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의 문화생활. 벼르고 벼르던 요시고 사진전을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위치도 서울역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원래 가까울 수록 자꾸 미루게 되잖아요. 주말에는 인파 때문에 제대로 된 관람이 어렵단 얘기도 들었고요.

서울역 근처에 있는 그라운드 시소. 새 건물이라 깨끗하고 이전에 갔던 성수동 그라운드 시소보다 내부도 넓어서 관람 환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 하는 두 번째 전시라고 해요. 유별난 한국인들이 사랑에 보답하듯 이번 전시에는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전시됐습니다. 전시 기간이 2026년 3월까지라고 하니 시간 되실 때 다녀 오세요. 이미 어지간한 사람들은 왔다 가서 전처럼 붐비지도 않는다고 해요. 티켓 가격도 할인 중이고요.

전시 테마는 작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여행, 여가입니다. 스페인 출신의 젊은 사진작가 눈에 비친 미국, 한국, 일본, 스페인의 풍경들을 볼 수 있어요. 도시, 주제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중간 중간 영상과 소리, 조명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전시 연출이 작품 못지 않게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주제는 휴일의 기억. 작가가 나고 자란 스페인의 해안 도시 풍경들을 담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진들이 모여 있는 스팟이라 여기서 되도록 오래 머물며 한 장 한 장 감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요시고가 풍경과 색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들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사진들입니다.



파스텔톤으로 펴바른 색, 가까이 또 멀리 담은 형태들이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사이사이 작가가 한껏 줌을 당겨 한 사람 한 사람을 포착한 사진들이 있는데 그 절묘한 포즈와 표정 등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배경이 바닷가로 한정돼 있고 구도가 통일된 사진이 많아서 자칫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해변에 모인 사람들의 움직임을 읽는 게 재미있더군요.



건축물 사진은 비슷한 시기에 SNS에서 화제가 된 창작 그룹 우연히웨스앤더슨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다음 테마로 넘어가는 통로에는 아름다운 순간 포착이 걸려 있습니다.



물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검은 공간에 떠 있습니다. 각 작품들은 조명으로 비춰 돋보이게 했고요. 수중 촬영 사진들이 꽤 많이 포함돼 있는데 그런 감각을 전달하기 위한 연출로 보였어요. 쉽게 찍고, 보기 힘든 사진들이라 흥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역시나 작가 특유의 익살스런 프레임, 절묘한 포착들이 보였고요. 요시고의 사진들은 어려운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아서 보기에 편합니다. 하지만 한 컷 한 컷 인내와 순발력이 느껴져서 역시 사진가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요.


현란한 색들로 눈을 사로잡았던 크루즈 편. 저도 십여년 전 지중해 크루즈에 탑승한 적이 있어서 사진 속 장면들에 관심이 가더군요.


배 안에서 하루에 12km를 넘게 걸으며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집중해서 담았다고 합니다. 여유가 느껴지는 풍경, 아름다운 날씨, 선명한 색들을 배경으로 요시고다운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첫 번째 방에서 봤던 바닷가 사진들과 결을 같이 하는 느낌.


반면 스페인 외의 나라와 도시들을 여행하며 담은 사진들은 분위기가 크게 다릅니다. 도쿄에서 찍은 것들은 음울하고 감각적이고 서울은 낡지만 총천연색들로 치장돼 있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인만큼 여행지의 특성에 따라 작품 스타일도 바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연하다고도 할 수 있고 여전히 진화 중이라 볼 수도 있겠어요.



서울을 담은 사진들에선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서울이 제 2의 고향 같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잖아요.

뉴욕 사진들은 하나같이 어둡거나 음울합니다. 낮에 찍은 사진이 드물고 비가 내리는 풍경이 많았어요. 창 너머로 비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은 사울 라이터를 연상 시키기도 했습니다. 제가 느낀 뉴욕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었습니다.




뉴욕에서 LA까지 미 대륙을 한 달간 횡단하며 찍은 사진들이 뉴욕 사진들보다 더 좋았어요. 여기선 폴라로이드로 많은 작업을 했는데 왜곡된 색과 흐릿한 형태, 답답한 프레임이 로드 트립과 잘 어울렸거든요. 낡은 모텔 건물, 외롭게 서 있는 표지판, 황무지 풍경같은 것들과.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열기구 사진들. 뉴멕시코의 열기구 축제를 담은 작품들인데 형형색색 독특한 열기구들이 평소 열기구 마니아인 저를 설레게 하더군요.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좋아할만한 여행 그리고 아름다운 색 표현이 장점인 전시입니다.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겠더군요. 특히나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작품들도 많으니 사진 취미가 있으신 분들은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을 겁니다. 특별히 사진 예술에 관심이 없어도 아름다운 풍경 보는 재미가 충분해요. 이런 게 데이트 코스로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