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가면 꼭 이걸 먹어 보라더군요. 그래서 싱가포르에 도착하자 마자 첫번째 식사로 이 곳을 선택했습니다. 출국길에 어머니께서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라며 손에 쥐어 주신 돈도 있겠다, 혼밥이지만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즐겨 보기로 했죠.
호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곧장 달려간 클라크 퀘이(Clarke Quay). 강변에 있는 점보 레스토랑은 관광객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있는 식당입니다. 인기 있는 싱가포르 음식인 칠리 크랩이 대표 메뉴인데, 칠리 크랩을 먹을 수 있는 싱가포르 내 레스토랑 중 가격과 맛 종합적인 평이 좋아 '입문용'으로 좋다고들 합니다. 가격도 적당하다고 하네요.
혼자 온 사람은 저뿐이더군요.
혼밥이지만 싱가포르라서 외롭지 않다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 싱가포르 내 점보 시푸드 레스토랑 위치 -
싱가포르 내 점보 시푸드 레스토랑은 여섯 곳이 있습니다. 이 중 아무래도 여행자가 방문하기 쉬운 곳은 클라크 퀘이(Clarke Quay)에 있는 리버 사이드, 리버 워크 지점 두 곳이죠. 때문에 이 두 지점은 제법 긴 대기 시간이 필요합니다. 식사 시간에 맞춰 가면 약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기도 하는데요, 카운터 앞에 있는 태블릿을 통해 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차례에 맞춰 전화를 해 줍니다.
운이 좋았는지, 혼자 온 사람이 드물었던 탓에 저는 약 십 분만에 구석에 있는 작은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선명한 주황색 메뉴판을 훑는 이유는 '칠리 크랩'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추천 메뉴 딱지가 붙은 것을 확인하고 주문했는데, 가격은 '시가'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래 뭐 하루쯤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점보 레스토랑의 칠리 크랩 한 마리입니다. 주문할 때는 몰랐는데, 실제 메뉴를 보니 혼자 먹기엔 양이 꽤 많습니다. 이렇게 큰 게가 있군요..!
싱가포르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게를 토마토 칠리 소스로 요리해 고수를 올렸는데, 모양새가 전혀 이질감이 없습니다. 왠지 어떤 맛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냄비를 가득 채울만큼 게 크기가 꽤나 크고 양념이 푸짐해서, 서너명이 한 마리를 주문해 밥, 빵과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고수를 무척 좋아해서 이 비주얼이 마음에 들더군요.
거기에 싱가포르 타이거 맥주는, 마치 이 요리를 위해 만든 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칠리 크랩과 잘 어울렸습니다.
물론, 이 생각은 후에 사테 거리, 기타 여러 요리를 먹을 때마다 새로 바뀌었지만 말이죠.
타이거 맥주가 정말 맛있었어요.
처음 맛 본 칠리크랩은 한국에서 먹던 게와 달리 살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한 입 가득 게살을 먹는 즐거움이 있었고, 소스가 자극적이지만 달고 짠 맛이 강해서 누구나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껍질이 무척 단단하지만 살을 발라먹기 좋게 적당히 깨 놓았습니다.
한 입 가득 게살을 먹는 즐거움은 이 날 처음 알게 됐어요. 특히나 집게발 안에 가득 찬 흰 살에 소스를 가득 묻혀서 입안 가득 넣으면 자동으로 눈이 감기면서, 여기가 싱가포르던 서울이던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 물론 타이거 맥주는 필수입니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으시더라도 칠리크랩은 꼭 맥주와 함께 드세요.
소스는 미니 번을 함께 주문해서 먹으면 좋습니다. 기름에 튀긴 작은 빵인데, 칠리 크랩 소스와 무척 잘 어울립니다.
그렇게 호화로운 혼밥을 즐기는 동안 주변에는 어둠이 깔리고, 싱가포르에서 맞는 첫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식당은 빈자리 없이 내내 분주했고요.
가격표를 받아들고 겉으로는 '응 그래, 그 정도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흠칫 놀랐습니다.
칠리 크랩 한 마리와 맥주 한 잔, 미니 번의 가격은 약 95 싱가포르 달러. 예상을 훨씬 웃도는 가격입니다.
후에 다른 여행자들의 팁을 보니 보통 칠리 크랩 세트 메뉴를 많이 드시더라고요. 한 마리는 적어도 3-4인용이라는 얘기를 너무 뒤늦게 보았습니다.
그렇게 싱가포르 경비의 1/3에 달하는 금액을 저녁 식사에 탕진(?)한 뒤, 헛웃음을 지으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싱가포르 Old Hill Street Police Station -
비싼 가격에 속이 좀 쓰리긴 했지만, 강 건너 제가 무척 기대했던 싱가포르 Old Hill Street Police Station 건물의 야경을 보는 순간 이내 잊게 됐습니다.
두 번은 가지 않겠지만, 첫번째 싱가포르 여행이라면 점보 시푸드 레스토랑의 칠리 크랩은 한 번 경험해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