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을 준비하며 풍경이나 날씨 못지 않게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워낙에 제주 맛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데다-정체성 없는 SNS용 볼거리 음식이 많았지만- 육지와는 다른 섬의 이색적인 맛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경험한 제주 음식들은 대부분 제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모 유명 셰프가 극찬했다던 전복 잔뜩 올린 물회는 회식 때 갔던 간판만 포항인 홍대 음식점보다 맛이 없었고, 돈코츠 라멘에 없는 그 무엇을 기대했던 고기 국수는 면과 고기, 국물이 이렇게나 따로 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3500원짜리 황금향 주스보다 나은 음식이 흔치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음식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제주에서 맛 본 것들 중 가장 만족했던 것은 '빵'이었습니다. 숙소 근처인 한림읍에 들러 근처에서 이름 좀 있다는 빵집을 찾아 들린 것이 지나보니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익새 양과점. 어릴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김현순 빵집'이 떠오르는 클래식한 네이밍입니다. 무슨 새인가 했더니 이이쿠세(イイクセ), 일본어로 좋은 버릇이라는 뜻이더군요. 검색해 보니 사장님의 상상 속에 있는 새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히읽, 이히읽 하고 우는?-
파운드 케이크가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게가 정말 작아서 한 팀씩 입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붙은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바깥에 전시된 다섯 종류의 파운드 케이크를 보며 미리 골라놓으려고 했는데 아차차, 설명이 없습니다. 별 수 없죠.
작고 정갈한 가게 안에서 진열된 빵을 구경합니다. 파운드 케이크가 주 메뉴인데 친구와 저는 리얼 치즈와 무화과 파운드 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요즘 부쩍 무화과에 빠져 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무화과 향 향수를 시작으로 과일까지 관심을 갖게 된 특이한 경우입니다.
그 외에도 제주 당근, 말차 등 제주의 특색을 살린 케이크가 있습니다. 가격은 4500원으로 크기 대비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 자랑샷 한 번 찍어 보고 싶었는데 연출 티가 너무 나서 실패 -
제주에 도착한 첫 날이었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저녁 식사를 뒤로 미루고 바다에 가서 일몰을 보기로 했습니다. 차를 신창풍차해안도로 어귀에 세우고 근처 작은 놀이터에서 빵을 꺼냈습니다. 서울 우유보다 맛있다는 제주 우유를 마트에서 급 공수하여.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사진입니다.
급한 마음에 포장을 뜯고 나서야 사진 찍을 정신이 들었습니다.
왼쪽이 리얼 치즈, 오른쪽이 무화과.
크기가 작습니다. 마음 먹으면 두 입에 해치울 수 있는 크기지만, 비싼 빵은 그렇게 먹는 거 아닙니다.
리얼 치즈는 정말 리얼하게 치즈 맛이 납니다. 아낌 없이 치즈가 들어서 혀 끝에 녹아드는 맛과 향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합니다. 당연히 우유와 찰떡궁합입니다. 과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맛이지만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것은 물론이요, 호불호도 없겠습니다. 사실 무화과를 더 기대했는데, 먹어보니 치즈가 더 좋았습니다.
무화과는 간간히 과육이 씹히고 그 때마다 입 안에 향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우유보다는 차에 더 어울리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먹었던 파운드 케이크보다는 단단하고 퍽퍽하지 않아 음료 없이도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리얼치즈가 아낌없이 재료를 쓴 것이 돋보였다면 무화과 파운드케이크는 맛과 향을 잘 살려서 이 집 빵 잘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다녀오고 나서도 친구와 종종 이익새양과점 이름을 꺼낼만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고작 두 조각이 남긴 아쉬움 탓에 더 진한 그리움이 생겼는지 몰라도 제주에서 먹은 것 중 단연 가장 맛있었습니다.
서울에 점포 하나 내시면 좋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