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카메라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는 '레트로 디자인'이 아닐까요. 카메라뿐 아니라 패션, 인테리어 등 어디서나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모두가 스마트폰을 통해 사진,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요즘에 카메라는 취미, 사치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성능보다 디자인, 스토리로 소유욕을 자극하는 제품들이 주목을 받게 됐고요. 십 년이 넘은 후지필름 X100 시리즈나 리코 GR 시리즈가 '감성'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최근 갑자기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이,삼 년 전만 해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이제 끝났다고 했는데 말예요.
저도 누구보다 카메라의 디자인을 많이 봅니다. 남에게 추천할 땐 소니, 캐논이지만 제 돈 주고 살 때는 라이카, 올림푸스, 후지필름의 카메라를 우선 찾아봐요. 그런 이유로 니콘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최근까지 아예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Z6, Z7으로 시작된 Z 시리즈의 현대적인 외형이 제 취향에 맞지 않았거든요. 물론 당시엔 렌즈군도 빈약했지만. 하지만 Zfc는 달랐습니다. 흉내 낸 껍데기라고 하지만 니콘이 가지고 있는 원본 FM2의 영광이 대단하기도 했고 흉내도 꽤 그럴듯했거든요. 과거 비슷한 컨셉의 DSLR 카메라 Df에 좋은 추억이 있기도 했고요. 가성비와 촬영 효율을 따지며 계속 소니 A7 시리즈를 썼지만 언젠가 Zf는 꼭 경험해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초의 어수선한 마음을 핑계로 구매해 봤습니다. 출시 당시엔 외모 빼고는 별 장점이 없었는데 일년쯤 지나니 가격이 괜찮아졌습니다.
제품 사양
2450만 화소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
EXPEED 7 이미지 프로세서
1/8000-30초, 벌브 지원
ISO 100-64000
하이브리드 AF | 273 포인트
초당 14매 연속 촬영
8스톱 손떨림 보정 장치
4K 60p 동영상 촬영(MOV, MP4) | 4:2:0 10bit, N-log/HLG 지원, 최대 125분
0.5인치 369만 도트 전자식 뷰파인더 | 시야율 100%, 배율 0.8
3.2인치 210만 도트 LCD 디스플레이 | 스위블 방식
듀얼 카드 슬롯 (SD, Micro SD)
USB Type C 포트 | 충전 및 데이터 연결
EN-EL15C 배터리 | 약 360매 촬영(뷰파인더)
144x103x49mm
710g
2023년 9월 발표됐으니 비교적 신제품입니다. 하지만 최신 기능과 고성능에 집중하기보단 레트로 디자인을 앞세웠어요. 그래서 성능은 현행 Z6III보다 이전 세대인 Z6II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EXPEED 7 프로세서, 딥 러닝 기반 AF 등 상위 제품 Z8,Z9의 핵심 요소도 일부 품고 있는 재미있는 카메라입니다. 많은 사용자들이 2,3세대 사이의 과도기 제품 혹은 2세대의 완성작이라고 평가 하더군요. 그 전반적인 사양은 현행 풀프레임 보급기와 중급기 사이의 수준입니다. 초당 14매 연사, 8스톱 손떨림 보정 장치, 1/8000초 기계식 셔터 지원은 만족스럽지만 2400만 화소, 4:2:2 미지원은 아쉽습니다. 카드 슬롯이 둘인데 하나를 Micro SD 카드 슬롯인 건 활용도가 높다고 봐 줘야 할지.. 사진 중심이라면 ZF는 타사 중급기와, 영상에서는 보급기와 경쟁을 해야할 것 같아요. 니콘 카메라는 거의 20년만에 사용해보는 터라 공부가 더 필요하겠습니다.
패키지 & 디자인
정가 288만원의 결코 저렴하지 않은 카메라지만 환경 보호를 내세운 것인지 아니면 노골적인 원가 절감인지 패키지는 단촐합니다. 작은 종이 상자를 열면 카메라와 배터리, 스트랩 그리고 USB C 케이블이 있습니다. 역시나 최신 카메라답게 충전기는 주지 않습니다. 이게 다 애플 때문이죠? USB C 포트를 통해 배터리를 직접 충전할 수 있긴 합니다만 아직까진 영 어색합니다. 많은 분들이 호환 충전기를 구매해서 사용하시더군요.
직선 위주의 실루엣과 삼각뿔. 니콘을 대표하는 시리즈 FM2, FM3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영광의 시절을 되찾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까요. 뒷면의 스위블 LCD 디스플레이에서 확 깨긴 하지만 그마저도 뒤집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로 오해할 수도 있겠어요. 특히 상판 디자인을 잘 했습니다. 다이얼의 배치와 레터링도 옛 느낌 물신이지만 특히 전원 레버 아래 작은 흑백 화면이 마음에 듭니다. 클래식 카메라의 필름 카운터를 생각나게 하는 이 화면에는 조리개 값 등 촬영 설정이 표시됩니다. 라이카 M8에도 상판에 흑백 화면이 있죠. 별 것 아닌데 저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펜타프리즘이 없지만 헤드의 형태는 FM 시리즈의 삼각형을 따랐고 인조가죽 소재를 주변으로 덧대 옛스러움을 강조했습니다. 후면 디자인은 전형적인 현행 미러리스 카메라입니다. 버튼과 다이얼 배치가 여타 Z 시리즈와 같고 3.2인치 LCD 모니터가 있습니다. 화면이 스위블 방식이라 뒤집어 놓으면 요즘 느낌을 상당부분 감출 수 있긴 합니다. 뷰파인더 화면이 크고 선명해서 되도록 화면을 감추고(?) 사용해 보려고요.
레트로 디자인은 올림푸스, 후지필름 쪽이 워낙에 일찍부터 공을 들여왔던 터라 대단히 새롭다거나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카메라는 분명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회사가 FM 시리즈의 영광을 가진 니콘이라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리즈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현행 디지털 카메라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후지필름, 올림푸스 카메라들보다 화질과 표현력에서 강점이 있는 풀프레임 포맷인 것도 있고요.
일단 보기에 참 근사합니다. 여러 카메라를 써 봤지만 라이카 M 시리즈, 후지필름 X100 시리즈 이후에 이만큼 모양새가 마음에 드는 카메라는 처음인 것 같아요. 불만이라면 출시 일 년이 지났음에도 실버 모델을 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니코르 Z 렌즈가 두 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카메라를 주로 보이그랜더 Z 마운트 렌즈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인 카메라인 라이카 M10과 겹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간편한 일상 기록 또는 블로깅 용도로는 Zf를 많이 활용하게 될 것 같아요. 동영상 촬영이 되니까, 가끔 AF 줌렌즈도 쓸 수 있으니까.
[니콘 Zf로 촬영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