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제 블로그에서는 처음 쓰는 영화 후기입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못 되어서 아무리 재미있게 본 영화도 상영관을 나오는 순간 주인공의 이름부터 스토리까지 거짓말처럼 잊게 되는데요
- 어두운 상영관에서 나오며 맞는 밝은 조명이 마치 '레드 썬' 같은건지 -
이 영화는 조금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리고 후에 이 날 제가 느낀 것들을 다시 한 번 보게 될 것 같아 짧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미 만화와 드라마로 유명한 '심야식당' 극장판입니다.
요즘도 종종 만화책을 보거든요.
요즘 트렌드인 '쿡방'이나 '먹방'에 굳이 넣지 않더라도 이 스토리가 주는 매력은 특별하죠.
열 두시부터 일곱시, 메뉴는 하나 뿐이지만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가능한 한' 뭐든 만들어준다는 이 도쿄 구석의 낡은 식당을 배경으로
그리고 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 각자에게 영향을 준 '음식'을 매개체로 하여 사랑부터 꿈, 욕심과 증오에 이르는 다양한 '나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음식에 얽힌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연을 보고 듣다보면
마치 내가 이 식당 한 구석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묘한 몰입도 경험하게 되죠.
아베 야로의 원작 만화를 시작으로 동명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시즌 3까지 방영되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두 시간 분량의 극장판으로 제작돼 상영하게 됐죠.
6월 18일부터 한국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개봉한 일본 영화들이 그렇듯, 상영관 수나 상영 시간대가 개봉 초반임에도 꽤나 불리하더군요.
운 좋게 집 앞 극장에서 상영 중이라 개봉 둘째날 아침 조조로 관람했습니다.
조조와 심야 이렇게 하루 단 두번만 상영하더라구요. 그마저도 금방 종료할 것 같아 지체없이 예매를 했어요.
관람 예정이신 분들이 계시다면 되도록 빨리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곧 휴가철까지 끼면 극장에서 보기는 상당히 어려워질 것 같아요.
열 명 남짓 찬 한산한 상영관,
이윽고 불이 꺼지고
익히 아실 그 유명한 오프닝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족히 수백번은 본 오프닝인데,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보니 무척 새롭습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심야식당의 오프닝-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상영시간은 약 두시간 정도입니다.
심야식당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라면 장면이 바뀔 때마다 옅은 미소를 짓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주인공 고바야시 카오루가 역시 영화에서도 '마스터' 역할로 나오며
배경이 되는 식당 세트와 식당 단골 손님인 주요 등장 인물 역시 드라마와 동일하게 때문이죠.
그래서 어쩌면 '드라마에서 봤던 에피소드인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극장판만의 새로운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것도 두 시간의 '여유로움' 때문인지 꽤나 상세하고 다양하게요.
무척 친근한 느낌이었습니다. 즐겨보던 드라마를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것이 새롭긴 했지만, 몰입하다보니 그마저도 잊게 되었고
몇 번씩 보았던 드라마의 새 에피소드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아주 큰 방에서. 친구들과 함게.
영화 속 마스터는 여전히 무뚝뚝한 듯 자상한 조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고,
모인 손님들 역시 시끌벅적하고 유쾌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반가움까지 들었으니까요.
주방에서 들리는 프라이팬의 소리도 극장에서 들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색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오다기리 죠'의 재등장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등장 인물로 보이지만 사실 시즌 1,2에 모두 등장한 주요 인물 중 하나였죠.
늘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던 '정체 불명의 사나이'로,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야 그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 오다기리 죠는
이번 극장판에서 심야식당이 있는 신주쿠 뒷골목을 지키는 경찰로 등장합니다.
이 배우를 눈여겨 보지 않으셨다면 아마 다른 배우라고 생각할 정도로 180도 달라진 이미지로 말이죠.
매우 바르고 정직한 성격의 소유자, 착실히 이 골목을 지키는 경찰,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사건을 풀어가는 '키 플레이어'로서
'마스터'와 함께 이번 극장판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역시나 이야기의 큰 틀은 변하지 않습니다. 역시나 이 '심야식당'을 배경으로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포맷을 동일하게 차용했고,
두 시간의 상영시간동안 총 세개의 스토리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빈행됩니다.
때문에 자칫 드라마용 에피소드 몇 편을 이어 붙였다는 걱정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 이 극장판을 보며 극장판을 위한 새로운 구성이 상당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 세개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연결 방식이 무척 세련됐고, 두 시간의 전체 스토리를 관통하는 메인 스토리 세 이야기에 통일감과 긴장감을 주고 있습니다.
단일 에피소드 방식의 드라마와 이 극장판 중 어느 쪽이 더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 극장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한 편에 30분 남짓, 그나마도 오프닝과 엔딩, 다음편 예고 등을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등장 인물의 성격과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 않고,
이야기 전개 역시 사건 중심으로 간결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습니다.
- 물론 원작 만화 스토리는 이보다 더 간결하고 띄엄띄엄 진행됩니다만 -
두 시간동안 여유있게(?) 진행되는 극장판에서는 이 이야기 방식이 상당히 느긋하게 바뀝니다.
등장인물의 소개는 그 인물의 배경부터 시작해 성격과 현재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는 키워드까지 적절하게 배치했고
인물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친절한 편입니다. 굳이 '생각'과 '추측'을 하지 않아도 시각과 청각을 통해 충분히 그 관계를 알 수 있죠.
일례로, 심야식당의 '마스코트' 중 하나인 오차즈케 시스터즈는 이 영화에서 등장 인물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질문자'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미 없는 이야기로 심야 식당 한 칸을 차지한 '단골 손님'으로만 꽤 많은 시간을 등장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상세 줄거리는 적지 않는 게 좋겠죠.
총 3개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다름 없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 식당을 찾아왔다가 우연히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꿈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다 우연히 들어온 이 식당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역시나 마지막엔 그 들이 이 식당에서 '우리'가 되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심야 식당의 '주인공'인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요,
역시나 매 이야기마다 이 '음식'이 주인공인데, 극장판에선 음식의 조리과정도 더욱 상세하게 보여줘서 더욱 군침이 돌았습니다.
음식 때문에 심야식당을 사랑하게 된 분들이라면 아마 만족하실거에요.
아, 드라마에서 익히 보았던 문어 모양 소시지도 반가웠어요.
이 영화는 심야식당 특유의 잔잔하고 아련한 이야기들이 극장판이라고 더 과격하거나 유난스럽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상세하고 친절한 이야기 전개 때문에 조금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고요.
드라마가 잠시 심야 식당에 앉아 그 날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라면
극장판은 영업이 끝나고 다음 영업을 준비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듯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극장에서 보는 영화 치고는 너무 잔잔해서 자칫 따분할 수 있어요
우리는 큰 스크린 위로 쉴 새 없이 흐르는 현란한 장면들과 시끄러운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조만간 도쿄로 향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꼭 어딘가에 있을 저런 골목, 저런 식당을 찾아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