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주 여행은 출사에 우선을 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두 대에 렌즈 여섯, 삼각대까지 욕심을 잔뜩 부려봤죠. 덕분에 등도 어깨도 뻐근했지만 맘에 드는 사진은 여럿 남았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단렌즈로 여행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타사의 RF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 줌렌즈가 없는 시스템의 한계로 단렌즈 하나로 여행을 이어가면서 그 편리함과 명확함에 매료됐는데, 미러리스 카메라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했거든요. 12-40mm F2.8 PRO나 12-100mm F4 IS PRO 같은 전천후 렌즈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렌즈로 최대한 담아 보기로 하고 떠났습니다. 17mm F1.2 PRO, 45mm F1.2 PRO 두 개로 광각/망원을 넘나들며 얼마나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죠. 물론 그 사이의 화각을 가진 25mm F1.2 PRO도 함께 챙겼습니다. 요즘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F1.2 PRO 단렌즈 시리즈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지난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각각의 특징과 공통점/차이점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istyfriday.tistory.com/3457
가장 많은 사진들을 17mm F1.2 PRO와 45mm F1.2 PRO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둘 중에는 제가 선호하는 17mm F1.2 PRO 렌즈로 더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45mm F1.2 PRO 렌즈 덕분에 평소 외면했던(?) 망원 렌즈의 매력을 알게 됐고 색다른 장면들도 많이 담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제주의 가을 소식과 함께 17/25/45mm F1.2 PRO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셋 중 가장 생소했던 45mm F1.2 PRO 렌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망원 렌즈로 담는 여행지 풍경
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에서 45mm 렌즈의 초점거리는 35mm 환산 약 90mm 입니다. 준망원 초점거리로 분류되는 이 렌즈는 확실히 눈으로 보는 것보다 좁아서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인물 촬영용으로는 꽤나 사랑받지만 여행용으로는 손이 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동일한 위치에서 찍은 17mm 렌즈와 45mm 렌즈의 이미지를 비교하면 확실히 풍경 사진에는 광각이 우수해 보입니다만, 45mm의 풍경 사진도 특유의 함축적인 프레임이 매력적입니다.
시원시원하진 않지만 광활한 풍경에서 내가 보고 있는 것 혹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것이 망원 렌즈의 매력이죠. 거기에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을 이용해 아웃 포커스 효과까지 더하면 색다른 풍경 사진이 됩니다.
동일한 장면을 17mm와 45mm로 촬영한 이미지를 한 번 더 보면 그 특징이 더 잘 보입니다. 45mm 렌즈로 촬영한 이미지는 전체 풍경에서 주 피사체에 해당하는 부분을 함축적으로 담아 프레임 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능선과 구름, 건물 등 다양한 피사체가 있는 17mm 렌즈의 이미지와 달리 45mm 촬영 결과물은 간결하면서 보다 인상적입니다.
45mm 렌즈를 이용해 이 날 노을의 가장 붉은 태양의 주변을 담고, 오름 위에 선 사람들의 실루엣과 구름을 대비시켜 찍었습니다. 함께 찍은 초광각 렌즈의 사진들이 이 시간동안 함께 있었던 것과 비슷비슷했던 것과 달리, 망원 렌즈로 촬영한 사진들은 확실히 제 시선과 개성이 드러나는 것들이라 마음에 듭니다.
제가 망원 렌즈를 가장 선호하는 풍경은 가로수가 빽빽히 서 있는 숲길입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거세게 내리던 날, 제주의 어느 숲이 딱 좋은 피사체였는데, 광각 렌즈보다 풍경을 함축적으로 담는 망원 렌즈의 장점이 잘 드러나죠. 광각 렌즈로 촬영했다면 나무 사이의 공간이 이보다 더 드러나고,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부각시키기도 이보다 어려웠을 것입니다.
확실히 망원 렌즈의 사진들은 주제를 보이기에 용이합니다.
거기에 F1.2 최대 개방의 심도 효과를 더하면 뿌연 숲의 분위기를 강조할 수도 있고요. 광각보다 우수한 심도 표현에 밝은 조리개 값까지 더한 45mm F1.2 PRO 렌즈의 강점으로 꼽을 수 있죠.
음식 사진에 탁월한 프레임과 F1.2 개방 촬영
사실 45mm F1.2의 촬영 중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음식 촬영이었습니다. 클로즈업 효과가 뛰어난 망원 프레임에 조리개를 개방해 얕은 심도까지 연출하면 누구나 멋진 음식 사진을 촬영할 수 있거든요. 저는 25mm F1.2 렌즈를 음식 촬영에 주로 사용했지만, 테이블 세팅을 제외하고 음식 자체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자 할 때는 45mm F1.2 렌즈가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저트도 예쁘게 찍을 수 있으니 인물로 한정돼 있던 망원 렌즈의 역할을 SNS용 사진까지 확대해도 좋겠어요.
지난 여러 포스팅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F1.2의 밝은 조리개 값은 얕은 심도 표현 외에도 어두운 실내에서 더 많은 빛을 확보해 낮은 ISO 감도의 깨끗한 사진, 빠른 셔터의 흔들림 없는 결과물을 보장해 줍니다. 여기에 올림푸스 F1.2 PRO 단렌즈들은 최대 개방에서의 화질 저하가 크지 않아 최대 개방 촬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시리즈의 매력입니다.
어두운 이 산장은 촛불 몇 개와 전구들로 겨우 내부를 밝히는 곳이었지만 F1.2 개방 조리개값을 활용하니 대부분의 사진들을 ISO 1600 미만의 낮은 감도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3박 4일간 여러 렌즈들로 맘껏 사진을 찍으니 각 렌즈의 특징과 장단점을 전보다 조금 더 깊게 알게 됐습니다. 그 중 45mm F1.2 PRO 렌즈는 제가 가진 렌즈들 중 가장 활용도가 떨어지는 렌즈였지만 프레임에 익숙해지니 17mm와 함께 활용하면 줌렌즈가 아쉽지 않은 상호 보완 조합을 갖출 수 있더군요. 함축적인 이야기가 가능한 프레임과 탁월한 심도 효과 그리고 실내 촬영 능력을 이번 여행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인물 촬영을 즐기지 않아 45mm F1.2 PRO 렌즈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여러 여행을 17/45mm 렌즈 조합으로 촬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