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꼽은 이 카메라의 몇몇 요소들이 이 카메라 자체에 대한 것이라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이 카메라와 함께한 저의 시선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모든 것 위에 있는 라이카 Q의 가장 큰 가치로 꼽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카메라가 제게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다면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어쩌면 돌아오자마자 다시 그리웠던 M을 손에 쥐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이 무모한 선택을 통해 저는 적지 않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LEICA Q Typ 116 | 28mm | F5.6 | 1/1000 | ISO 100
잃은 무게 그리고 얻은 여유 400g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단연 400g의 여유입니다. 라이카 M과 35mm SUMMICRON 렌즈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뢰감을 줬지만 1kg에 육박하는 무게가 종종걸음에 힘을 잃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카메라의 2400만 화소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한 제가 유일무이한 보기 라이카 Q를 발견한 것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그 무게만큼 진해진 여행
LEICA Q Typ 116 | 28mm | F4.0 | 1/640 | ISO 100
놀랍게도 Q가 덜어준 400g의 무게만큼 사진에서 여행 그 자체로 추가 기울었습니다. 600g이 넘는 이 카메라는 여전히 많은 분들에게 크고 무거운 카메라이지만, 제게는 종종 어깨에 매단 존재를 잊을 듯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사진을 위한 여행에서 순간을 위한 사진으로 시선을 변화시켰고, 떠나왔을 때만 분비되는 알 수 없는 호르몬의 지속시간도 더 늦춰주었습니다.
평소 무척 힘차게 여행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던 제게 라이카 Q는 마지막 한 발을 더 박차고 내딛을 힘을 더했습니다. 이전엔 모자라지 않다 생각하던 것이었습니다. 생 수 한 병보다 작은 400g의 여유지만 낯선 도시에서 그것이 종종 스치는 것에서 파고드는 것으로 제 여행을 갈라놓았으니 딱딱한 로퍼에서 스니커즈로 갈아 신은 직후의 가벼움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어도 걸음의 가벼움은 여행 그리고 시선의 가벼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들뜬 감정들이 종종 장면 속에 녹아들기도 합니다. 눈을 가리던 기기가 작아지며 프레임 속 대상과 더욱 친밀해지는 느꼈고 그렇게 낯선 도시서 이전에 없던 것들을 만끽했습니다. 라이카 Q를 통해 알게 된 '가벼움'이란 단어는 오늘도 사진 속에서 새로운 글자들을 찾을 정도로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보다 빠른 걸음, 적극적인 시선
LEICA Q Typ 116 | 28mm | F2.0 | 1/800 | ISO 100
크고 무거운 DSLR 카메라가 여행의 즐거움을 짓누른다며, 일상의 기록에 쉬 빈틈을 만든다며 선택한 라이카 M이었습니다. 한동안 그것은 더없이 가벼웠지만 이내 이전보다 더 짓누르는 무엇을 느꼈습니다. 욕심 때문이기도, 그간 제 시선이 더 앞서 나아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조금 더 가벼운 것을 찾다 라이카 Q에 닿게 되었습니다.
이 카메라의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빠른 자동 초점은 거리에서 값지기 튀어나오는 공교로운 장면들에 종종 저보다 빠르게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기록한 장면들엔 지난 제 것들엔 킁킁대며 맡아야 했던 이런저런 향이 조금 더 진해진 것을 느낍니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어도 분명 새로운 것입니다.
특유의 정숙함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철컥하는 셔터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작아지니 담을 수 있는 장면이 눈에 띄게 늘었고 프레임 밖에서 완벽한 타인이 되어 조금의 개입 없이 장면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종종 무대에 비친 제 그림자를 발견하고 무척 아쉬워했던 지난 여행들과 비교하니 마음의 짐을 한 덩이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가벼움이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고 조용함은 적극적인 시선이 되었습니다. 제가 담은 것들도 전보다 조금 더 파릇파릇해진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떠올리면 이 선택은 안위와 호기심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으로 얻은 것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치명적인 단점, 이 카메라는 포토그래퍼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까?
이 카메라는 M을 사용하며 제가 느낀 구석구석의 가려움을 꼼꼼히 긁어줬습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처음 쥐며 든 불안함이 현실이 된 것은 몹시 슬픈 일입니다. 라이카 M에서 느꼈던 무게 이상의 묵직함, 단단함을 초월한 강직함을 애초에 Q에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사용할수록 이 카메라는 '소모품' 혹은 '연장'의 인상이 강했습니다. 매끈하고 멋진 이미지를 편하게 얻을 수 있지만 그 유효기간이 새로운 Q에 맞춰져 있는, 잘 만들어진 요즘 사진기라고 할까요? M이 불편함과 부족한 성능에도 쉬 '세월'을 약속하게 된 것을 떠올리면 이것은 보이지 않지만 큰 차이입니다.
지난 여행 중 땅에 떨어진 이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주우며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분명 M을 향한 것이었고 편리함이 반드시 불편함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확실히 좋은 카메라이지만, 아쉽게도 잘 만든 카메라는 아닙니다.
-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