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5월 #봄 그리고 #라이딩
몇년 새 세계에서 가장 숨쉬기 힘든 도시가 되어버린 서울. 사람들은 마스크를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나들이의 여유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점점 살기 힘든 도시가 되는 것 같던 서울에 요즘은 매일 그림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단어로만 존재한다 생각했던 5월 봄 날씨가 여느때처럼 집에서 뒹굴며 토요일을 보내던 저를 자전거와 물 한 병 챙겨 나서게 했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장만하고 매주 라이딩 하는 재미로 주말을 기다렸는데, 이제 봄 가을에 각각 두어 번씩 큰맘 먹고 나서는 '운동'이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지난 주말 독거노인의 라이딩은 다른 때보다 상쾌하고 즐거웠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날씨 덕분입니다.
#밟다보면_보이는_것들
지난 토요일 날씨는 그동안 매일 아침 미세 먼지 걱정을 해야했던 도시의 것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화창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뜬 모양이 흡사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속 그 모양같았고, 이런 날 집에서 오후를 흘려 보내는 건 왠지 큰 잘못을 하는 것 같아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먼지 쌓인 자전거에 갈증을 달래줄 작은 물 한 병, 그리고 라이딩 중 만나게 될 멋진 장면을 담을 카메라를 안장 가방에 챙겨 넣었습니다.
집 앞 우이천에서 출발해 중랑천을 따라 가는 코스는 여느 때와 같은, 이제 지겹게 느낄 정도로 익숙했습니다만, 화창한 하늘과 선명한 5월 햇살이 만드는 그림만으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그림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격은 조금씩 좁아졌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시간쯤 지나 다리가 아파올 만도 한데, 이 날은 뚝섬 유원지까지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달리는 동안 전혀 지치지 않더군요. 중간중간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도 힘을 더했습니다.
그 길로 평소보다 조금 더 달려 서울숲을 지나 뚝섬 유원지에 도착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잠실 롯데타워까지 달릴 힘이 충분히 있었지만, 그랬다간 아무래도 돌아갈 때 힘이 들 것 같아 뚝섬 유원지 한켠의 인적 드문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닥에 깔 것 없이 주저 앉아 운동화마저 벗어 던지고 드러누워 챙겨온 물을 마시니 절로 웃음이 나더군요. 시간은 여섯 시를 넘어 조금씩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삼십 분쯤 잔디밭에 앉고 또 누워 5월과 주말을 만끽했어요.
돌아가는 길엔 등 뒤로 환한 노을이 펼쳐졌습니다. 저는 종종 뒤를 돌아보다 멋진 풍경을 발견할 때면 사진을 핑계로 자전거를 세우고 십여분을 앉아 있다 왔습니다. 같은 코스였음에도 돌아오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린 것은 당연합니다.
- 서울숲 뒷켠의 이 탁 트인 자전거 도로를 가장 좋아합니다 -
늑장을 부리다 결국 어둠이 깔렸고, 저는 제 스무살 여름을 채워준 그녀의 동네를 지나다 그시절 종종 찾았던 만두 가게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고기 만두 한 판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에, 같은 맛으로 남아있는 것이 고마워서 무척 행복했던 저녁 식사였어요.
이 날의 주행 거리는 총 42km, 중간중간 사진과 휴식을 핑계로 멈춘 적이 많아 시간이 세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오랜만의 라이딩에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되었지만 날씨와 풍경, 그리고 추억 덕분에 특별한 주말이 됐습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이번 주말에도 달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