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하는 순간 지나쳐 곧 저만큼 멀어져 버립니다. 아침과 밤이 다르게 피더니 두어 번 비에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일 년 내내 그립다며 이름을 불렀지만 잠시 한 눈을 판 죄로 다시 일 년의 기다림만 남았습니다.
2017년 봄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날들이 이제 추억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꽃이 다 떨어지고 그 자리에 파란 잎이 돋아난 4월의 봄날, 하지만 이렇게 사진 몇 장으로나마 2017년 봄을 남겨둘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요.
올림픽 공원, 서울
해마다 4월이면 별 것 아닌 일들이, 그것도 매년 다른 일들이 몰려 혼자 잠시 꽃놀이 갈 시간도 없이 봄이 흘러가 버립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고 작은 일들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올 해는 다행히 아침 한 때 공원을 찾아 이미 흐드러진 봄꽃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날 밤을 새서 밀린 일을 끝내야 했습니다만, 이번 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쁜 날이었어요.
올해도 역시 혼자였던 봄꽃놀이, 장소도 언젠가의 봄과 같이 잠실 올림픽 공원이었습니다. 다행히 며칠간 사람들을 괴롭힌 미세 먼지가 잠시 걷혀 쾌청한 날씨였어요. 올 봄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해였나, 아니면 그 전 해였나. 잠실 올림픽 공원 끝자락에 숨겨진 작은 꽃길을 우연히 발견하고 해마다 이 길의 벚꽃을 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여의도나 진해는 물론, 집 앞 우이천의 긴 벚꽃길보다도 짧은 꽃길이지만 그나마 서울에서 인파에 치이지 않고 여유롭게 벚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물론 주말에는 이곳 역시 사람으로 빽빽합니다만.
가지마다 빽빽하게 꽃송이가 달린 풍경은 불과 일주일 전이지만, 지금은 이미 저 꽃이 다 떨어지고 날려 푸릇푸릇 잎이 가득 돋아났을 것입니다. 그 전에 이렇게 보고, 담아서 다행입니다.
이른 아침의 공원, 걸음을 서두르면 일 분이나 걸릴까 싶은 짧은 꽃길을 끝에서 끝으로 몇 번이나 왕복하며 올 해 처음이자 마지막 꽃놀이를 즐겼습니다.
- 봄을 즐기는 아이들 -
- 색과 꽃이 있는 풍경 -
- 만개 -
- 신사의 봄 -
꽃이 예쁘게 피기도 하지만 이 짧은 길이 좋은 것은, 오색 선명한 팔각정과 연분홍 꽃, 파란 하늘의 조화가 처음 이곳을 찾던 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곳에 올 때마다 날씨가 화창해 파란하늘 아래 기대했던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작년과 같은, 혹은 머리로 상상한 뻔한 봄의 장면을 직접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역시나 상상하는 것과 직접 이뤄지는 것은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삼십 분 꽃놀이를 위해 왕복 두어 시간이 걸림에도 기꺼이 봄이면 이 길을 떠올리고 또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 봄나무 셋 -
또 하나의 스팟, 왕따 나무로 유명한 월드컵 공원의 언덕 한켠에는 세 그루의 벚꽃 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데, 언덕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멋진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 아래서 셀프 사진을 찍으며 봄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고요. 올해도 어김없이 공원을 빠져 나가는 길에 들러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담았습니다.
- 2년 전 봄에 -
봄꽃의 화려함 때문인지 이맘때쯤 왕따 나무는 다른 때보다 확실히 인기가 없습니다.
어린이 대공원, 서울
하루, 두어 시간으로 끝날 줄 알았던 2017년 봄 나들이 기회가 한 번 더 생겼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적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이름만 들어도 춤을 췄다는 어린이 대공원에도 봄꽃이 절정에 달해 있더군요. 그 꽃이 그 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가가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꽃이 많이 떨어지고 녹색 잎이 나무를 새로 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모스크바에서 맞은 폭설처럼 꽃잎이 날리던 그 오후에, '2017년 봄'으로 남을 장면을 만났습니다.
- 2017년 봄 -
하늘이며 땅이 꽃으로 흐드러진 길을 캔버스에 담는 청춘의 뒷모습. 이 한 장면으로 이제 올 해 봄은 됐다, 며 공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꽃길을 걸어 나오는 길에 바람이 한 번 더 세차게 불어 꽃비가 내렸습니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