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출발해 화요일을 가득 채우고 새벽 비행기로 돌아온, 3박 5일의 밀도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라 삼박사일이면 충분하다는 주변의 말과 달리 저는 늘 시간에 쫓기고 가지 못해 아쉬운 것이 많았습니다. 뭐, 여행이 일주일쯤 넉넉하게 주어졌더라도 돌아오는 날의 아쉬움은 매한가지였겠지만 말이죠.
여섯시간 오십분의 비행, 다시 숙소까지 한 시간 반. 무더운 날씨에 호텔에서 짐을 풀기 전에 샤워부터 하고 나니 이미 오후 다섯시가 지나 있더군요. 기내식을 남김없이 먹었지만, 역시 여행의 첫번째 일정은 식사였습니다. 아침에 어머니가 쥐어 주신 든든한 현금을 믿고 점보 레스토랑에서 칠리크랩으로 더 없이 화려한 혼밥을 즐기고(http://mistyfriday.kr/2959) 마리나 베이로 향했습니다. 클라크 퀘이(Clarke Quay) 에서 마리나 베이의 멀라이언 파크까지 거리가 제법 되긴 하지만, 강변으로 이어진 야경이 꽤나 그럴듯해서 걸어갈 맛이 났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멀라이언 파크.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멀라이언이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쉴 새 없이 물을 내뱉는(?) 멀라이언의 모습도 장관이지만 그 유명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모습을, 저녁마다 열리는 레이저 쇼를 보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멀라이언 파크에 도착한 것이 대략 여덟 시, 그리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멀라이언 옆은 물론 바다로 난 작은 다리와 전망대까지 사람이 가득하더군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관광 스팟인데다 마침 토요일 밤이라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맞은 첫 번째 밤,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였던 마리나 베이의 야경으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며 설렘이 더욱 커졌습니다. 멀라이언 옆의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배낭에서 삼각대와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많은 인파들이 종종 삼각대 앞을 막아 서서 사진 찍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싱가포르의 야경 일부가 된 기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 마리나 베이의 인파 -
- 멀라이언과 마리나 베이 샌즈 -
도착 한 시간쯤 지나 아홉 시 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정상의 그 유명한 수영장에서 화려한 레이저 쇼가 펼쳐졌습니다. 때맞춰 마리나 베이 샌즈 몰의 지붕도 색을 바꿔 입으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더군요. 멀라이언 분수와 마리나 베이 샌즈의 레이져 쇼를 함께 사진에 담았습니다. 처음 와서 어떨결에 앉은 자리가 기대 이상으로 명당이었습니다. 음악과 함께 레이저 쇼는 약 15분간 진행되는데, 다음 쇼까지는 다시 한 시간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처음엔 기대보단 별 것 아니라던 저는 결국 이 날 열한 시 마지막 쇼까지 보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쉽게 눈을, 걸음을 뗄 수 없는 특별한 야경이었어요.
'이 곳의 야경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워'
전망대에 모인 사람들 중 누가 말하더군요. 누군지 알지 못하고, 그저 목소리로만 들은 얘기지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도시라는 수식어, 그리고 그 화려함의 절정이라는 마리나 베이의 야경 앞에서 아마 누구든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는 물론 관람차 싱가포르 플라이어, 헬릭스 브릿지, 독특한 형태의 ArtScience Museum 건물까지 한 눈에 담기는 풍경이 정말 풍요로웠어요.
이 날 저와 함께 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낮보다 더 밝고 화려한 마리나 베이의 야경을 사진으로 담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 마리나 베이, 40초 -
언제나처럼 뜨거웠던 날이었겠지만, 적어도 제겐 가장 화려했던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토요일 밤 풍경.
당분간은 저 역시 그 때 들었던 말처럼 이 야경이 제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날 마리나 베이에 머무르며 보고 듣고 찍고 감탄한 약 세 시간의 기억만으로도 여행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