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겨울이 와 모든 것이 색을 잃고 얼어붙을 거라는 조바심 때문인지 요즘은 다만 하루라도 훌쩍 나들이를 다녀오는 날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문득 '속초'가 떠올라 그 길로 다녀왔어요. 도착하니 점심 때가 지나 있었고, 마감 때문에 늦어도 그 날 안에는 돌아와야 해서 반나절 동안 짧게 속초항과 청초항 근처 풍경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곧 올 것이기에 가방도 없이 주머니에 올림푸스 PEN-F와 17mm F1.8 렌즈 하나 채워서 넣었습니다. 가벼운 나들이에는 가벼운 카메라가 좋습니다.
모든 사진은 올림푸스 PEN-F와 17mm F1.8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 속초 해수욕장 -
- 동명항 -
- 영금정 -
- 청초호 -
속초와 강릉은 근사한 해수욕장과 큰 호수가 인접해있는 점이 매력입니다. 강릉의 경포호를 참 좋아하는데, 속초의 청초호도 잔잔함과 여유로움이 그 못지 않더군요. 호수가에 있는 공원을 따라 걸으면 근사한 풍경을 꽤 많이 만납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멋진 카페도 있습니다. 속초는 여수나 전주처럼 SNS에 올라갈 만한 핫플레이스가 아직 많지 않은데, 이곳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데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속초만의 분위기도 품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낡은 조선소를 개조한 호숫가 카페
청초호 근처의 아주 좁은 골목길 끝에 '칠성 조선소 살롱'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이 제가 바쁜 하루 나들이 중에 호젓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던 카페입니다. 요즘 폐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카페들이 전국 유명 관광지에 많은데, 속초에도 다행히 이런 곳이 있더군요. 이곳은 조선소를 개조했습니다. 살롱이라는 이름답게 차만 파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나 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들을 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조선소 캠퍼스가 덩그러니 펼쳐져 있는데, 처음엔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망설여지더군요. 입구쪽에 있는 '칠성조선소'라 적힌 작업장 건물인 줄 알았지만 내부를 보니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건물 앞은 휑하니 옛 작업장 모습 그대로여서 한동안 제대로 카페를 찾아 온 건지 헛갈렸습니다. 호숫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안심을 하게 됐죠.
다른 빈티지 인테리어 카페처럼 이곳 역시 예전에 삶의 터전으로 이용됐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다른 곳보다 조금 더 그대로 놔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침 며칠 전에 이 곳에서 영화제가 열렸는지 안내문이 유리문에 붙어있더군요.
별다른 간판이 붙어있지 않은 이 건물이 카페 건물입니다. 전체 캠퍼스에 비해 매우 작은 공간이라, 적지 않은 분들이 밖에 놓인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계셨습니다.
내부는 이렇습니다. 바다 못지 않게 큰 호수를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이것만으로도 속초를 찾았을 때 한 번쯤 가 볼 만한 이유가 충분합니다.
요즘 이런 카페들이 유행이기도 하거니와, 저도 국내 여행을 하며 이런 카페들을 주로 찾다보니 어느새 빠지게 되었습니다. 곳곳이 파인 벽에 걸린 근사한 사진들, 낡고 촌스러운 공간 안에 모인 세련된 사람들. 그 미묘한 조화가 편안해진 것을 보면 말이죠.
어김없이 이런 공간은 지인에게 소개하고자-사실은 자랑하고자-, 그리고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 사진을 찍습니다. 요즘은 SNS를 통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카페 안에서 사진 찍는 것이 그리 눈치 보이지 않아 좋습니다. 이날도 역시 올림푸스 PEN-F와 17mm F1.8 조합이었고, 작은 카메라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은 것이 좋았습니다. 이런 촬영에 참 좋은 카메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쁘게 다니느라 점심을 먹지 못하고 카페에 왔습니다. 저녁까지 동명항과 영금정에 다녀오려면 저녁 먹을 시간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시켰습니다. 칠성 조선소 카페의 커피도 기대를 했는데, 아쉽게도 다른 곳보다 커피에 많은 신경을 쓰는 곳 같지는 않아보였고 빵 같은 먹거리도 많지 않아서 그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조금만 보완된다면 속초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데 말이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호숫가에 놓인 테이블. 마침 날도 그리 춥지 않아서 카페 실내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는 커피잔을 들고 밖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앉으니 바닷가 루프톱 카페가 부럽지 않습니다. 속초로 오면서 가 볼만한 카페들을 검색했는데 요즘 인기가 있는지 이곳을 다녀온 포스팅이 많이 보이더군요. 갈길이 바빠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친구와 함께 오게 된다면 여유롭게 시간 보내기 좋을 곳이었습니다.
잔을 반납하고 나서려고 하니 사장님의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이 물으셨습니다. '저 뒤로 가 봤어?'라고.
'거기 뭐 있어요?'라고 여쭈니 며칠 전에 영화제 한 공간이 있다고 하십니다. 입구에서 보았던 칠성 조선소의 오른쪽 골목, 아마 창고로 썼던 것 같던 공간 안에 들어서니 삼삼오오 모여 프로젝터로 영화 보기 딱 좋은 아늑함이 있더군요. 벽에는 책장도 놓아 구색도 맞춰 놓았습니다.
돌아보니 여기는 카페보다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문화 공간이라고 하는 게 맞겠더군요. 아쉽게도 행사가 끝난 후에 방문해서 입맛만 다셨지만, 다음에는 미리 행사 일정을 확인하고 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 없는 특별한 영화제, 밴드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그렇게 카페를 나와 영금정에서 바다를 보고, 동명항 부두길을 걷고, 야경까지 찍고 돌아왔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봤던 곳이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가을이 가기 전 아쉬움을 달랠 나들이로는 적당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앞으로 속초를 떠올리면 생각 날 공간 하나를 알고 왔다는 것이 기쁩니다.
또 언제 이렇게 갑작스레 나들이를 떠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때도 이렇게 가방 없이 작고 가벼운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경쾌하게 걷다 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