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부산 여행 중 찾으시는 골목. 보수동 책방 골목입니다.
사실 거리가 길지도 않고 다른 유희거리 없이 이름 그대로 책방들뿐이라 요즘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 이곳이 부산의 명소가 된 것이 의아합니다. 아마 거리에서 느껴지는 호젓한 멋과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사람들의 감각과 추억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요.
숙소를 나서는 길에 본 예쁜 동백꽃.
4월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부산 곳곳에서 동백꽃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 자체도 좋지만 근처에 깡통 시장과 국제 시장 그리고 좀 더 멀리 영도까지 하루에 돌아볼 수 있어서 벌써 세 번째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엔 이 골목의 유명세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골목 풍경을 사진에 담는 데 중점을 뒀지만 이번엔 책방 안에서 책과 오래된 CD등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보수동에 가기 전에 현지인이 추천해 준 화국반점에서 간짜장을 먹었어요. 그간 먹었던 간짜장보다 담백하고 구수한 맛, 거기에 부산 짜장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달걀후라이. 색다른 맛이 있었고 영화 촬영장으로 사용됐다는 실내 분위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오래된 골목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몇 년 시간이 흘러 찾아도 여전히 그 모습일 것 같은 믿음이 아닐까요? 보수동 풍경 역시 삼 년 전 왔을 때와 같았습니다. 가게마다 빼곡히 꽂히고 쌓인 책들이야 바뀌었겠지만 골목만의 느낌은 대부분 그대로였어요. 보자마자 삼 년 전 그때가 생각났으니.
다만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이곳 역시 벗어날 수 없었던지 문을 닫은 점포가 많이 보였습니다.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장님들이 대단해 보일 정도로요. 무심히 TV나 스마트폰을 보며 가게를 지키고 계시지만 매일마다 치열한 투쟁을 하고 계시겠죠.
군데 군데 바뀐 곳들도 많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 책방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머물고 즐길만한 카페들이 늘었어요.
흑백 사진을 찍는 사진관, 구매한 책을 앉아서 볼 수 있는 문화 공간들이 새롭게 눈에 띄었습니다. 다만 이마저도 방역 조치때문에 활짝 문을 열어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어느 서점. 총 2개 층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서점보다 크기도 크고 내부 조명이나 분위기가 북카페처럼 잘 되어있어 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곳입니다. 책도 많았지만 분위기 자체가 좋아서 내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자연스레 저도 발이 이끌렸습니다. 지난번 이 골목에 왔을 때도 이 책방을 둘러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엔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 보았습니다. 내부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꽤 넓게 마련돼 있습니다.
골목 자체가 높은 지대에 있어서 이 층이 1층, 골목에서 진입하는 공간이 2층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마치 어디선가 통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커피보다 맥주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
책은 모두 판매 중인 책이지만 2층에 있는 책들보다 훨씬 오래되고 보관 상태 역시 좋지 않아서 책을 찾는 공간이라기보단 감상하고 즐기는 공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한동안 예전에 나온 CD 선반 앞에서 혹 제가 좋아했던 가수의 앨범이 있을지 한 장 한 장 유심히 찾아 보았지만 수확은 없었습니다.
다른 발견이라면 구석 책장에서 발견한 세계 여행서. 1987년에 출간된 이 책은 어느 대학 교수의 노년 세계 여행 이야기를 대륙별로 엮은 방대한 규모의 전집이었습니다.
그 중 한 권에서 러시아, 당시 소련의 여행기를 찾았습니다. 글자가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인쇄된 것만 봐도 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알 수 있죠. 마치 그림같은 흑백 사진까지. 하지만 내용은 대단히 꼼꼼해서 역사나 문화에 대한 설명부터 작가가 비행기나 거리에서 겪은 소련 사람들의 불친절같은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옛 기록속에서 보는 성 바실리 대성당과 붉은 광장을 보니 어딘가 가슴이 뜁니다. 제가 모스크바에 다녀와 책을 출간하기 30년 전 이야기를 헌책방에서 보니 무언가 연결돼있는 느낌도 받았고요.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기대하고 또 얻어가는 값진 경험이 이런 것들이겠죠. 어둑어둑한 구석에서 오래된 여행책을 넘겨보는 짧은 시간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