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의 카메라와 렌즈로만 여행해야 한다면 어떤 조합을 선택해야 할까?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늘 하는 고민입니다. 아직까지 맘에 꼭 맞는 답이 나오지도 않았고요. 한때는 블링블링한 실버 컬러의 RF 카메라에 35mm 단렌즈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이 사진 못지 않게 중요해지면서 완전히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할 때가 왔죠. 그리고 현재 가장 가까운 답은 올림푸스에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몇 번의 포스팅을 통해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가볍고 간편한 것'만 찾는다면 스마트폰 카메라가 가장 좋겠죠. 실제로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은 신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놀라게 됩니다. -아이폰 11 프로 카메라 후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말 놀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것의 즐거움은 카메라를 손에 쥘 때의 질감과 뷰파인더에 눈을 대는 순간의 감정, 오래도록 두고 볼 품질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여행엔 카메라를 꼭 챙기게 됩니다. 가벼움과 간편함 등은 그 이후에 고려할 일이죠.
초반 질문에 지금 제가 답을 한다면 올림푸스 E-M1 Mark II와 17mm F1.2 PRO 렌즈를 챙기겠다고 하겠습니다. 출시가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만큼 손에 익어 제가 원하는 바를 똑똑하게 담아주는 익숙한 카메라에 제가 여행지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어느새 같아져버린 35mm 환산 약 35mm의 프레임. 거기에 F1.2의 밝은 조리개값과 개방 촬영에서의 이미지 품질. 그래서 이 조합을 좋아합니다. 거기에 OM-LOG400이 적용된 4K 동영상 품질도 좋고요.
이번 제주 여행은 사진이 목적이었다 보니, 카메라와 렌즈를 바리바리 챙겨갔지만 돌아와 사진을 정리해보니 역시 17mm F1.2 PRO 렌즈로 촬영한 사진들이 가장 많더군요. 어느새 제 눈처럼 되어버린 이 렌즈로 찍은 제주의 풍경을 정리해보았습니다.
#풍경사진
17mm 렌즈가 보여주는 적당한 너비를 좋아합니다. 많이 찍어서이기도 하지만 17mm로 풍경을 볼 때 가장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흔히 풍경에는 초광각 렌즈를 사용하지만 저는 주변부 왜곡과 화질 저하 때문에 선호하지 않아요. 굳이 다 보여주기보단 제 주변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 중 가장 멋진 것을 덜어내 가장 맘에 드는 그릇에 담는 셈이죠.
7-14mm F2.8 PRO라는 걸출한 초광각 렌즈가 있음에도 17mm 렌즈로 많은 풍경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결국 고르게 된 것도 이 렌즈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고요.
무엇이든 적당함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죠. 17mm 렌즈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적당한 프레임입니다. 적절하게 주제를 담아낼 수 있으면서도 답답하지 않아요. 초광각 렌즈에서는 쉽지 않은 심도 표현도 어느정도 가능하고요.
저는 특히 이 렌즈를 야경 장노출 사진에 많이 활용합니다. 초광각 렌즈 특유의 주변부 왜곡을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17mm F1.2 PRO 렌즈의 화려한 빛갈라짐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태풍이 지난 뒤 화려하게 저무는 일몰과 선명한 밤바다 풍경을 담을 때도 이 렌즈에 가장 먼저 손이 갔습니다.
#음식사진
음식만을 찍는 사진이라면 고민없이 25mm F1.2 PRO 또는 45mm F1.2 PRO 렌즈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음식의 담음새나 테이블 위 모습을 함께 담아야 한다면 17mm F1.2 PRO 렌즈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25mm F1.2 PRO로 테이블 위 음식들을 담으려면 자칫 의자를 밟고 올라가야 할 수가 있거든요. 17mm 렌즈는 적당한 비율로 주인공을 담으면서 F1.2 개방 촬영의 심도 표현으로 보다 근사한 음식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SNS용으로는 25mm보다 낫지 않을까요?
#실내촬영
렌즈 하나로 여행을 떠날 때 광각부터 망원을 아우르는 고배율 줌렌즈를 많이들 선택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광량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기 때문입니다. 야간 촬영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촬영을 하는 데 제약이 있고, 사진이 흔들리거나 높은 감도로 인해 노이즈가 심해지기 일쑤죠.
여기서 단렌즈의 밝은 조리개 값과 줌렌즈의 편리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저는 제가 조금 더 움직이고 밝은 조리개 값의 이점을 취하는 쪽입니다. 물론 초광각의 광활함과 망원 촬영 특유의 배경 압축 효과를 포기해야 하지만 익숙해서인지 이제 대부분의 장면은 17mm 프레임으로 보여서 크게 욕심이 나지 않습니다.
제주 빛의 벙커 내부를 촬영하는 동안 실내는 빛이 희박하고 그마저도 깜빡임 때문에 오락가락했지만 F1.2의 밝은 조리개 값 덕분에 흔들림 없이 담을 수 있었습니다. ISO 1600을 넘는 사진이 없었으니 최신 카메라의 고감도 노이즈 억제 능력을 고려하면 야간/실내 촬영의 제약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습니다.
#베스트컷
기계적인 성능도 좋지만 역시 다녀와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안겨준 렌즈가 최고 아니겠어요? 물론 하나의 렌즈만 가져간다면 오직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제주에서 여러 렌즈로 촬영한 뒤 남는 사진이 역시 17mm F1.2 PRO 렌즈의 결과물이라는 걸 보면 역시 제게는 이 렌즈가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아니, 요즘에는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타나면 이 렌즈에 가장 먼저 손이 가서 더 그렇게 굳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태풍이 지난 뒤 마치 그림처럼 펼쳐진 하늘과 바다의 실루엣과 컬러는 볼 때마다 감동입니다.
물론 17mm F1.2 PRO 렌즈가 최고라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렌즈 중 제게 가장 잘 맞는 렌즈는 이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보는 분들 중 대다수는 올림푸스 카메라 사용자가 아닐 것일텐데, 이왕 DSLR/미러리스 카메라로 제대로 사진 생활을 해 보기로 했다면 카메라만큼 렌즈도 신중하게 골라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분명히 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 시선과 꼭 맞는 렌즈가 말예요. 그리고 그것을 찾는다면 사진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렌즈도 궁금합니다. 댓글 남겨주시면 정말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