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새 시계를 구매했습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노모스 탕겐테를 구매한 후에는 시계 욕심이 사라졌고, 애플 워치를 사용하고 나서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수명을 다 한 애플 워치 1세대를 방출하고 데일리 워치로 찰 새 시계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제 나이 남자들이 열망하는 롤렉스나 IWC 워치들은 제 사정에 맞지 않기도 하고 편하게 굴릴 시계를 우선으로 찾았습니다. 기준은 수동, 38mm 이하, 줄질이 편할 것. 그리고 얼마 후 바젤 월드 사진을 보며 해밀턴 카키 필드 메카니컬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해밀턴 카키 시리즈는 군용 시계를 보급하며 기술력과 이름을 알린 해밀턴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로 1940년 이후 꾸준히 제품이 발매돼 왔습니다. 그 중 이번에 발표된 제품은 1969년 베트남전 당시 미군에 보급되었던 모델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합니다. 샌드 블라스트 마감 된 38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수동 무브먼트 등 기존 모델의 틀에 마치 오래돼 변색된 듯한 컬러의 인덱스를 넣어 올드 모델의 느낌을 더한 것이 특징입니다.
최근 발매된 카키 필드 시리즈 중 원작 군용 시계의 모습을 가장 잘 해석했다는 평을 받으며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소량이 발매돼 현재까지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하죠. 저는 면세점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계획이었는데 재입고와 동시에 바로 품절이 돼서 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델은 두 개가 출시됐습니다. 블랙 다이얼에 올리브 컬러의 스트랩이 포함된 H69429931, 브라운 다이얼에 베이지 컬러 스트랩이 포함된 H69429901입니다. 아무래도 밴드 조합이 좋은 블랙 다이얼 모델이 인기가 많고, 저 역시 이 쪽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구매한 해밀턴 카키 필드 메카니컬 모델의 대략적인 사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델명 H69429931
샌드블라스트 마감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사파이어 글라스
ETA 2801-2 수동 무브먼트, 42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38mm / 두께 9.5mm
슈퍼 루미노바(C1) 야광 인덱스
러그 규격 20mm
50m 방수
직조 스트랩 H6006941021
손목이 가는 편이라 40mm 이상의 큰 시계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35mm 지름의 노모스 탕겐테에 익숙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카키 필드의 38mm 케이스가 구매를 고려할 때 큰 장점이 됐습니다. 수동 무브먼트 역시 오토매틱 무브보다 두께가 얇고 내구성이 좋아서 선호하고요. 용두를 돌리는 것이 귀찮다는 말도 있지만, 그게 또 손 맛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50m 방수는 필드 워치로는 아쉬운 사양이긴 합니다. 물론 함께 사용하는 노모스 탕겐테의 30m보다야 낫지만 용도를 생각할 때 찜찜하긴 합니다. 러그 규격이 20mm에 블랙 다이얼이라 줄질하기에는 더 없이 좋겠네요.
간단히 언박싱을 해 보았습니다. 복각 모델이라 하여 스페셜 에디션같은 패키지를 기대했지만 그런 거 없고, 기존 카키 필드 메카니컬과 동일한 검정색 종이 상자 패키지에 담겨 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 기존 판매 중인 카키 필드 오피서 핸드와인딩(Khaki Field Officer Handwinding)을 구매했었습니다. 저렴한 해외 가격에 올리브 컬러의 워치 페이스에 끌려 구매했지만 가벼운 느낌이 있어서 정을 붙이지 못하고 곧 방출했습니다. 사실 워치페이스와 인덱스, 스트랩을 빼면 동일한 모델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이번에 복각 모델을 구매하고 보니 그 차이가 제법 크게 느껴집니다.
- 카키 필드 오피서 핸드와인딩 모델도 매력 있지만 올리브 다이얼이 소화하기 어렵더군요 -
샌드 블라스트 처리된 케이스는 무광이라 역시 드레스워치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군용 시계라는 이 제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유광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보다 흠집이 잘 보이지 않아 막 차기에 최적입니다.
워치페이스는 오래된 군용 시계의 느낌을 주기 위해 빛 바랜 블랙 컬러로 바탕을 넣고 노란색 인덱스로 디테일을 더했습니다. 이 조합이 무척 좋습니다. 얼마 전 오피서 모델을 구매했던 제게는 두 배 가량의 가격 차이에도 이 모델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기본 스트랩은 짙은 올리브 컬러의 나일론 스트랩으로 모델명은 H6006941021입니다. 나토밴드 스타일로 군용 시계의 스타일을 완성하면서 가죽을 덧대 내구성을 향상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시계 못지 않게 스트랩이 마음에 듭니다. 특히 버클을 채우는 부분의 가죽 디테일은 정말..!
작고 얇은 케이스는 셔츠 안으로 쏙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차림에도 무리가 없습니다. 무게도 가벼운 편이라 착용감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시계의 전체적인 외모는 튀는 곳 없이 수수한 편인데,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 옷차림에 어울리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노모스 탕겐테와 함께 이번 카키 필드 메카니컬 모델은 큰 이변이 없는 한 기변 없이 계속 함께할 것 같습니다. 줄질 하기도 좋아서 앞으로 시계줄도 직접 만들어 채워줄 계획입니다. 이제 막 손목에 올린 터라 장단점 등의 사용 후기는 차차 남겨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