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가을, 2013 @ 위례성길LEICA M9 + Summicron 50mm 4th
마지막 남은 가을의 조각이 화려했던 계절의 살점이 이제 다 떨어져버려 색 잃은 풍경만이 가득한 도시 시간은 참으로 무정하기도 하지 다가오는 이에게만 너그러우니 말야.
결국 다 떨어진다, 결국 다 잊혀진다, 결국엔 다 사라져버린다.
떨어진, 떨어지고 잊혀진, 떨어지고 잊혀져 슬픈 한 때는 생명으로 가득했던 존재들.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 뒤 돌아서니 떨어진 낙엽 두터워진 외투와 그만큼 쓸쓸해진 맘까지 가끔은 이렇게, 하루만에 가을이 오기도 한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때이른 눈은 파도처럼 밀려와 아직 남은 가을 풍경들을 덮으려고 합니다. 쌓인 눈 아래엔 아직 가을이 남아있지만, 눈만 보고 우리는 ‘벌써 겨울’이라고 하죠. 어쩌면 우리는 겨울을 더 미워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나태했던 나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냥 가을이 짧은 거였다고 말하고 싶어서.
2010년 가을은 유난히 짧았고 그마저도 이제 다 떨어지고 없어
봄 여름, 그리고 얼마 전 가을까지 내내 알록달록했던 남이섬은 늦가을엔 하나 둘씩 색이 빠지고 떨어져 내려 색에 현혹되어 나를 돌아보지 못하는 여행따위는 할 수 없게 된다. 저채도의 이 작은 섬을 하염없이 걷다보면 옆사람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누군가 오랜시간 힘들게 완성시켰을 조금은 색다르고 수줍은 사랑고백
남은 게 거의 없던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그렇기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었던 당당한 나무 한 그루
다음 걸음이 닿을 곳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낙엽을 차마 밟을 수 없다
공허하게 빛이 내리는 남이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