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여섯 시, 소중한 두번째 밤을 위해 멋진 야경이 있다는 정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다른 도시였으면 이맘때쯤 '오늘 일정 다 끝났다'며 저녁 먹을 식당이나 기웃거리고 있을테지만, 싱가포르는 밤이 낮보다 더 아름다워서 어디서 노을을 보고, 나이트 쇼를 볼지 고민하곤 했습니다. 전형적인 '싱가포르 뷰' 멀라이언 파크에서 보낸 첫 번째 밤에 이어 두 번째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기준으로 그 반대편에 있는 거대한 인공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특별한 나이트 쇼를 보았습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 뒤에 위치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거대한 인공 정원으로 독특한 형태의 플라워 돔으로 유명합니다. 이 구조물은 플라워 돔(Flower Dome)과 클라우드 포레스트(Cloud Forest) 냉각 온실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기둥없는 온실이라고 하네요. 거대한 인공 구조물에 녹색 생명이 가득한 모습이 '도시의 미래'를 보는 듯 합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MRT 베이프론트(Bayfront) 역과 가깝습니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과 이어진 거대한 쇼핑몰을 한 바퀴 둘러보고 호텔을 가로질러 정원으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은 코스이고요. 실제로 가면 규모가 꽤 큰 편입니다. 녹지 가득한 인공 정원은 낮에도 볼거리가 많아 인기 관광지로 꼽히는데, 저는 풀보다는 도시를 좀 더 보고싶어 나이트 쇼에 맞춰 이 곳을 찾았습니다.
이날 저는 마리나 베이 샌즈몰을 구경한 뒤 호텔을 가로질러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갔습니다. 덕분에 일부나마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내부를 볼 수 있었죠. 역시나 규모가 대단하고, 내부 인테리어 역시 감각적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여기서 하룻밤 묵어보고 싶어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과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전체 면적이 101 헥타르로 한 눈에 다 담기는 어렵고 이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대표적인 이 정원의 뷰인 플라워 돔이 모인 모습과 그 앞의 인공 호수를 함께 볼 수 있는 이 뷰 역시 매력적입니다. 날씨가 화창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오후에 한바탕 거센 비가 지난 직후라 구름이 걷히지 않았습니다.
인공 정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매우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입니다. 칼로 오려내 물을 채운 듯한 인공 호수와 다 자란 나무를 가져와 심은 듯 가지런한 나무들이 너무 반듯반듯해서 오히려 이질감이 들기도 하지만, 도심 관광 후 산책을 즐기기에 는 이만큼 편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전경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조금씩 해가 저물고 있어 구석구석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싱가포를 대표하는 뷰 중 하나로 손색이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 정원 안에 에스컬레이터도 있어요 -
매일 저녁 불을 밝히는 프라이빗 나이트쇼
되도록 많은 플라워 돔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나이트 쇼를 기다렸습니다. 주변이 전보다 부쩍 어두워지고 나니 불을 밝힌 플라워 돔이 한결 더 화려해 보입니다. 실제로 이 쇼를 보기 위해 플라워 돔 아래 몰려든 사람들이며 구조물 사이를 연결한 산책로를 채운 인파를 보면 '프라이빗'과는 거리가 멀지만, 쇼가 시작되는 7시 45분에 순간 플라워 돔의 조명이 모두 꺼지니 아주 잠깐이지만 마치 저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렇게 약 15분간 음악에 맞춰 화려한 슈퍼 트리 쇼가 이어졌습니다. 사진으로만 담기 아쉬워 영상으로 일부를 남겨 뒀어요.
<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슈퍼 트리 쇼 >
조명이 연신 깜빡이는 것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합니다. 이 날은 아시아를 주제로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음악과 함께 조명 쇼가 열렸는데, 후반부에 익숙한 우리 노래 아리랑도 나와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람들은 15분간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았고,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바빴습니다. 지난밤 멀라이언 파크에서 본 마리나 베이의 밤이 길고 진하게 이어지는 감동이었다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 트리 쇼는 15분간 마음을 마구 흔드는 설렘쪽에 더 가까웠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15분간 소리 없이 조용해 지는 시간, 아마 다들 이 황홀한 야경에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환상적인 나이트 쇼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아예 누워서 두 눈 가득 하늘과 조명만 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거나 아예 누워서 15분간 슈퍼 트리 쇼를 감상했습니다. 저도 사진 좀 덜 찍고 누워서 볼 걸 그랬어요.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누워서 보면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화려한 15분의 쇼가 순식간에 끝나면 플라워 돔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전처럼 불을 밝힙니다. 아직 남은 여운은 이 정원의 야경을 보며 풀면 되겠습니다. 말 없이 쇼만 감상한 사람들이 그제서야 정원 곳곳에 앉아서 함께 온 이들과 특별한 밤의 감동을 나누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내 혼자였던 저는 쇼가 한창일 때와 같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뿐이었지만요. 아마도 이 여행 중 가장 외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가로질러,
마리나 베이에 도착했습니다. 아홉시가 가까운 밤이지만 이 밤의 도시는 도통 식을 것 같지 않더군요.
멀라이언 파크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두 번의 밤을 화려한 야경과 함께 보낸 뒤 싱가포르는 제게 '밤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