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회식은 내 돈 주고는 안 먹을 곳으로 가야 합니다. 점심 시간엔 골목길에 있는 중국집에서 7000원짜리 짜장면 보통을 먹더라도, 법인 카드로는 고급 중식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어야죠. 회사를 다닌지 어느덧 4개월차가 되고 두 번째 회식이 있었습니다. 이번엔 저녁 시간이 맞지 않아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코스 요리로 식사를 했습니다.
회사 근처에 있는 모던 눌랑 센트럴시티점에 다녀왔어요.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주 메뉴는 퓨전 중식이고, 이 근처에선 그래도 이름난 맛집입니다. 제 돈 주고는 못 먹을 가격대고요.
내부 컨셉은 '1930년대 상하이의 화려한 시대적 감각을 더한 부티크 차이니즈 퀴진'이랍니다. 이름 모를 술병들이 잔뜩 늘어선 벽장 디자인이나 식기가 확실히 이색적이긴 하지만서도 설명만큼 그럴싸하진 않았습니다. 고급 중식당을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첫인상은 고가의 캐주얼 차이니즈 레스토랑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동네가 동네다보니 기본적인 식대 자체가 높습니다. 이날은 할당된 회식비 내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코스 요리를 선택해서 개별 메뉴를 상세히 보진 않았습니다. 메뉴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궁금했던 짜장, 짬뽕은 아예 없는 것 같네요.
http://www.sunatfood.com/download/menu_mn_c.pdf
이날 저와 팀원들은 1인당 48000원짜리 MY FAIR LADY 코스를 주문했습니다. 코스 이름에서 눈치를 채고 다른 메뉴를 주문했어야 했는데 실수를 했어요. 보통 LADY가 붙은 메뉴들은 양이 적더라고요.
이 코스는 총 8개의 요리가 나오는데 전체에 해당하는 전복 수프와 디저트 망고 푸딩을 제외하면 다섯 가지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셈입니다. 이 때부터 개별 단가를 계산하느라 머리가 돌아가죠.
테이블 세팅은 깔끔하고 정갈한데, 실제 음식을 먹는 동안 이 세팅이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접시를 들고 갔다 그대로 음식 접시만 위에 얹어 다시 들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예쁜 그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예쁘긴 했어요.
첫 번째는 버섯과 상어 지느러미, 전복 등이 든 맑은 수프 요리. 국물이 너무 맑아서 마치 맹물에 생 버섯을 불리는 중인 것 같지만 실제 맛은 제법 깊은 감칠맛도 있고 재료의 익힘 상태도 좋습니다. 해장 생각이 나더군요. 이때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두 번째 미니 케이지는 요리는 새우살을 가득 넣은 춘권을 곁들임과 함께 먹는 요리입니다. 새우 살이 가득 든 춘권은 식감까지 바삭해서 맛은 좋았지만 양이 너무 적었습니다. 달랑 춘권 하나.. 뭐, 여기까진 애피타이저라니까 그렇다고 하고.
세 번째 요리는 활전복 수제 연두부찜. 그릇은 그리 보이지 않지만 스푼이 다 잠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적은 양이었습니다. 아래 연두부가 있고 위를 소스가 덮은 형태인데, 소스가 제 입에는 좀 짰습니다. 일단 양에서 실망.
다음은 갈릭&페퍼 슈림프. 이름 그대로 마늘과 후추로 간을 한 새우 튀김입니다. 예상과 달리 새우 튀김의 튀김옷이 꽤 두꺼운 편이라 의외였습니다. 양은 역시 적었고, 튀김옷 맛이 많이 나서인지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어요.
고기가 나왔다는 건 끝나간다는 거죠. -아니 벌써- 흑식초 소스 안심 구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매콤 달콤한 소스로 구운 안심 요리입니다. 고기 굽기 상태도, 육즙도 좋았는데 고기가 좋다보니 이 좋은 고기맛을 양념으로 가린 게 아쉽더라고요. 이건 메인에 해당하는 요리라 그런지 그나마 양이 좀 괜찮았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이제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벌써 인당 4만원을 쓴 것이 정말이냐고 물어볼 뻔했습니다. 스파이시 비프탕면과 트러플 핫팟 라이스 중에 면요리를 주문했고, 나온 음식은 대만의 우육면을 연상시켰습니다. 다이어트 누들 정도의 양이었지만 국물은 대만 우육면 못지 않게 깊은 맛이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나았어요. 코스 말고 이거나 한 그릇 시켜서 양껏 먹을걸, 하는 생각이 들만큼.
디저트 망고빙수 별로.
더 이상의 설명은 노.
저보다 먼저 다녀온 동료의 말을 들으니 코스보단 요리를 이것저것 시켜서 먹는 게 낫다더군요. 여긴 동파육이 맛있다나. 하지만 이미 늦었고, 48000원이라는 양갈비가 2인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잘 보이고 싶은, 연인으로 만들고 싶은 이가 생기면 한 번 다시 와보고 싶을만큼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당분간 갈 일이 없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