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원고료를 지급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보이그랜더의 대구경 망원 렌즈 아포-울트론 90mm F2 VM에 관한 두 번째 포스팅. 이 렌즈로 찍은 이미지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특징, 장단점을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렌즈는 최고의 망원 VM 렌즈다운 면모를 충분히 보입니다. 아포크로매트 설계로 F2 최대 개방 촬영부터 샤프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주변부까지 이어졌습니다. M 시리즈 사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외형에 휴대성도 사양 대비 준수한 편이었고요. 인물 촬영용 망원 렌즈에 갈증이 있었던, 아포-스코파 90mm F2.8가 성에 차지 않았던 사진가들에게 논쟁의 여지 없는 대안입니다.
이 렌즈의 사양과 디자인은 지난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보이그랜더 아포-울트론 90mm F2 VM 렌즈 - 최고의 VM 망원 렌즈(APO-ULTRON 90mm F2 VM)
클래식 디자인과 높은 완성도
보이그랜더 아포 렌즈 시리즈의 이미지 품질은 35/50mm 아포-란타 시리즈와 90mm 아포-스코파 등을 사용하며 신뢰를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렌즈의 성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고 실제로 기대를 충족하는 결과를 얻었어요. 그 외로 이 렌즈에 만족한 것은 디자인과 조작감이었습니다. 아포 시리즈와 녹턴 고급 라인에 채용된 60년대 클래식 렌즈 스타일을 따르고 있습니다. 조리개 링, 초점 링의 독특한 요철 마감이 핵심이죠. 이것이 라이카 올드 Noctilux, Summilux 렌즈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크기와 무게도 적절하게 억제돼 있어서 M 시리즈 카메라에 물려 놓았을 때 잘 어울립니다. 현행 라이카 Summicron 90mm F2 asph 렌즈보다 근사한 외모라고 생각해요.
고급 렌즈군답게 조작감 역시 VM 렌즈들 중 상위권입니다. 일단 렌즈 크기가 크니 그만큼 공간에 여유가 있죠. 조리개 링, 초점 링을 조작할 때 간섭이 없습니다. 경통 전체 면적의 1/3 가까이를 차지하는 초점 링은 촬영 중 조작도 편하지만 이동하거나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손가락을 안착시켜 둘 수 있어 좋습니다. 두 개의 링 모두 일정한 저항으로 매끄럽게 움직이고 특히 조리개 링이 구간마다 걸리는 힘도 분명해서 촬영이 쾌적합니다. 제가 받은 렌즈가 샘플임에도 조작감이 꽤 훌륭했어요.
90mm 망원 프레임
렌즈를 사용한 지 3주가 지났지만 사실 아직도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처음엔 드넓은 뷰파인더 가운데 손톱만큼 표시된 프레임이 전부라는 것에 놀랐고 다음으로는 초점을 잡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망원 렌즈 특성상 이중상 합치가 조금만 틀어져도 초점이 크게 엇나가거든요. 프레임에 맞게 장면을 재단하는 것도 까다로운 일입니다. SLR/미러리스 파인더 프레임이 렌즈에 맞춰 변하니 보이는 대로 찍으면 된다지만 M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주변부 간섭이 심하니까요. 정작 촬영되는 프레임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몇 번 실패를 겪고 나서는 라이브 뷰 촬영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M 바디 사용자라면 구매 전에 이런 점을 미리 고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이브 뷰 또는 비조플렉스 촬영에 거부감이 없거나 빈도가 높다면 상관 없고요.
90mm는 흔히 인물/정물용으로 분류되지만 풍경, 스냅 사진에서도 꽤나 용도가 좋습니다. 광각 렌즈와 다른 느낌으로 함축적인 장면을 담을 수 있고 특유의 클로즈 업, 배경 압축 효과 덕분에 어떤 장르에서도 주제를 부각시키기 용이합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확실히 강조할 수 있다는 것. 촬영에 이런저런 제약이 있었어도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이유입니다.
F2 최대 개방 조리개 값
풀프레임 카메라에서 50mm F1 또는 F1.5 렌즈의 심도 표현도 굉장하다 싶지만 90mm F2 렌즈의 능력도 결코 그에 못지 않습니다. 망원 프레임의 배경 압축까지 더해진 덕에 몰입도는 오히려 월등하고요. 인물용으로 망원 렌즈가 사랑받는 이유가 이것이겠죠.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F2 최대 개방 촬영에서의 표현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입니다. 135mm 혹은 그 이상의 장망원 렌즈가 많은 SLR, 미러리스 카메라에서는 90mm F2가 별 것 아니라지만 라이카 M 시스템에서는 처음 느껴봤잖아요. 그래서 더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조리개 값에 따른 심도 차이]
최대 개방 촬영의 높은 해상력 덕분에 피사체 배경은 더 확실하게 분리되고 그로 인한 공간감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낮은 개방 조리개 값에만 신경 쓴 저화질 렌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해상력 테스트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이 렌즈의 F2 결과물은 주변부 광량 저하를 제외하면 F4 이상 촬영 결과물과 특별한 차이를 느낄 수 없을만큼 선명해서 대부분의 촬영을 F2로 진행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심도 표현이 재미있어서요.
해상력 테스트
F2로 촬영한 결과물에서 아포크로매트 설계의 힘을 느꼈습니다. 과거 35/50mm 아포-란타 렌즈들에서도 느꼈지만 보이그랜더 VM 렌즈들 중에서도 아포 시리즈의 해상력은 탁월합니다. 휴대성에 치중한 몇몇 렌즈들이 최대 개방에서 미세한 해상력 저하를 보이거나 경계 표현이 번지는 것과 달리 이 렌즈의 결과물은 매우 선명합니다. 그것이 더러는 입체감과 생동감으로 연결되고요.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을 보면 조리개 값이 다르지만 확대 이미지의 샤프니스는 구별이 쉽지 않을만큼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중심부뿐 아니라 주변부도 F2 최대 개방의 해상력 저하를 느낄 수 없습니다. F2.8/4 결과물 대비 광량 저하가 있을뿐 해상력 자체는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을만큼 좋았어요. 중심부 해상력이야 당연히 높은 수준을 예상했습니다만 주변부는 제 기대를 상회합니다. 아포-스코파 90mm F2.8이 중심부에 비해 주변부 해상력이 다소 떨어져 아쉬웠는데 이 렌즈는 그것을 해소했습니다.
[조리개 값에 따른 해상력 차이]
중심부 해상력은 조리개 값에 따른 차이가 무의미 할 정도로 F2 최대 개방부터 샤프합니다. 회절 현상이 발생하는 F16을 빼면 모든 조리개 값에서 일관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편차가 있는데 특히 개방 촬영에서의 비네팅이 그렇습니다. F2-2.8구간에서 모서리쪽이 어둡게 촬영되며 조리개를 조일 수록 나아져 F4에서 해결됩니다. 해상력은 F5.6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중심부, 주변부 모두 F11에서 해상력이 미세하게 저하되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개방 촬영에 중점을 둔 설계 때문인지 제가 받은 렌즈가 샘플 제품이라 그런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구매를 고려하신다면 이점을 염두해 두거나 미리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즉 F5.6 촬영이 이 렌즈의 최고 성능이 발휘되는 조리개 값이 되겠습니다.
빛망울/빛갈라짐 표현
M 시스템에선 장망원에 해당하는 90mm에 개방 조리개 값이 밝아서 상당히 큰 보케 연출이 가능합니다. F2 최대 개방 촬영 기준 중심부는 완전한 원형, 주변부는 럭비공 모양으로 표현됩니다. 아쉬운 점은 F2를 제외한 조리개 값에서는 보케의 형태가 12각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인물 촬영에 이 렌즈를 사용한다면 F2 최대 개방 위주로 촬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개방 해상도가 워낙 좋은 렌즈라 결과물에 대한 불만은 없을 것입니다.
빛갈라짐 표현은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선명했습니다. 12매의 조리개로 이뤄진 이 렌즈의 빛갈라짐은 12갈래로 나타나며 F2.8 촬영부터 그 형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후 점점 크고 선명해지다가 F16 최소 조리개 값에서 번지는 형태로 바뀝니다. 야경 촬영이나 영상 촬영에서 이런 광원 효과를 노린다면 F8-11 구간을 사용하는 것이 최적입니다.
보이그랜더의 아포-울트론 90mm F2 렌즈는 명실상부 최고의 VM 망원 렌즈입니다. 여러 아포 시리즈들에서 검증 받은 높은 해상력을 90mm 망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F2의 밝은 조리개 값으로 인물/정물 촬영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에서 폭 넓은 활용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휴대성도 사양 대비 나무랄 데 없다고 생각하고 디자인은 매우 만족합니다. M 시스템에서 망원 렌즈는 몇몇 제약이 있고 선호도도 낮은 편이지만 소수나마 꾸준한 수요가 있는데 이 렌즈는 그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 줄 만한 완성도를 갖췄습니다. 게다가 가격은 라이카 현행 렌즈의 1/8 수준이고요. 뷰파인더 촬영에서의 불편함, F2에서만 원형으로 표현되는 보케의 특성 정도만 감내할 수 있다면 고민 할 필요 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아포-울트론 90mm F2 VM 렌즈로 촬영한 이미지 (라이카 M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