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보람을 언제 느끼냐고 물으면 이 순간을 꼽습니다. 팬 위에서 익어가는 선홍빛 양갈비를 볼 때요.
서너 해 전에 첫경험을 한 뒤 다음부터 여름철 몸보신을 핑계로, 브랜드 담당자와의 식사와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의 자리를 목적으로 양고기 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 얼마 전에 갔던 용산의 양인환대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이렇게 포스팅으로 남깁니다.
위치는 4호선 신용산역과 가깝습니다. 일전에 이 근처 스튜디오에 촬영이 있어서 가는 길에 보았는데 그 전에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던 터라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양갈비 투어 장소로 정했죠.
어둑어둑한 조명과 정갈한 상차림, 나란히 앉아 먹기 좋은 테이블 구성까지. 여느 양고기집과 다르지 않았지만 이곳엔 4인 테이블도 있어서 모임을 하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독립된 테이블이 아니고 바와 연결되어 있어서 직접 구울 필요도 없고요. 양고기와 와인을 드시는 분들도 계신 걸 보면 콜키지도 되는 것 같습니다. 양고기와 와인이 참 잘 어울리죠.
이 날 주문한 메뉴는 양갈비와 양삼겹. 그간 양갈비집을 좀 다녀보니 대부분의 가게에서 보유한 양갈비, 양등심같은 메뉴 외에 각 가게만의 메뉴가 있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어느 집은 살치살, 어느 집은 양 함박이 있는 식이죠. 양인환대는 양삼겹이 그런 메뉴였습니다. 돼지삼겹도 맛있는데 양삼겹은 어떤 맛일까 기대하며 주문해봤습니다. 다른 부위보다 육향이 강하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의 가게가 일본 홋카이도 지방의 징기스칸 구이를 차용했기 때문에 상차림 역시 그것과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양인환대의 반찬은 한식의 분위기가 풍기더군요. 절임 요리와 나물, 으깬 감자 그리고 북어 순두부찌개 등이 나왔습니다. 저 중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난 으깬 감자, 그리고 담백하고 고소한 북어 순두부찌개가 맛있었습니다. 보통은 고추냉이와 소금, 간단한 절임 정도만 나와서 반찬 먹는 즐거움은 덜했는데 여긴 사이드 메뉴가 좋았습니다. 다만 장단점이 있는 것이, 징기스칸 구이하면 고기와 함께 굽는 파, 마늘, 숙주 등의 채소맛을 빼놓을 수 없는데 여긴 그런 재미가 덜했어요.
본격적인 구이의 시작은 양갈비입니다. 다른 집에선 양갈비를 마지막, 그러니까 하이라이트로 미뤄두는데 몇 번 다녀보니까 바로 맛있는 것부터 먹는 게 좋은 선택이더라고요. 첫 점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거죠. 그리고 보통은 육향이 약한 부위로 시작해 점점 강한 쪽으로 가는 것을 추천하더군요. 양삼겹이 갈비보다 향이 더 강하다고 해서 갈비를 앞순서로 뒀습니다.
선홍빛 양갈비에 소금과 후추로 즉석에서 간을 하고 양 비계로 기름칠을 한 철판에 굽는 일련의 과정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른 곳보다 좀 더 상세한 고기 설명, 그리고 숙련된 구이 실력이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저 작은 갈빗대 하나에도 부위를 잘게 나눠 한 점 한 점 특별한 기분으로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요.
토치를 이용해 겉면을 빠르게 구워 육즙을 가두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고기 한 점 한 점을 더 소중하게 다루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렇다고 가격이 월등히 더 높지도 않은데, 이래서 매장이 많은 프랜차이즈 식당보다는 이렇게 소규모지만 관리가 잘 된 곳을 좋아합니다.
다녀온 지 오래돼 어느 부위고,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첫 점이 녹듯 부드러웠던 건 확실합니다. 자리 앞의 작은 접시에 잘 구워진 고기와 소금을 올려주며 부위를 소개하면, 그 내용을 곱씹으며 고기를 씹는 방식입니다. 소금과 간장 소스가 있는데, 소스는 육향을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때, 간장 소스는 이 집만의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좋습니다.
다음 두 점도 역시 갈비에서 잘라낸 부위입니다. 모양도 굽기 상태도 다르죠. 물론 맛도 다릅니다. 어떤 것은 쫄깃하고 단단하고, 어떤 것은 소고기처럼 부드럽게 결이 씹히기도 해요. 그래서 소금, 소스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이 됩니다. 저는 대부분 소금을 찍어 먹었어요.
갈비에 붙은 살을 다 먹고 나면 이렇게 갈빗대가 구워져 나옵니다. 뼈에 붙은 살이 맛있다보니 이렇게 일부러 고기를 많이 남겨 구워주시죠. 다른 부분보다 쫄깃한 식감이 강하고, 육향도 강한 편입니다. 뼈를 들고 뜯으면서 맥주 한 모금씩 할 때, 돈 버는 보람을 느껴요.
다음 메뉴는 양삼겹. 다른 곳에서 접하지 못한 부위라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양삼겹은 육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잘 구우면 막창과 같은 재미있는 식감으로 먹을 수 있어서 메뉴에 추가했다고 합니다. 향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간장 양념을 더해 양념갈비처럼 굽는다고 합니다.
굽는 과정에서 지방이 녹으면서 크기가 줄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납니다. 고기를 간장 양념에 적셔 굽고, 마지막엔 끓인 소스를 고기에 부어 먹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소스 맛과 상상이 되지 않는 양삼겹의 조화가 궁금했어요.
완성된 양삼겹이 모습. 보기에도 그렇지만 맛도 무척 캐주얼한 양념 고기 스타일이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지 않습니다. 육향이 강하다고 들었지만 양념 때문인지 오히려 갈비보다 향이 덜 느껴졌습니다. 새콤달콤 짭쪼름한 소스 맛 때문에 맥주 안주로 무척 좋았습니다. 공기밥 생각이 나기도 했어요.
다만 양고기 특유의 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강한 양념과 함께 구운 고기가 불만족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이럴거면 저렴한 양념 돼지고기를 먹지 양고기를 왜 먹겠어,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그래도 정갈한 상차림과 친절한 설명, 맛있는 고기까지.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또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갖고싶은 날 방문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