
가격이 역시 일반 페를론 스트랩에 비해 월등히 비쌉니다. 다만 사진상으로도 소재가 일반 스트랩에 비해 확실히 두꺼워 보이고 버클 역시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페를론 스트랩의 장점인 다양한 색상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색상의 스트랩 중 제가 구매한 것은 네이비 블루 컬러의 2피스 페를론 스트랩입니다. 특유의 시원한 소재감을 살리기 좋고, 노모스 탕겐테의 블루 핸즈와 잘 어울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노모스 탕겐테 35mm는 18mm의 좁은 스트랩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남성용 시계가 20-24mm 폭의 스트랩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좁은 편입니다. 때문에 밴드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8mm 페를론 스트랩의 경우 국내 판매하는 곳이 더 드물죠. 탕겐테의 기본 스트랩은 검정색 쉘 코도반(말 엉덩이 가죽) 스트랩인데, 매끈한 광택이 아름답지만 여름에 차기하는 덥고 답답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페를론 스트랩과 메쉬 스트랩을 주로 착용하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부드러운 직물로 짠 스트랩을 상상했지만, 실제 촉감은 플라스틱과 나일론 사이의 빳빳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료용 칫솔로 사용하는 소재인만큼 직물의 짜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밀짚모자를 연상 시키는 독특한 교차 짜임 형태를 제외하면 모양은 일반적인 시계줄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프링 바를 달 수 있도록 끝을 실로 마감했고, 은색 버클을 달았습니다.
교체 방식 역시 일반 시계줄과 동일합니다. 탕겐테의 경우 러그 바깥쪽이 뚫려 있어 줄 교체가 간편합니다. 스프링 바를 스트랩에 끼워 러그에 고정시키면 됩니다. 교체가 간단하니 여름에는 코디에 맞춰 색깔별로 착용해도 좋겠습니다. 사진상으로는 표현이 잘 되지 않았지만 스트랩의 네이비 블루 컬러가 탕겐테의 블루 핸즈와 제짝처럼 잘 어울립니다.
저렴한 페를론 스트랩의 경우 까끌거림 때문에 착용감이 좋지 못하다는 평을 많이 보았는데, Clockwork Synergy의 페를론 스트랩은 마감 처리가 훌륭한건지 일반적인 나일론 나토 밴드보다 착용감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직접 비교해봐야 알겠지만, 역시 가격만큼 품질에 우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유중인 필드용 파일럿 워치에는 3000원 내외 가격의 나토 밴드를 착용중인데, 그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과장을 조금 더 보태 Artisan & Artist의 카메라 스트랩 수준의 촉감입니다.
가죽 스트랩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Clockwork Synergy의 페를론 스트랩은 독특한 짜임과 땀, 물 걱정 없는 소재, 패셔너블한 컬러, 착용감까지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스트랩 하나만으로 여름이면 멀리했던 가죽 스트랩 시계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입니다. 애플 워치 이후로 아날로그 시계는 관상용이 됐지만, 종종 파란색 스트랩으로 멋을 내는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색깔별로 몇개 더 구매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