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독특한 표현을 내세운 보이그랜더의 렌즈 포트레이트 헬리어 75mm F1.8의 두 번째 후기입니다. 구면 수차 제어라는 독특한 장치를 선보인 이 렌즈는 특수 필터 또는 후보정으로 가능했던 효과들을 렌즈 안에 구현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해상력, 만듦새 등 기본기 역시 현행 렌즈답게 탄탄합니다. 밑바탕은 75mm F1.8 렌즈지만 경통에 있는 제어 링을 돌리고 값을 조절함에 따라 마치 서로 다른 렌즈를 사용하는 듯 변화무쌍한 결과물을 안겨 주는 것이 매력입니다. 렌즈의 사양과 디자인 등의 기본 정보는 지난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보이그랜더 포트레이트 헬리어 75mm F1.8 렌즈 - 최초의 구면 수차 제어 렌즈 (Portrait Heliar 75mm f/1.8)
보이그랜더 포트레이트 헬리어 75mm F1.8 렌즈 - 최초의 구면 수차 제어 렌즈 (Portrait Heliar 75mm f/1.8)
*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하였습니다보이그랜더에서 인물 촬영용 렌즈 포트레이트 헬리어 75mm F1.8을 출시했습니다. 망원 초점거리, F1.8 개방 촬영에 구면 수차를 사용자
mistyfriday.kr
75mm F1.8
구면 수차 제어 시스템을 빼고 보면 75mm F1.8의 대구경 준망원 렌즈입니다. 망원 프레임의 클로즈업과 배경 압축, 개방 촬영의 배경 흐림 효과를 장점으로 꼽을 수 있어요. 85/135mm와 함께 인물, 정물 촬영용으로 적합한 사양입니다. 다만 결과물은 현행 보이그랜더 렌즈와 차이가 있습니다. 비구면 렌즈 등 특수 렌즈가 채용되지 않아서인지 개방 촬영에서 해상력 저하와 색수차가 눈에 띕니다. 헬리어 클래식 50mm F1.5 렌즈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아 고전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헬리어 시리즈의 컨셉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개방 촬영에서는 올드 렌즈의 특성을 보이지만 조리개를 조여 현행 렌즈의 느낌까지 낼 수 있는.
75mm 렌즈의 프레임은 85mm보다 체감할 수 있을만큼 넓습니다. 그래서 풍경, 스냅 촬영에서 50mm 렌즈의 역할을 일부 담당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망원 렌즈의 사용 빈도가 높지 않고 때문에 85mm 이상의 초점거리를 다루는 데 미숙한 편입니다만 75mm 렌즈는 그보단 확실히 수월했습니다. 원거리 풍경 사진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다수 안겨 줬고 개방 촬영에서는 50mm F1.4, F1.8 렌즈보다 주목도가 높은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친 렌즈로 불리는 85mm 렌즈가 종종 답답하다 생각됐다면 75mm 렌즈의 프레임을 한 번 경험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은 F1.8로 밝습니다. 85mm F1.4 렌즈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 장점이 되긴 어렵습니다만 인물 촬영에서 전신 아웃 포커스에 제약이 없으니 부족할 것도 없죠. 그만큼 휴대성에 이점도 있고요. 다만 헬리어 시리즈 특성상 다른 현행 렌즈들보다 개방 촬영 결과물이 다소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조리개 값에 따른 특성을 고려해 설정해야겠죠.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차이 (F1.8-11)]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비교에서 이 렌즈의 기몬적인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F1.8 최대 개방에서 배경 흐림 효과가 크지만 초점 부위 역시 소프트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그 대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보여요. F2.8부터는 해상력이 눈에 띄게 향상돼 심도 자체는 F1.8 결과물보다 깊지만 피사체에 대한 주목도는 오히려 높아집니다. 인물 전신 아웃포커스가 가능한 조리개 값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원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촬영을 F1.8-2.8 사이로 진행했습니다.
구면 수차 제어 링을 조절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F1.8 최대 개방 결과물은 소프트해 보이고 광원 주변으로 보라색 수차도 쉽게 발생합니다. 현행 렌즈의 매끈함에 익숙한 눈에는 영 어색해 보이지만 이 렌즈는 이런 연출을 내세웠으니까요. 그리고 심도 조절은 기대만큼 자유롭습니다.
구면 수차 제어 시스템
이 렌즈의 정체성이자 핵심 장치는 구면 수차 제어 시스템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 사용하면 평범한 75mm F1.8 단렌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경통 끝에 배치된 제어 링을 통해 렌즈의 구면 수차를 총 10 단계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조작은 렌즈의 초점 링과 비슷한 방식으로 저항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지만 중앙 기준점에서 한 차례 걸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조리개 링이 끊어지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덕분에 렌즈를 보지 않고도 대략적인 상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는 옵션은 크게 오버(over), 언더(under)로 나뉩니다. 양쪽 다 노멀 상태보다 이미지가 소프트해지지만 보케 표현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언더 설정은 소프트 필터를 쓴 것과 같이 이미지 전체가 흐려지고 보케의 크기 역시 커집니다. 오버 설정도 전체적으로 화면이 흐려지지만 상대적으로 대비가 강합니다. 보케가 작고 선명해지는 특징도 있습니다. 각 효과는 제어 링을 돌리는 정도에 따라 강도가 달라집니다. 눈금으로 값을 구분 해 놓았지만 조리개 링처럼 단계별로 구분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대략적인 값을 확인하는 정도로 사용해야 합니다. 더불어 설정마다 초점도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촬영 전에 재확인을 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습니다
언더(under) - 몽환적인 소프트 효과
구면 수차를 언더(under)로 설정하면 이미지 전체가 흐려집니다. 흡사 코팅이 벗겨진 올드 렌즈로 찍은 것처럼 보입니다. 렌즈에 성에가 껴서 촬영에 실패했을 때가 떠오르기도 해요. 소위 '뽀샤시' 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이 몽환적인 느낌이 이 렌즈를 대표하는 특징입니다. 인물 촬영을 고려한 효과지만 다른 피사체를 촬영해도 재미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풍경을 촬영하면 유화같은 느낌이 나고 스냅 사진은 옛날 카메라나 캠코더로 찍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특히 강한 빛이 떨어지거나 명암 대비가 큰 장면에서 그 효과가 도드라집니다.
제어 링은 총 6단계로 값을 나눠 놓았습니다. 당연히 끝까지 돌렸을 때 효과가 가장 크고요. 저는 노멀 설정과 비교하기 위해 주로 최대 값을 사용했지만 2,3단계 위주로 사용하면 보다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래는 수차를 조절하지 않은 노멀 상태에서 촬영한 이미지와 비교한 것입니다. 다른 렌즈로 촬영한 것처럼 둘 사이의 차이가 큽니다. 소프트 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단독으로 봤을 때는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답답해 보이기도 했는데 둘을 나란히 비교해 보니 의외로 구면 수차를 강조한 오른쪽 결과물도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별도로 필터를 사용하거나 후보정 작업을 하지 않아도 이런 극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구면 수차 제어 링 조작에 따른 이미지 차이]
[노멀 - 언더]
오버(over) - 강한 대비와 보케
언더 옵션이 단순이 이미지 전체를 뿌옇게 만든다면 구면 수차 오버 옵션은 좀 독특합니다. 노멀 상태보다 분명 부드럽긴 한데 동시에 강하고 선명하게 보이기도 해요. 제조사의 설명에 따르면 구면 수차를 과보정한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합니다. 노멀 설정과 비교하면 윤곽선의 표현이 강조되고 명암 대비가 강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개방 촬영의 보케 형태가 독특해집니다. 올드 렌즈의 이선 보케, 반사 망원 렌즈의 도넛 보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미지 전체가 은은하게 부드러워지기도 해요.
동일한 피사체를 노멀-언더-오버로 촬영해 비교해 봤습니다. 세 이미지가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강한 개성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언더 설정은 이미지 전체가 뿌옇고 흐려지지만 오버 설정에선 배경이 노멀보다 거칠게 표현됩니다. 보케 주변으로 선명한 윤곽선이 생긴 탓입니다. 주 피사체인 꽃의 명암 대비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지만 은은하게 번진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구면 수차 제어 링 조작에 따른 보케 비교]
[노멀 - 언더 - 오버]
노멀, 언더, 오버 세 옵션의 보케 표현을 비교해 봤습니다. 언더 설정에서는 보케의 크기가 커지면서 형태 역시 흐려지는 반면 오버 설정에선 보케 크기가 노멀 설정보다 작아지고 형태도 더 또렷해집니다. 이는 모든 조리개 값에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보케의 크기와 인물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고 싶다면 언더, 독특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다면 오버 설정이 적합합니다.
[조리개 값에 따른 보케 비교]
[노멀 - 언더 - 오버]
구면 수차 오버 설정의 개성은 단연 보케 표현에 있습니다. 동그란 물체로 찍어 그린 것처럼 선명한 원으로 표현돼 주 피사체보다도 더 눈에 띕니다. 인물 촬영에서 이를 적용하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로등, 네온사인 등 다양한 색의 보케를 담을 수 있는 환경에서 쓰임새가 있겠어요.
해상력 테스트
이 렌즈는 과거 M 마운트로 출시된 렌즈의 설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비구면 렌즈 등의 특수 렌즈도 추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렌즈의 광학적 한계 역시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개방 촬영에서의 해상력 저하와 색수차입니다. 중심부와 비교해 월등히 흐릿하고 보라색 수차도 쉽게 발생합니다. 상대적으로 주변부 광량 저하가 덜한 것은 의외입니다.
반면 F5.6 이상의 조리개 값에서는 다른 현행 렌즈들에 견줄만큼 선명하고 깔끔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렌즈에 비해 그 조건이 까다롭습니다만 애초에 이 렌즈는 다양한 표현을 즐기는 목적으로 기획됐다는 것을 유념해야겠죠. 단순히 선명하고 깔끔한 결과물을 원한다면 보이그랜더 헬리어 시리즈는 피해야 합니다.
렌즈의 광학 성능을 가늠하기 위해 구면 수차 조절은 해제한 상태로 비교했습니다. 중심부 해상력은 F1.8-2까지 해상력 저하가 있고 F4부터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이후 F11까지 회절 현상으로 인한 화질 저하 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이 렌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주변부는 중심부에 비해 해상력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F8까지 값을 올려야 중심부와 비벼볼 정도로 올라와요. 렌즈 특성상 주변부 해상력에 대한 평가는 좀 너그럽게 해야겠습니다.
[구면 수차 제어 링 조작에 따른 해상력 비교]
[노멀 - 언더 - 오버]
구면 수차를 조절했을 때의 결과물 비교입니다. 해상력, 선명도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수차 조절에 따라 표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참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언더 설정은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뿌옇게 흐려지고 오버 설정에서는 초점은 맞았으나 안개가 낀 것처럼 표현됩니다. 해외 매체에서는 이것을 베일 효과라고 칭하더군요. 양쪽 모두 개방 촬영에서 효과가 가장 강하고 조리개 값이 높아지면 점차 줄어듭니다. F8에서는 노멀과 오버 설정의 결과물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더 설정은 F11까지도 소프트 현상이 약하게 유지됩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촬영했지만 사진이 찍힌 지점이 미세하게 다른 것은 내부 렌즈군의 위치가 변경되기 때문입니다. 대물렌즈의 위치를 비교하면 오버 설정에서 바깥쪽으로 전진하고 언더 설정에서는 안쪽으로 후퇴합니다. 이에 맞춰 초점도 재설정해 줘야 합니다.
빛갈라짐 표현
9매의 원형 조리개를 탑재한 렌즈의 빛갈라짐은 18갈래로 나타납니다. F5.6부터 형태가 보이기 시작해 F11에서 가장 크고 선명해지는데 보통의 렌즈가 최소 조리개 값에서 형태가 망가지는 반면 이 렌즈는 F11의 결과물이 가장 좋습니다. 최소 조리개 값 자체가 F11로 낮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야간 장노출 또는 동영상 촬영에서 F11을 적극 사용해 빛갈라짐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높은 해상력만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표현을 즐긴다면, 그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 된 사진/영상을 촬영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제 값을 충분히 할 렌즈입니다. 구면 수차 제어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효과가 처음엔 좀 낯설더라도 이런 저런 촬영에 적용해보면 그간 몰랐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취미 사진가에게는 성능 못지 않게 즐거움이 중요하잖아요. 이 렌즈는 다른 렌즈에 없는 재미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게 필요할까.'싶다가도 한 번 경험해보면 빠져들지 모릅니다. 특히 인물 사진에서 독보적인 감성을 자랑하는 렌즈로 회자될 수도요.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없지만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은 적극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