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간 김에 맛있는 섬 음식이나 실컷 먹고 오자고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제주 음식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감했고 끼니보다는 커피와 빵을 찾게 됐습니다. 하루 두 번 이상은 꼭 카페를 들러서 어느새 카페투어가 되어버린 제주 나들이. 볼스카페는 그 중에서 기억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중문 해수욕장과 멀지 않지만 도로변 외딴 곳에 홀로 있는 이 카페를 우연히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제주 카페들을 검색하다 발견하게 됐고요. 허름한 건물은 귤 창고를 개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2층짜리 건물인데 2층은 빵공장, 말 그대로 손님은 입장할 수 없는 곳이고 1층이 카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러시아가 연상되는 이름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러시아였다면 Kafe가 아니라 кафе 였겠죠.
이 날 아침에 앤트러사이트 한림점에 다녀왔는데, 볼스카페가 그곳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별 다른 내부 공사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터라 깨지고 뜯겨 나간 콘크리트가 그대로 보입니다. 요즘엔 이런 게 트렌드인가 봐요.
낡디 낡은 실내에 고운 빛깔의 빵들이 진열돼 있으니 눈이 즐겁습니다. 이 곳에서 빵과 차를 주문하고 안쪽 공간에 들어갑니다.
창고로 쓰였던 건물인 만큼 내부가 넓고 큰 형태입니다. 아마 이 곳에 천장에 닿을 정도로 귤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었겠죠. 카페 인테리어로서 감상평을 하자면 노출 콘크리트와 녹색 식물의 조화가 어딘지 모르게 식물원을 연상 시키는데, 이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테이블과 의자 역시 녹색 철제로 분위기를 맞췄습니다.
많지 않은 테이블 중 창 쪽에 놓인 테이블이 단연 인기입니다. 제가 이 곳을 검색해 보았을 때 나왔던 수 많은 인스타 감성 사진들이 바로 이 창을 배경으로 찍은 것들이었거든요. 창 밖으로는 그냥 풀, 자연이 그대로 보입니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날이라 아쉽게도 빵은 주문하지 못하고 얼그레이 밀크티를 시켰습니다. 어느 인터넷 평가에서 분위기에 비해 커피가 너무 맛 없다는 문장을 보기도 했고요.
독특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 나온 밀크티는 생각보다 진하고 향도 괜찮았습니다만, '너희들 입맛에 맞추겠다'는 의욕 때문인지 단 맛이 강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분위기 하나만으로 가 볼 만한 카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근처에 관광 혹은 볼 일이 있다면요. 일부러 여기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기엔 제주는 너무 넓고, 여행은 무척이나 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