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시계 차고 다녀?"
요즘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실제 종일 몇 번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제게 손목 시계는 사실 '중복'이며 '비효율'에 가깝습니다. 시간이 궁금할 때 손목을 걷어 시계를 보기보단 휴대폰 화면을 켜는 것이 더 익숙하니까요. 과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손목 위의 시계가 세월이 흐르며 점차 패션 액세서리나 귀금속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됐고, 시장도 그에 맞춰 변해갔습니다. '남자는 좋은 시계'라는 흔한 말에 담긴 뜻도 그와 매우 가깝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또 하나의 카테고리 '스마트 워치'가 탄생했습니다. 기존 시계와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의 이 디지털 기기에 대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인정하기는 커녕 '시계'라고 부르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바늘은 화면이 밝힌 '조명'에 불과하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째깍째깍' 소리는 그저 트릭일뿐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길에서 스마트 워치를 손목에 두른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특히나 기술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중장년층에서 오히려 이 가짜 시계를 무척 유용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 사실 초창기 스마트 워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
물론 스마트워치가 이만큼 사람들의 손목에 자리 잡게 된 데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좋은 제품들이 출시된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삼성, 소니 등에서 발매한 초창기 스마트워치는 디스플레이를 강조한 사각형 디자인 등 기존 시계와 다른 독자적인 형태로 스마트폰에 이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려고 했으나 결과는 참패였죠. 초반 작전의 실패를 인정한 후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 디자인과 스테인리스 스틸 등의 소재를 채용한 원형 스마트워치들이 출시되며 일부 사용자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초창기 스마트워치인 삼성 기어부터 스마트워치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아 소니, LG 등 제법 다양한 브랜드의 스마트워치를 사용했는데 지나고나니 '오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년 전인 2015년, 애플의 스마트워치 애플 워치가 시장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습니다. 벌써 2년이 됐네요.
- 이날의 팀 쿡은 이미 승리했다는 표정이었지만 -
사실 애플 워치는 2014년 9월 9일 아이폰 6와 함께 발표됐습니다. 새로운 아이폰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으로 애플 워치를 소개한 후 발매를 다음해인 2015년으로 발표한 것이었죠. 약 6개월이 지난 후 2016년 4월, 첫번째 애플 워치의 판매가 시작 됐고, 에르메스와의 콜라보 등 고급화 전략으로 스마트워치 시장에 대한 주목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당시 스마트워치라는 명칭조차 모르던 사람들도 애플 워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구입할 정도였으니 역시나 스마트워치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실제 사용한 사람 중 상당수는 느린 동작 속도와 도무지 할 것이 없는 스마트워치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지난해 애플은 동작 성능과 디스플레이를 향상시키고 방수 성능을 강화한 애플 워치 시리즈 2를 발표했습니다. 두께가 미세하게 두꺼워졌지만 기존과 같은 폼을 유지해 사용 환경부터 액세서리 호환성을 유지했습니다. 스마트워치로서는 성공했지만 애플 제품으로서는 실패에 가까운 이 제품군에 대해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애플 워치 시리즈 2는 많은 면에서 오리지널 애플 워치보다 향상 됐지만,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변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에르메스와의 변함없는 협업, 새로운 지원군 나이키의 등장으로 애플 워치 카테고리가 분명히 한자리는 잡았다고 하겠습니다.
시계에 대한 생각을 바꿔 놓았습니다.
- 애플 워치 스포츠, 35mm & 클래식 버클 -
애플 워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어쩌다보니 발매 당시부터 현재까지 꾸준이 이 괴상한 시계를 매일 착용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애플 워치는 38mm 스포츠 모델이었는데요,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애플 워치의 사용성을 경험하고자 했던 선택이었습니다만, 알루미늄 외관과 사각형 스타일의 이질감 때문에 만족도는 매우 낮았습니다. 게다가 이 작은 화면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었고, 그마저도 매우 느렸거든요. 게다가 기본적인 시계의 목적으로서도, 워치 페이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애플 워치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근래 애플이 만든 것 중 최악' 이라고.
- 애플 워치 스테인리스 스틸, 42mm & 클래식 버클 -
하지만 잠시 안드로이드를 거쳐 다시 아이폰을 구입했을 때, 자연스레 애플 워치가 생각났습니다. 전화/메시지 등 스마트폰의 알림을 놓치지 않는 기능이 지나고보니 매우 유용했거든요. 이왕 시계 하나를 손목에 올려야 한다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연동돼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이 미약한 몇몇 기능들이나마 있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다시 구매한 스테인리스 모델은 스포츠 모델에서 느낀 외형의 아쉬움을 상당부분 해소해 줬습니다. 불만족스러웠던 사용성도 WatchOS 3로 업데이트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물론 이 만족감이 큰 데에는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제 시선이 전과 달라졌고, 기대가 낮아진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더 이상 스마트워치로 SNS나 게임,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을 확인하는 본래 시계의 역할에 전화/메시지 알림과 날씨 확인, 조깅과 자전거 라이딩 등의 운동 기록 정도로만 사용하니 매우 유용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기존에 착용하던 오토매틱 시계와 가격도 크게 차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애플 워치는 성능 대비 가격이 무척 비싼 제품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그리고 활용도에 따라 이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요즘은 아날로그 시계를 잘 착용하지 않습니다 -
애플 워치를 사용한 후에는 시계를 선택하는 기준이 '시간'에서 '생활'로 이동했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기능들로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래서 요즘은 일반 시계보다 스마트 워치 신제품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요즘은 삼성의 기어 S3 시리즈를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갤럭시 노트5와 7을 사용하며 기어 S2 클래식을 함께 착용했는데 원형 디자인부터 배터리, 교통 카드 기능 등 만족도가 매우 높았거든요. 그리고 스마트 워치를 사용해 보니 일반 시계에는 손이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 삼성 기어 S3 프론티어 & 클래식 -
물론 아직까지는 단점이 더 많이 보입니다.
애플 워치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그 비율이 아마 2:8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한계가 뚜렷합니다. 스테인리스 모델 기준 60만원대의 비싼 가격이지만 카카오톡 하나 열기에도 벅찰 정도로 동작 성능이 아직 형편없는데다, 이 사각형 시계는 아직까지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전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사실상 매일 충전해야 할만큼 배터리 성능 역시 경쟁 제품들보다 떨어집니다. 밴드와 충전 케이블 등 액세서리의 가격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죠. 무엇보다, 많이 나아졌다곤 하나 여전히 이 시계로 뭘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이거 전화, 메시지도 진동으로 알려주고 날씨도 바로 볼 수 있어."
"고작 그거 하려고 종일 그걸 손에 감고 다녀야 해?"
매일 아침 충전 거치대에서 애플 워치를 떼어내 손목에 두르는 사용자 입장에서 애플 워치가 2년간 의미있는 제품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갈길이 아주 멀어 보입니다. 어쩌면 이대로 별 반향없이 명맥만 유지하는 카테고리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스마트폰에 한정돼있던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람과 보다 가까운 위치로 끌어 당겼다는 점에서, 그리고 몇몇 이들에게 시계를 선택하는 기준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 변화와 발전이 기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애플 워치 시리즈 3 혹은 완전히 새로운 애플 워치는 어떤 모습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2까지의 애플 워치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과 조작 방식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는 이제 확실히 아날로그 시계보다는 스마트 워치가 좋고, 다음 애플 워치를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 에어팟처럼 중독성 강한 제품이 탄생하길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