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인천행 1호선 지하철을 탔습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빠져 나가 텅 비다시피 한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얼마 안 지나 데려다주니 얼마나 좋던지요. 구경하고 사진 찍고 싶어 떠난 짧은 나들이라 별다른 짐 없이 카메라만 하나 챙겨 들었습니다. 사실 어깨에 맬 필요도 없이 점퍼 주머니에 넣고 가볍게 다닐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인천역과 그 주변은 사진 찍기 참 좋은 곳입니다. 예전에도 그런 이유로 자주 다녔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찾았네요. 그리웠던 인천역 근처의 풍경과 바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송도의 야경까지. 반나절 인천-송도 나들이 풍경을 포스팅해보려 합니다. 겨울이 오기 직전이라 다른 때보다 조금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공간이 주는 다채로움이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송월동 동화마을
인천역 건너편에 있는 차이나 타운은 인천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조성된 동화 마을, 벽화 거리가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죠. 저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산책하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 생각하면서도 두 번 찾을만큼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크지 않지만 벽과 담벼락, 계단, 전봇대까지 곳곳에 그림과 조형물이 있습니다. 다른 벽화 골목들과 다른 것은 송원동은 동화마을이라는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만화 속에서 보던 주인공들이나 추억 속 장난감 캐릭터들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가을-겨울동안 만물이 색을 잃고 차가움만 가득할 때, 이곳에 있는 그림들은 따뜻한 느낌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제법 찾아와 사진을 찍고 골목 구석구석에 있는 카페나 상점에서 차와 간식거리들을 먹는 풍경이 재미있었습니다. 차이나타운과 바로 연결돼있으니 굳이 따로 찾아오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길이 닿는 것이 이 작은 동화마을의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이나타운 - 인천 아트 플랫폼 거리
차이나타운 진입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쭉 걸어 맥아더 동상이 있는 공원 혹은 아트 플랫폼까지. 이 길이 주는 이색적인 느낌을 좋아합니다. 차이나 타운이야 말할 것도 없고 중간중간 눈에 띄는 근대 건축물들과 여러 잔재들이 볼거리입니다. 먹거리도 곳곳에 가득하니 제게는 참 걷기 좋은 곳입니다. 골목이 경사가 있고 구불구불한데, 덕분에 금방 다시 차이나타운 먹거리 골목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도 많고요. 그래서 인천역에 오면 일부러라도 두어 번 왕복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마음이 내키면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이나 대불호텔 전시관 등 근대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사실 서울에 사는 저는 조선시대 고궁보다 이런 건축물들이 더 생소해서, 올 때마다 봐도 셔터를 누르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한 카페들을 지나쳐 걷다보면 인천 아트 플랫폼이 있습니다. 사실 근처에 자주 왔으면서도 이쪽은 이 날 처음 가 보았는데, 잘 정돈된 공간 곳곳에 재기발랄한 미술 작품들이 있어서 크지 않지만 즐거웠습니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시들도 열리고 있었는데,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시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는 역사적인 가치와 함께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좋아서 종종 일부러 찾아오곤 합니다. 이 날은 멕시코의 문화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12월까지 매달 다른 국가의 전통 문화를 전시하고 있으니 들러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관람료는 무료고 관람 공간 자체도 좋아요.
저는 남미 지역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얼마 전 애니메이션 '코코'를 통해 흥미롭게 본 '망자의 날' 행사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화려한 분장으로 퍼레이드를 하고, 망자들을 초대하고 위로하기 위해 차리는 상차림을 전시관 내부에 재현해 놓았더군요. 그 외에도 전통 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제게는 꽤나 좋은 볼거리였습니다.
아, 조용한 제물포구락부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PEN-F의 무음 모드가 제몫을 했습니다. 셔터를 누를 때 소리가 나지 않으니 조용한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을 찍기가 훨씬 편하더군요.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무음 모드는 참 유용합니다.
인천 연안부두
인천역 머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습니다. 제물포구락부에서 나와 곧장 월미도로 갈까 하다가 혼자 가서 뭐 할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조용히 바다를 보고 싶어서 그나마 가까운 연안부두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사실 이곳은 십여년 전 팔미도에 다녀올 때 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 기억은 이제 없지만요.
'아니, 언니들이 왜 여기서 나와..?'
연안부두 선착장 앞에 눈을 의심케하는 구조물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눈에 익은 것은 제가 러시아에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이겠죠. 작고 허름한 이 광장의 이름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만든 것인가 싶은데, 하절기가 지나서인지 관리 상태도 형편없고, 구색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마트료시카 마니아(?)로서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7층짜리 전망대 건물 꼭대기에 올라 연안부두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점이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바다와 부두 풍경을 보고 싶어 찾았는데 뜻밖의 이득을 본 셈입니다.
창 없이 바로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아래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종종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용케도 알고 올라와 저와 나란히 서서 풍경을 보다 갔습니다. 그분들에게도 이 풍경이 흥미로울까요?
이렇게 높은 전망대에 올라왔을 때는 주로 아트 필터 중 디오라마 필터를 사용해 사진을 찍습니다. 이 날도 고요한 듯 바쁘게 움직이는 항구의 풍경을 디오라마 아트 필터를 사용해 담았습니다.
송도 센트럴파크
인천에서 하려고 했던 것들을 얼추 마무리하고 나니, -사실 만석 닭강정 먹기에 실패했지만- 그리고 해 질 시간이 가까워오니 송도의 야경 생각이 났습니다. 마침 멀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목적지는 송도 센트럴파크였지만 그 전에 들린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요거. 베이글.
2년 전 송도에 왔을 때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이 날 '송도' 하니까 바로 이 베이글이 생각나서 센트럴 파크에 가기 전에 들러 두 개와 크림치즈를 포장해 갔습니다. 일찌감치 집에서 나선 덕분(?)에 이 베이글 두 개가 이날의 점심이자 저녁.
상호는 '뉴욕베이글 송도'네요. 베이글이 무척 딱딱한데, 이건 뉴욕 정통 방식이라서 그렇답니다. 하지만 맛이 담백하고 건강한 느낌이라 베이글 좋아하는 제 입맛에 딱 좋았습니다. 특히 여기는 크림치즈 종류가 다양해서, 이 날은 누텔라 크림치즈를 잔뜩. 그렇게 베이글을 씹으며 송도에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송도의 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잘 꾸며진 도시는 웬만한 자연 경관 못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 중에서도 작은 한옥 마을 -말만 한옥마을이지 사실상 푸트코드지만- 그리고 센트럴 파크의 야경을 좋아합니다. 조명 빛나는 송도 트라이볼도 '아직까지는' 신선하고요. 이 날 짐을 줄이느라 삼각대를 한 뼘짜리 미니 삼각대만 챙겨서 야경 찍기는 쉽지 않았고, 눈으로 실컷 감상하다 왔습니다. 한옥마을에 있는 카페는 프랜차이즈지만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센트럴 파크의 야경을 끝으로 반나절의 인천-송도 나들이 끝. 뭐가 그리 답답한지 요즘들어 이렇게 당일치기로 짧은 나들이를 많이 다니는데, 빼놓을 수 없는 카메라와 렌즈가 작고 가벼워서 가방 없이도 부담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일부러 사진 찍으러 나서지 않아도 매일 가방 안에 PEN-F와 17mm F1.8 렌즈를 넣어 다니고요.
작은 카메라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 그래도 야경 찍으려면 삼각대는 챙겨야겠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