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겨울같은 차가운 바람을 몇 주나 앞당겼지만
동시에 가을 빛도 함게 몰고 왔습니다.
모처럼 활짝 갠 가을날,
창경궁에 있는 특별한 정원에 다녀왔습니다.
비원으로도 함께 알려진 후원은 창경궁, 창덕궁과 이어진 정원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경궁 내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입니다.
때문에 제한된 인원이 추가 요금을 내고 관람할 수 있는 곳이죠.
인터넷으로도 예약이 가능하지만, 아침에 갑자기 떠오른 저는 일찍 가서 당일분 표를 구매했습니다.
시간별로 해당 회차 티켓을 소지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저는 아침 열 시 첫 회차로 입장했어요.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과 단체 관람객로 가득 찬 창덕궁과는 달리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흔히 떠올리는 가을의 고궁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한가롭고 고요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직 단풍이 들기엔 조금 이른 시기지만
마침 이제 막 물든 가을 색과 돌담길이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폴폴 풍기고 있네요.
아마도 그 옛날 선조들 역시 저처럼 적잖이 감탄하면서 보지 않았을 듯한 후원의 첫 풍경입니다.
어수문과 부용정, 그리고 주합루가 보이고 마침 날이 화창해서 깨끗한 반영까지 볼 수 있었어요.
고궁의 다양한 풍경들을 자주 봐 왔지만 후원은 옛 멋과 정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아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그런 '꿈의 정원' 같은 곳이었겠죠
외국 관광객들 역시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입니다.
저도 이렇게 좋은데, 이 분들은 더 신선하고 좋으셨겠죠.
원래 가이드 분을 따라 제한관람이 가능한 곳이지만
약 2주간 진행되는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덕분에 자유관람이 가능했습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곳곳에 출입 제한 된 곳이 많았지만,
그 덕분에 이렇게 오래된 문화재를 그 감동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거겠죠.
맑은 가을 날씨 덕분에 감상할 수 있었던 이 날의 반영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후원은 약 1시간 30분의 관람 시간이 소요될 만큼 정원이라기엔 엄청나게 큰 규모였습니다.
자유롭게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선조들이 만든 멋진 조경들과 그 위에 앉은 가을 정취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고궁과 비교해 후원이 특별한 것은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된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는 점입니다.
세월에 따라 보수와 개축을 진행하면서
어느새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한국 전통 양식의 보존만 남고
선조들이 만든 고유의 멋이 사라지고 있는
너무나도 '새 것 같은' 문화재들에 비해
후원의 문화재들은 수백년 간의 세월이 전하는 그대로의 감동과
직접 이 곳에서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 일어난 일들을 좀 더 진솔하게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마지막에 들렀던,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관람정의 풍경
비밀의 숲에 온 듯 특별한 풍경과, 멋진 반영이 주는 환상적인 느낌 등이
한참을 바라보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게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찾은 창덕궁 후원은
이제 조금은 진부해진 한국인의 궁 투어와는 사뭇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마 이런 여유가, 그리고 이 경치와 장면들이
고궁에서의 시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 아닐까요?
이제 조금씩 그 꼭지점을 향해 상승하는 이 가을에
꼭 가봐야 할 환상의 정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LEICA M, Summilux 50 / 35mm as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