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첫 날, 기온은 여름처럼 높았지만 하늘과 바람, 햇살은 영락없는 가을의 그것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며, 해산물 잔뜩 올라간 섬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부두길을 걸으며 내내 석양을 어디서 감상할 지 고민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선지 오래지 않아 풍경은 어두워졌고, 마음도 함께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숙소에서 멀지 않은 신창 풍차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해 지는 풍경을 담기로 했습니다.
카메라는 PEN-F, 렌즈는 M.ZUIKO DIGITAL ED 7-14mm F2.8 PRO 초광각 렌즈를 챙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초광각 렌즈 특유의 주변부 왜곡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동안은 주로 12mm F2 단렌즈를 챙겼지만 이번에는 잔뜩 욕심을 부려 보았죠. 7mm 최대 광각, 35mm 환산 약 14mm에 이르는 초광각 프레임을 처음엔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당황했지만 다행히 저녁때쯤 되니 조금은 손에 익었습니다.
여행 첫 날의 석양, 이 한 시간 남짓을 위해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삼각대를 들고 부두길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관광지나 해수욕장과 달리 사람이 없어서 파도소리며 노을빛을 만끽하기 좋았습니다.
숙소에서 너무 늦장을 부렸는지 곧 해가 사라질 것 같더군요. 급한 마음에 우선 풍차와 그 너머 하늘, 그리고 부두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빼먹지 않고 남기는 것이 석양 타임랩스 동영상과 야경 장노출 사진입니다. 전자는 정지 화상으로 담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여행지에서의 감격을 효과적으로 남길 수 있어서, 후자는 낮과 사뭇 다른 도시의 매력을 간직할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이 날도 바다가 완전히 암흑에 잠길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 바다의 석양을 담았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지만, 사진으로 그 변화를 다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PEN-F의 아트 필터를 활용해 보았습니다.
- 디오라마 아트 필터 활용 -
- 빈티지(왼쪽) / 블리치 파이패스(오른쪽) 아트 필터 활용 -
파란색 위주의 단조로운 컬러라 팝 컬러 등의 색상 강조형 아트 필터보다는 비네팅과 블러 효과를 활용한 디오라마, 블리치 바이패스 아트 필터가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안겨 줬습니다. 이렇게 주변 풍경을 짧게 몇 장 남긴 후에는 삼각대를 세우고 본격적인 장노출 촬영에 들어 갑니다.
- 7mm | 60s | ISO LOW 장노출 촬영 -
부두길과 작은 등대, 풍차를 한 프레임에 담아 석양을 장노출로 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은 7mm 프레임 덕분에 초광각 렌즈만의 광활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올림푸스 카메라에서 제가 좋아하는 점이 벌브 촬영 없이도 최대 60초의 장노출 촬영이 가능한 것인데, 덕분에 이런 야경 촬영에서 낮은 감도와 높은 조리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위, 아래 이미지 모두 60초, 1분간의 움직임을 담은 것으로 감도를 가장 낮은 ISO LOW로 설정해 깔끔한 장노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높은 조리개 값은 아름다운 빛갈라짐을 구현합니다. ISO가 낮을 수록 깔끔하고 매끈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둘을 모두 만족하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카메라를 고정해 줄 튼튼한 삼각대, 그리고 여유있는 셔터 속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올림푸스의 가벼운 무게, 그리고 최대 60초로 설정 가능한 셔터 속도는 야경 촬영에 유리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타임랩스 촬영입니다. PEN-F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이기도 한데요, 이 날은 두 번의 타임랩스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조리개 값과 셔터 속도, ISO 감도를 수동으로 지정해 점점 어두워지는 석양을 그대로 담았고, 두 번째는 A 모드의 자동 설정을 통해 노출을 유지하면서 바다와 하늘의 움직임을 담았습니다. 각각 200여 장의 이미지를 촬영해 일괄 보정 후 Full HD 해상도, 24fps 동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타임랩스 촬영을 할 때 촬영 이미지 수와 간격 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면 이미지 화질과 비율, 그리고 AF 설정입니다. 주로 RAW+JPG 촬영을 진행하는 저는 타임랩스 촬영에서 RAW 동시 저장을 유지할 경우 저장 공간 부족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JPG 단독 저장으로 설정을 변경합니다. 더불어 16:9 비율의 동영상 제작에 유리하도록 촬영 비율 역시 16:9로 변환합니다. 더불어 포커스 설정 역시 AF에서 MF로 변경하는데, AF 설정이 유지될 경우 매 촬영마다 초점 검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해가 진 후의 어두운 환경에서는 초점이 나간 결과물이 섞일 우려가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설정 후 남은 것은 셔터를 누르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마치 낚시를 하듯 촬영은 카메라와 삼각대에 맡겨 두고 풍경을 감상하며 상념에 젖는 즐거움이 타임랩스 촬영의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면 카메라에서 바로 동영상을 제작해 주기도 하지만 Full HD 해상도에서 최대 15fps의 프레임밖에 지원하지 않아 저는 주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이 때 JPG 이미지의 컬러와 노출을 보정하면 더욱 다이내믹한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모두 불러와서 각 이미지의 재생 시간만 지정해 주면 되는 간단한 과정이므로 타임랩스 촬영을 즐겨 하시는 분이라면 이미지 편집과 동영상 편집 툴을 활용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렇게 간단히 두 개의 타임랩스 영상을 얻었습니다. 새벽잠의 피로와 비행의 수고를 모두 잊게 해 준 찬란한 노을 역시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됐고요.
짧은 제주 여행을 함께 한 올림푸스 PEN-F와 어색하지만 짜릿했던 7-14mm F2.8 PRO 초광각 렌즈와의 장면들을 앞으로 조금씩 나눠보려 합니다.
가볍고 손에 익은 카메라가 얼마나 여행을 즐겁게 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