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면 이탈리아 남자들에게 배워라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눈으로 확인했죠. 세상의 거지는 그냥 거지와 이탈리아 거지로 나뉜다는 그 말의 의미를 말입니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패션, 특히 색에 대한 감각은 정말 탁월했는데, 그래서 로마에 다녀온 후 옷이나 액세서리를 구매할 때 그 거리와 사람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물론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가방을 샀습니다. 2년 넘게 쓴 필슨의 캔버스 브리프 케이스가 이제 너무 낡고 바랜데다 루치카의 가죽 사첼백은 폭이 좁아 넣을 수 있는 소지품에 한계가 있었거든요. 여름을 앞두고 올여름 걱정없이 데일리로 사용할 가방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때마침 면세점의 핫딜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죠. 이탈리아 브랜드 오로비앙코의 남성용 브리프 케이스입니다. 그냥 파랗다고 하기엔 부족한, 화창한 푸른색이 여름과 잘 어울립니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오로비앙코. 나일론과 가죽을 믹스한 브리프 케이스와 여성용 숄더백이 인기가 있고 가죽 제품도 꾸준히 출시하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옆나라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브랜드더군요. 그만큼 가격대도 높은데 처음엔 저도 지하상가에서 보았던 듯한 나일론 가방에 상상 이상의 가격표가 붙어 있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재와 컬러, 아이덴티티 등 이탈리아 패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브랜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구매한 브리프 케이스도 그렇습니다. 남성용 액세서리에는 드문 밝은 톤의 블루 컬러가 사용됐고, 나일론 재질은 가벼우면서 튼튼해 실용적입니다. 언뜻 보면 별 특징 없는 실루엣에 무심한 듯 두른 리본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나 이태리에서 왔어!- 를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지난해 비슷한 디자인의 가방을 비싼 가격 때문에 포기했는데, 이번엔 정상가의 절반 가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일본 여행 출국길에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호텔에서 혼자 열어보았죠.
사진에서보다 더 밝고 선명한 블루 컬러 때문에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코발트 블루에 가까운 이런 색의 가방은 남성용으로는 흔하지 않은지라, 그리고 브라운 컬러의 가죽을 덧대니 사실 여성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뭐, 중성적인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실제로 브리프 케이스로서는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여성분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체 실루엣은 재미없는 사각형이지만 가죽으로 모서리를 마감하고 지퍼와 손잡이 부분에 덧대 적절한 비율의 투톤 컬러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브랜드 로고가 박힌 손잡이의 리본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탈리아 국기의 컬러로 제작된 이 리본이 없아면 이 가방은 지하상가 가방과 별다를 것 없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이 작은 디테일이 전체적인 느낌을 좌우합니다.전면에는 양각으로 로고를 새긴 플레이트를 올렸는데, 가방 이곳저곳에 금속 소재가 많아 생각보다는 가방 무게가 느껴지는 편입니다.
멋도 멋이지만 이탈리아 남성들의 패션은 멋을 위해 실용성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브리프 케이스 역시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숄더 혹은 크로스로 맬 수 있는 스트랩이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패브릭에 가죽을 덧댄 스트랩인데, 개인적으로는 색상이 가방과 다소 동떨어진 짙은 네이비라 사용하지 않고 서랍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가방 안쪽에는 기대 이상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퍼로 여닫는 안쪽 포켓이야 그렇다 쳐도 가죽으로 마감한 작은 포켓과 옷걸이 혹은 소지품을 걸어 고정시킬 수 있는 고리는 그 실용성이 돋보이더군요. 물론 저는 저 금속들이 가방의 무게를 더하고 소지품을 해칠까봐 그리 반기지 않지만, 이 디테일이 상당히 꼼꼼하게 잘 만들어진 가방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방을 들고 외출했습니다. 사진으로 먼저 자랑을 당한(?) 친구는 내심 빼앗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방에 있을 때는 너무 야한(?) 색상이 아닌가 싶었는데, 소지품을 넣고 들어보니 단조로운 아저씨의 옷차림에서 시선을 이탈시키는 액세서리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생각입니다. 데일리백으로서 중요한 무게와 내부 공간 역시 현재 사용중인 필슨의 브리프 케이스와 비교해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일론 소재의 가방은 매우 가볍고, 폭이 약 8cm로 적당히 두툼해 카메라와 12인치 맥북을 모두 넣어도 모양이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크기와 무게, 내부 공간까지 여러모로 데일리 가방으로 마음에 듭니다. 게다가 여름에 제격인 새파란 색상까지 좋아서 올여름엔 아마 매일같이 이 가방을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