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에서 한 달에 두 번이 됐으니 열 두배 부지런해졌다고 우기고 싶습니다만, 그날 역시 종일 게으름을 부리다 마지못해 등 떠밀려 나섰습니다. '다녀오면 기분이 나아질거야' 물론 제가 스스로 부린 고집입니다. 집 앞 우이천부터 뚝섬 유원지까지 기분좋게 달린 지난 라이딩만 해도 페달을 밟기에 더없이 좋은 5월 날씨였지만, 그새 여름이 바짝 다가와 올 상반기는 이대로 마무리해야겠다 싶더군요. 이번에도 안장 가방에 작은 물통 하나와 전자책을 챙겼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이나 좀 읽다 와야지, 하면서.
-하지만 주말의 유원지에 제 자리는 없더군요-
아쉽게도 나무그늘 아래 독서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주말 한강 유원지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고, 몇 그루 없는 나무 아래는 어김없이 가족, 친구, 연인들의 텐트가 세워져 있었거든요. 자전거 도로 중간중간 놓인 벤치에도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날, 결국 쉼 없이 페달을 밟아 중랑천으로, 한강으로, 동호대교와 반포대교를 건너 동작대교까지. 그렇게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렸습니다.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지쳤을 거리에도 다리가 아직 쌩쌩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난 라이딩에서는 큰맘 먹고 올림푸스 PEN-F 카메라를 챙겼습니다만, 이번에는 독서가 목적이라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자전거를 세워 아이폰으로 화창한 날씨며 풍경을 찍는 동안에는 조금 후회하기도 했지만, 뭐 아쉬운대로 아이폰도 괜찮더군요.
-동호대교 앞, 잠시 오디오 트랙을 바꾸며-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잠수교에서-
매번 비슷한 라이딩 코스 중 가장 좋아하는 두 구간이 있는데, 하나는 중랑천에 있는 응봉교 인근의 긴 내리막길, 그리고 잠수교입니다. 두 곳 모두 낑낑대며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길게 뻗은 내리막길이 있어 페달을 밟지 않고 쭉 미끄러져 내려가는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 짜릿함이 제법 커서 지나고 나면 제법 아쉬움이 들고요. 이날 오랜만에 반포대교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예전엔 반포 대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꽤 힘들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그때보다 좀 더 건강해졌나 봅니다. 시원한 내리막을 앞두고 사진 한 장을 찍어 기록해 둡니다.
-반포대교 앞에서-
반포대교 앞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근사한 유원지가 있습니다. 언제 가도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이 날도 주말을 보내는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많았는데 뜨거운 날씨를 피해 다리 아래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재미있더군요. 그와 반대로 뙤약볕 아래서 혼자 제법 큰 무대를 차지한 남성의 뒷모습은 그 날 오후 최고 기온처럼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동작대교에서-
반포대교 인근에 있는 나무 그늘을 찾으러 천천히 밟은 페달이 결국 동작대교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가로이 앉아 책을 읽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동작대교 아래 그늘에 앉아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업데이트 된 팟캐스트를 들으며 땀을 식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픈 것을 인지하고, 아무래도 지하철을 타고 복귀해야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6월의 서울, 한강-
저녁을 맛있게 먹으려면, 그리고 간만에 숙면을 하려면 남은 힘을 다 쓰고 가야겠다 싶어 동작대교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혹 너무 멀리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까봐, 천천히 좌 우 풍경을 살피면서.
재미있는 표지판이나 멋진 풍경이 보일때면 주저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렇게 휴일 라이딩을 마무리했습니다.
초여름 해가 달군 오후가 조금씩 식어가는 시간에 시작한 라이딩은 해가 아직 중천인 일곱시 무렵에 끝이 났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왔던 길을 다시 자전거로 천천히 돌아왔겠지만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와 필스너 한 캔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서둘러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제야 발이 좀 풀린 것 같은 아쉬운 마음에 동작역 주위를 몇 분 더 서성이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어요.
왕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작은 바퀴의 자전거로 24km를 넘게 달렸으니 오늘은 이정도면 됐다 하며 마무리합니다. 주말이라는 핑계로 미뤄뒀던 일들도 벼락치기로 마무리하려면 힘을 남겨둬야 하니까요. 돌아와서 직접 만든 스파게티는 평소보다 더 맛이 있었고, 맥주와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렇게 독거노인의 주말이 마무리됐습니다.
맥주 한 캔을 비우던 순간,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 등산과 조기 축구를 한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이 맛을 위해서라도 좀 더 성실하게 주말을 보내야겠다 싶은 하루였습니다.
-훠이 훠이, 저리가 애물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