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역 부근에 문을 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사진 전문 공공미술관으로 새로 지은 건물의 형태와 내부 공간, 서울 동북부라는 위치 등이 개관 전부터 관심을 모았어요. 5월 29일 개관해 이제 보름이 된 신상 미술관을 방문해봤습니다.
https://sema.seoul.go.kr/kr/visit/photosema
SeMA -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해당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에서는 다음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sema.seoul.go.kr
▶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 서울시 도봉구 마들로13길 68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 사진 미술관입니다. 사진이라는 기술적 매체의 특징, 기록성과 창조성에 초점을 두고 사진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문화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서울 동북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 홈페이지 설명 중
4층 규모의 건물은 서울 중심부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보다 작은 편이지만 한, 두개의 사진 전시를 진행하기엔 괜찮은 공간입니다. 2,3층에 네 개의 전시실이 마련돼 있고 개관을 기념해 미술관이 있는 창동의 역사, 대한민국 사진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2층에서 진행되는 '스토리지 스토리'는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사진의 형태를 해체, 재조립한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술관 건축 과정, 사용한 자재들이 작가들의 눈과 손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음습해 보이는 공사 현장에 해변과 계곡, 숲의 이미지를 합성한 사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래는 전시 설명입니다.
전시 제목 《스토리지 스토리》는 미술관이 위치한 창동(倉洞)의 지명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 창(倉)’의 의미는 오늘날 이미지와 기억, 작품과 자료를 저장하는 미술관의 수장 기능으로 전이된다. 그러나 우리의 수장고는 정지된 아카이브가 아닌 예술적 해석과 역사적 맥락이 교차하는 동적인 장(場)이자 이야기의 발화점이기에 본 전시를 통해 기존 저장소 ‘storage’의 개념을 기억이 생성되고 재구성되는 미술 실천의 장소로 확장하고자 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사진 매체의 대표 속성을 ‘재료’, ‘기록’, ‘정보’로 정의하고, 여섯 명의 작가와 함께 건설 현장과 자재, 건립 과정에서 수집된 소장품과 자료, 더불어 지역의 역사·문화·지리적 맥락을 탐색하며, 사진미술관의 형성을 하나의 이야기이자 ‘살아 있는 서사’로 풀어냈다. 이 과정은 미술관의 탄생을 단순한 제도적 출발이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의 감각적 경험과 기억, 기술 변화의 층위, 정보 환경의 구조적 변화 속에 이루어진 공동의 창작 행위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며, 동시에 매체 고유의 기능을 비판적으로 재고하고, 예술에서 사진이 수행하는 복합적인 역할을 탐색하는 시도이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사진미술관의 첫 장을 여는 전시로서, 사진 매체가 동시대 미술 속에 어떻게 재사유되고 재맥락화될 수 있는 지를 질문한다. 나아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대중 매체이자 개인과 사회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구로서 어떠한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 지를 고민하며, 미술관이 ‘사진의 자리’이자 ‘기억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창고(倉) 역할을 했던 창동의 역사를 기록이라는 사진의 특성과 결합해 동네 구석 구석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 현재도 진행되는 의식들을 사진과 인터뷰로 남겨놓은 전시는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산 제게는 조금 더 특별했어요. 언젠가 봤거나 지나친 것들도 있을텐데 기념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관람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옛날 사진들을 AI를 통해 복원하는 과정들을 살펴보고 내가 고른 사진들에 대해 AI의 평가와 내 감상을 공유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기존 사진 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3층 전시실에서는 전통적인 사진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취향엔 이쪽이 더 흥미로워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든 작품들을 훑어 보았고요. 무엇보다 대한민국 최초의 개인 사진 전시에 걸렸던 정해창의 사진들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 사진 예술 초창기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발자취까지.
서양의 시선을 빌려 온 것이 아닌 고유의 시선과 화풍을 정립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한 장 한 장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갤러리도 크고 관람 동선도 잘 돼 있었고요. 그라운드 시소, 대림미술관 등 사설 미술관은 공간이 좁고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게 구성돼있어서 잘 안 가게 되거든요.
사진 취미가 다시 인기를 끄는 시기라 사진 전문 공공미술관 개관이 반갑습니다. 개관 기념 전시도 의미와 작품 수준 모두 만족스러웠고요. 앞으로 어떤 전시가 이어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